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데스크]
-토건-상업주의 말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서울대교구, 주교단과 교황의 의지 마저 거스르나?

교황청 평신도평의회가 주최한 아시아평신도대회가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동안에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성당에 찾아와 간절한 기도를 드렸던 노 사제가 있다. 문정현 신부. 전주교구 소속의 문정현 신부는 지팡이에 의지해 지친 발걸음을 어두운 성당 안에서 여전히 빛나는 감실 앞으로 끌어간다. 마치 아직도 이 성당 안에 그분께서 머무시는 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성경을 꺼내 읽고 잠시 묵상에 잠긴다. 그리고 평생의 숙제처럼 그분을 속 깊은 마음으로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판각을 새기듯이 십자가의 길을 돈다. 명동성당이 다 감당하지 못한 우리 시대의 고난을 대신 받아 안으려는 듯이.

▲ 문정현 신부는 오늘도 홀로 고적하게 그분과 맞대면 하고 있다.(사진/한상봉 기자)

무력한 피조물 앞에 '형제여, 자매여!'라며.. 문정현 신부 

바깥은 대낮처럼 밝아오고,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주교들이 유력한 평신도들을 거느리고 명동성당을 다녀갔다. 그들은 5박6일 동안 이곳에 머물며 '복음화'에 대해 수없이 말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에 대해서도 가끔 읊조렸다. 문정현 신부에겐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불편하다. '크디큰 백성의 나라'라는 이름은 평생 문 신부가 경험한 나라의 이름에 걸맞지 않았다. 그 나라가 문 신부에게 건네준 것은 '지팡이' 뿐이었다. 평생 '거리의 사제'로 살았지만, 그 거리는 예전이나 지금에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여전히 가난한 백성은 더욱 가난하고, 부유한 한 줌의 백성들은 여전히 저들끼리 '천국'을 농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백성의 희망을 거두어갈뿐 아니라 이제는 강물마저 저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파헤치고 있다. 나라가 어느 권력자의 소유가 아니듯이, 그 강물 역시 어느 토건업자나 일부 권력층의 독점물이 아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이 강물의 주인 역시 '국민'이다. 더 한걸음 나아가자면, 이 나라와 강물은 '국민'의 소유가 아니라, 이 나라와 강물에 기대어 살아온 숱한 목숨들과 가엾은 생명들의 집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소유다. 그래서 국민을 유린하고 뭇 생명의 터전을 훼손하는 것은 곧 하느님의 창조를 거슬러 반역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가난하다. 무력하다. 그래서 슬퍼하고 아픔을 삭이고 있는 중이다.

문정현 신부는 명동성당에 앉아서도 그들의 소리를 듣는다. 그 애처로운 호곡소리를 듣고 가슴이 터질 듯하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금여기, 한국 천주교회의 심장이라고 부르는 '명동성당'의 감실 앞에서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명동성당의 심장이 채 멈추기 전에, 아예 돌심장이 되기 전에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가난한 백성들과 무력한 피조물 앞에 '형제여, 자매여!'라며 무심했던 과거를 속죄하고 손 잡아 주길 기다리는 중이다.

지난 8월 10일부터 명동성당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다른 이가 동석하지 않아도 좋았다. 혼자 고요히 그분을 응시하며,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온 교회가 4대강 사업에 반대해서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며, 성당 앞에 '강물을 흐르게 하라!'고 현수막을 내걸었다. 어떤 사제들은 단식에 들어가고, 어떤 사제들은 머리를 깍았다. 그러나 사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 무력감을 어찌할 것인가? 재를 뒤집어 쓰고 기도해도 파헤쳐진 강을 되돌리고, 살해당하는 생명을 구할 수 없다. 
 

지난 5월 명동성당 들머리에선 매일같이 생명평화미사가 봉헌되었다.(사진/한상봉 기자)

가톨릭, 인생 동아리 아닌 진실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어야

주교들이 나섰다. 처음엔 이미 교구장에서 은퇴한 최덕기 주교 등이 나섰다. 그리고 지난 3월 12일에는 2010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를 마치며 한국 천주교 주교단에서 4대강 개발에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주교단은 성명서에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춘계 총회에 모인 한국 천주교의 모든 주교들은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이 나라 전역의 자연 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성명서 발표 전에 정부 실무진의 설명을 들어본 결과였다.

주교단은 "우리 산하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규모 공사를 국민적인 합의 없이 법과 절차를 우회하며 수많은 굴삭기를 동원하여 한꺼번에 왜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며, "경솔한 개발의 폐해가 우리 자신과 후손에게 지워질 때, 이 시대의 누가 책임을 질 수 있겠냐?"고 항변했다. 결국 "무분별한 개발로 단기간에 눈앞의 이익을 얻으려다가 창조주께서 몇 만 년을 두고 가꾸어 오신 소중한 작품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우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주교회의 기관지인 <경향 잡지> 7월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과는 아무런 인연을 맺지 않고 초연하게 산야에 묻혀서 명상과 기도와 영신적인 수련에만 몰두하신 분이 아니"라면서,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30여 년을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시면서, 그 시대의 세상이 차별하고 억압하고 외면하였던 보잘것없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시고,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시며,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예수는 탐욕과 불의와 죄악으로 얼룩지고 억압이 가득한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침묵하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나 개인의 마음의 평화, 심리적인 안정을 얻는 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라며 "예수님과 함께 고민하고, 예수님과 함께 참된 의를 실천하고, 예수님과 함께 연민과 수난의 길을 걷는 고달픈 여정"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교회를 생각이나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서로의 마음을 상하지 않고 평온하게 지내는 인생 ‘동아리’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수많은 종교 단체 중 하나일 수는 있어도, 더 이상 진실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주교단이 왜 4대강 문제에 깊이 개입하고 나서야 했는지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강우일 주교는 지난 6월 14일 양수리 성당에서 열린 생명평화미사에서 행한 강론에서는 "주교 개인이 아니라 주교단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도 한국천주교 주교단은 이미 4대강 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라면서 "천주교 신자들도 4대강 사업을 막고 아름다운 강산을 지키자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명동성당의 예수상은 오월부터 구월까지 내내 비를 맞고 서 있다. 생명평화미사만 하면 비가 와서 하느님도 이명박 정부 편인가 보다, 라는 말이 터져나오곤 했다. 그러나 정작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의 말대로 '그것은 하느님의 눈물'이다.(사진/한상봉 기자)

한국교회의 심장부, 명동성당만 다른 꿈.. 영업방해 마라! 

