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종의 우리네 교회는] 수목장의 유혹과 극복에 대하여

일본에서 수목장을 운영하는 어느 스님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다.

 “일본에서 수목장 열풍이 급속도로 번지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여자들의 한(恨)입니다!”

 “더욱 모를 말씀이군요.”

 “일본은 거의 대부분 가족묘지 아닙니까? 일본의 여자들은 절대적으로 남자에게 순종하며 사는데, 죽어서도 원수같은 남편 옆에 묻힐 수는 없다 이거죠. 적어도 죽어서만큼은 남편에게서 해방되고 싶다 이겁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 따로 묻히고 싶어서 수목장을 선택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던 꽃나무 아래에 묻힌다

 여자의 해방구, 씁쓰레한 이야기지만 이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비로소 죽어서야 해방이 되다니..... 그래서 더 물어볼 수밖에.

 “혼자 묻히는 장묘방식이야 다른 것도 많을텐데 왜 하필 수목장이죠?”

 “큰 나무를 선택하는 유럽의 수목장과는 달리 일본의 수목장은 작은 꽃나무입니다. 살았을 때 자신이 좋아하던 꽃나무 아래에 묻힌다! 얼마나 낭만적인 생각입니까? 여인의 정서에 접근했기 때문에 수목장이 성공하는 겁니다. 예약의 95%가 여인들입니다.”

▲ 일본의 수목장림은 입구부터 아기자기하게 꽃나무 정원으로 꾸미고 있다.

▲ 예약된 자리를 표시하고 있다. 이미 묻힌 묘지보다 예약된 표식이 더 많은 것을 통해서 수목장의 인기를 엿볼 수 있다.

▲ 중간 중간마다 이렇게 쉬는 공간을 활용한 조경을 함으로써 더욱 정원의 이미지를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수목장을 화제로 삼는 사람들도 대부분 여자들이다. 이렇듯이 수목장에 대한 관심은 환경친화적인 사고나 새로운 장묘에 대한 개척정신이라기 보다 낭만적인 이유에서 기인하는 비율이 더 높다. 그러다보니 수목장의 비용 계산 역시 수목장을 선택할 때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사실 수목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환경친화적인 사고에서부터 시작하고, 다양한 장묘법의 개척을 통하여 삶을 죽음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죽음의 의미를 아름답게 승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경향은 일종의 여인들의 한풀이와 여인의 정서에 맞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독일 교회의 주교회의가 염려하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행위의 목적과 방향이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을 때에는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면서 사람의 생각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 아래에 유골을 묻음으로써 바로 그 나무를 고인의 영혼과 일치시키고자 하는 유족들의 사고의 혼란은 범신론적인 사고체제로 옮겨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려하는 점은 과도하게 책정된 수목장의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독일의 프리트발트 유한회사에서 공개한 비용 산출(장례 이야기5 참조)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수목장에 드는 비용은 매장이나 화장보다 더 2~ 3배나 많은데 그 이유를 회사는 계속되는 관리 비용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더욱 산출 기준이 애매할 뿐만 아니라 수목장의 경비는 터무니없는 액수로 책정되어 있음도 이미 밝힌 바 있다.

 지금 현재 시행하고 있는 개신교의 O교회와 불교의 E사찰의 경우를 볼 때 3,500,000원에서 4,000,000원 정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임야의 공시지가 평균이 10,000원 정도라고 하니 수목장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하는 비용이 10,000 : 3,500,000(4,000,000)이라면 놀라운 계산이니 말이다.

 이런 계산이 나오니 수목장에 관한 세미나가 열리기만 하면 어디서 정보를 얻고 오는지 몰라도 장소는 꽉 차 버리고 만다. 이른 바 돈 되는 장사라는 판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의 의미를 개인적인 삶과 직접 연결시켜야

 새로운 장법(葬法)의 개발은 바람직하다. 인구의 팽창으로 인해 죽은 자들의 영역이 산 자들의 영역을 제한해 오고 있는 사태는, 삶과 죽음을 대립시켜 이원화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지향을 통해 삶을 의미있고 보람되게 살아가려는 의지들을 순간적인 삶에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장법의 개발은 산 자들의 영역을 보호주면서 동시에 죽음의 의미를 개인적인 삶과 직접 연결시킴으로써 삶을 보다 더 충실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장법의 다양한 시도들은 해양장, 우주장, 수목장, 공동체장 등등 폭넓게 확장되어가는데, 문제는 그 장법마다의 신학적이거나 철학적인 개념 정립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수목장의 등장에 놀라워하면서도 동시에 염려하는 점은 바로 이런 문제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항간의 섣부른 시도와 구분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하며, 일본처럼의 이유있는 유행이 되어서는 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욱종 (요한) 천주교 부산교구 부곡동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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