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종의 우리네 교회는]

 미국에서 교포사목을 4년 했다.

 교포사목하는 동안 나는 미국 교구의 신부들과 더 잘 어울렸다. 물론 언어의 장벽 때문에 1.5세 신부라고 불리는 한국출신의 미국교구 소속 신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능하면 현지의 신부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고 마음먹었다.

 미국교회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관광으로 구경하거나, 유학으로 등너머 엿보는 것이 아니라 사목의 현장에서 사목적인 관점에서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싶었던 것이다. 선교사목이나 파견사목이 그리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미국의 성당들도 얼마나 많이 섭렵했는지. 2년 만에 한인성당을 따로 짓기 전에는 남의 성당을 빌려 미사를 했으므로 토요특전과 주일에는 미사가 한 대 뿐이었다.

 그래서 새벽미사 시간에는 다른 미국성당에서 신자석에 앉아 미사했다. 우리 한인공동체의 미사가 끝나면 저녁시간에 다시 다른 미국성당으로 가서 신자석에서 미사했다. 그렇게 2년, 우리 성당을 짓고 난 뒤에도 틈만 나면 미국성당으로 갔다. 왜 그랬을까?

미국성당들은 전례가 참으로 다양하다. 제멋대로가 아니라 다양하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미국교회는 우리 한국교회처럼 역동적인 사목을 하지 못한다. 시대의 흐름 때문에 사회가 더 이상 교회에 의존할 것이 없었고, 신자들도 교회에서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신자들이 개인의 구원에 이르는 은총의 행위 외에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는 입장에서 교회가 신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전례를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하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던 셈이라고나 할까.

 거기다가 미국사회는 다인종사회이기 때문에 민족별로, 언어별로 문화의 전통이 다르므로 전례도 역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 셈이다. 그래서 미국 성당들을 섭렵하며 전례 참례하는 일은 대단히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다양한 전례, 그것은 <현장화> 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에는 토착화라는 용어가 사라져가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시대, 다인종 사회의 시대에는 토착화가 아니라 현장화의 시도가 필요하다. 미국은 처음서부터 다인종 사회로 시작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시도가 일찍부터 주어졌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양함 속에서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미사전례의 기본원칙에 충실하고자 함이었다.

 시작전례는 사제석에서, 말씀전례는 독경대에서, 성찬전례는 제단에서! 어느 성당이든 그 기본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미사전례는? 제멋대로다. 어느 곳 하나 원칙대로 지켜지고 있는 곳이 없었다. 마치 미사의 성격 자체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왜 이렇게 내버려두고 있을까?

 다음에 전하겠지만 유럽의 성당들도 우리나라처럼 하지는 않는다. 우리만 유별나게 전례에 대해 무관심하고,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내가 봉직하고 있는 성당에서는 원칙대로 하고 있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신자들이 많이 헷갈려하고 힘들어했다.

우리나라의 교회는 아직 사회적으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도 교회가 사회 안에서 담당해야 할 예언자로서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유럽이나 미국교회처럼 닮아가야 한다고, 닮아갈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또 그래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예언자로서의 사도직수행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안의 우리들 사고와 행위들에 대해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공동체가 공동으로 매주 거행하는 미사전례는 이러한 우리의 인식과 지평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기본원칙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한 전례를 하듯이, 교회로서의 본분을 다하면서도 이 세상의 다양한 문제들을 우리 안에 배양시켜 건강한 싹을 띄우듯이. 충실하게, 다양하게!

  / 조욱종 (요한) 천주교 부산교구 부곡동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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