김유철의 천주교회 친일문제 다룬 <깨물지 못한 혀> 발간

<깨물지 못한 혀 - 한국천주교회의 원죄 그리고 교회 언론>, 김유철, 우리신학연구소, 2008. 
<친일인명사전> 발간 문제로 민족문제연구소와 서울대교구 측이 서로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한국천주교회의 친일문제를 다룬 책이 한 권 발간되었다. 서울대교구측은 인명사전에 포함된 7명의 천주교 인사들이 당시 상황 때문에 교회 책임자로서 불가피하게 친일행적을 남겼지만, 이를 적극적 친일로 볼 수 없다는 유감을 표명하며 이의제기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김유철(스테파노)씨가 쓴 <깨물지 못한 혀>라는 책은 ‘한국천주교회의 원죄 그리고 교회 언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둘러싼 배경과 이 문제에 대한 교계의 반응을 가톨릭신문과 평화신문을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일제강점기에 <경향잡지> 등 교계언론을 통해 드러난 친일 자료들을 취합해서 싣고 있어서 천주교회의 친일논란에 대한 귀중한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유철씨는 이 책자가 “한국천주교회의 쇄신의 도구”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는 엮는 말을 통하여 다가오는 2010년이면 “경술국치 백년”이 되는 해라는 것을 상시시키며, “지나간 백년이란 세월보다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그 치욕의 세월을 해방 60년이 넘어가도록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이 청산되지 못한 과거에서 천주교회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그의 생각인데, 2천년대를 맞이하면서 가톨릭교회가 ‘용서와 참회’를 고백한 게 얼마전인데 아직도 부끄러운 교회 역사를 솔직히 드러내고 용서를 청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와 했다.

그에 따르면, ‘쇄신’이란 말의 ‘쇄’(刷)는 닦거나 씻는다는 뜻인데, 책을 묶어 놓은 녹슨 철심을 떼어내고 탁탁 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처럼 우리 천주교회도 말끔히 과거를 청산하고 거듭 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자료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자면, 주교회의 간행물이었던 <경향잡지>는 1944년 5월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대동아전쟁은 최후의 승리를 결전의 목표로 하여 더욱 심각하여짐에 이르러 일억 국민은 총역량을 대동아 건설로 집중하여야 할 때 본사에서는 당국의 요청에 의하여 한 걸음 더 협력하게 되어... 본 잡지만은 이만치나마 명맥을 잡고 나가게 된 것은 당국의 특별한 양해와 애호를 받고 있는 것이므로 도로 애국자들과 함께 감사할 바이라 인정하나이다... 하여튼 전쟁은 이겨 놓고서 볼 것이니, 국가와 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은 인고단련, 모든 어려움과 불편을 참아가면서 총력을 들어 국가에 협력함으로써 모범적 국민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편 김유철씨는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들에 관하여 “한국천주교회가 아직도 그분들의 허물보다는 공적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여기에 거론되는 7명의 천주교 친일인사들이 “민족의 어려운 시기, 역사의 갈림길에서 했던 일들은 그때에 국한 되지 않고 늘 ‘지금여기’에서 우리 앞에 반복되는 일이며 거듭해서 밀려올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들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지금 여기에서 행동하는 우리 자신의 선택에 대한 평가도 이뤄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철저히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할 줄 알아야 다시는 잘못을 되밟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바티칸과 일본천주교회 등이 근현대사 안에서 저지른 자기 잘못을 참회하였을 때, 한국천주교회도 <쇄신과 화해>라는 참회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중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친일행위에 대한 반성은 단 몇 줄에 불과하다.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김유철씨가 쓴 책을 보면, 이러한 불철저한 반성이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반발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덧붙여 김유철씨는 “우리들이 모인 것이 ‘교회’이니, 마치 교회가 고위성직자나 선별된 평신도가 대변하듯 말하지 말고, 해석하지도 말자”고 제안한다. “교회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고 교회의 부끄러움은 나의 부끄러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암울한 일제강점하에서 “깨물지 못한 혀”을 생생하게 우리도 지금여기에서 다시 느끼며, “역사를 두려워하고 민족에게 사죄하자”고 말한다. “한번이 아니라 두고두고 해방절이 올 때마다 사죄를 하자. 사람들이 그만이라고 말해도 재를 쓰고 사죄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교회의 욕됨은 그들로서 충분하고도 넘치므로” 아직도 “얼쩡대는 어둠”을 버리고, 다시는 교회가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쇄신하자는 것이다.

지난 8월 15일을 건국절로 새긴 이명박 정부의 몰역사적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어지는 요즘, 친일파들과 친미사대주의로 얼룩진 뉴라이트 계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가 그들과 한 통속이라는 혐의를 벗기 위해서는 친일 친미 사대주의의 그늘에서 교회를 철저히 갈라내어 새로운 뼈와 살을 입혀야 할 것이다. 부당한 압력 앞에서 혀를 깨무는 용기가 필요한 때에 출간된 김유철씨의 <깨물지 못한 혀>가 갖는 우리 자신인 교회에 대한 반성은 곱씹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이 책은 지난 해 발간한 첫 번째 ‘우리작은책’(<가톨릭근본주의의 도전>, 한상봉)에 이어 후원금으로 출판되었으며, 이 책을 원하시는 분은 우리신학연구소 후원회 까페( http://cafe.daum.net/wtisarang ) [우리작은책] 게시판을 통해 신청하면 거저 보내준다.

/한상봉 200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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