그러나 정작 한국교회의 심장부인 서울대교구(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입장은 주교단의 입장과 다른 행보를 걸었다. 주교단의 성명이 발표되기 직전인 지난 3월 8일, 5명의 주교를 포함해 1,100여 명의 사제들이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사제 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는 <창조질서 거스르는 4대강 사업은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이란 제목의 만화를 45만부 이상 전국 교구와 본당에 배포했다. 그리고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생명평화미사가 각 교구에서 봉헌되었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에서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은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인 조해붕 신부다. 그러나 그동안 보여준 서울대교구의 입장은 환경사목위원회의 활동을 만류할 수 없으나, 명동성당 등 사안을 교구 중심으로 끌어오는 데는 난색을 표명해 왔다. 

지난 4월 26일부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고자 했을 때, 당시 명동성당(주임사제 박신언 몬시뇰) 측은 "신자들의 안전과 통행에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장소 사용을 불허했다. 그럼에도 천주교연대 측에서 미사를 강행하고, 사제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에 기도천막을 설치하자, 명동성당 사목위원들은 천주교연대 소속 사제들에게 "내 본당에 와서 하지 말고 너네들 본당에 가서 미사 드리라"고 소리 질렀다. 그들은 "이럴꺼면 로만카라를 빼버리라"고 막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사제들의 기도천막이 명동성당 관할 구역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밀려나 서울대교구청 관할구역인 가톨릭회관 앞 주차장에 설치되었는데, 이번엔 천막이 단 하루가 지나지 않은 16시간 만에 관리국 직원들에 의해 강제철거되었다. 이때 서울대교구 관리국장 신부는 "영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철거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당시 천주교연대 측에서는 세 대의 차량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천막자리로 점유하면서, 비용을 내겠다고 제안했지만 소용 없었다.

지난 5월 10일에는 어렵사리 열린 명동대성당에서 생명평화미사에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사제ㆍ수도자 5005인 선언문>이 발표되었는데, 이 선언에는 전국의 사제 1,580명과 수도자 3,425명이 참여했다. 또한 주교 가운데 수원교구의 이용훈주교, 최덕기주교, 인천교구의 최기산주교, 정신철주교, 춘천교구의 김운회 주교, 대전교구의 유흥식 주교가 선언에 참여했다. 그러나 뒤이어 5월 17일부터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다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생명평화미사를 시작했을 때는 아예 천막은커녕 사제들은 생명평화미사를 마무리한 5월 31일까지 가톨릭회관 현관 처마 밑에서 노숙을 해야 했다. 

▲ 서울대교구 관리국 직원들이 회관 주차장에 마련된 사제들의 기도천막을 헐고 바닥을 뜯어내고 있다.(사진/김용길 기자)

추기경, 나는 어느 편도 들 수 없다...그러나 사실..

주교단의 성명에 힘입어 4대강 사업 중단 촉구운동이 한국교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기간동안 서울대교구와 명동성당 측은 단 한 차례 명동대성당을 빌려주었을 뿐, 사제들의 움직임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그들은 명동에서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마산교구의 안명옥 주교도 창원사파성당에서 생명평화를 미사를 집전했으며, 지난 9월 6일에는 안동교구의 권혁주 주교도 주교좌 목성동성당에서 생명평화미사를 집전했으나, 서울대교구의 정진석 추기경은 한국교회의 상징적 인물로 단 한 차례도 생명평화미사를 집전하지 않았으며, 애써 발언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오히려 지난 7월 21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찾아와 4대강사업과 관련하여 소통이 부족했던 점을 사과하자, 정진석 추기경은 "소통이 그렇게 쉽지 않지만 (국민에게) `왜 못들어. 그 정도만 해도 될 텐데'라고 말하지 말고 설명하고 또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소통에 조금 더 힘을 쏟으면 오해가 적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종교계의 4대강사업 반대운동에 대해 "4대강 사업은 과학적, 전문적 분야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는 만큼 종교계가 판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하는 사람을 욕하는 소리, 추기경은 왜 가만히 있느냐는 소리도 왕왕 들리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느 편을 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국민은 천주교 전체가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자 정 추기경은 "반대하는 쪽은 소리가 커 보이고 소수가 전체를 대변하듯이 하지만 그에 대해선 언젠가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곧 정진석 추기경의 기본입장이 천주교를 포함해 종교계의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며, 정부가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못한 것을 오히려 질책하고 나선 격이 되었다.  

이어 정진석 추기경은 지난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명동성당에서 행한 기념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정부의 대규모 국책사업 중 몇몇 사안들은 지금도 찬성과 반대의 극단으로 나뉘어 갈등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데,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적인 찬성과 반대가 아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끊임없이 대화하며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며 "분명한 것은 그 해결점이 개인 또는 특정 단체의 이해관계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단체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그 특정단체가 정진석 추기경 자신도 포함되어 있는 '한국 천주교 주교단'이 아닌지 의구심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보여준 정진석 추기경의 행보는 4대강 문제에 대해 주교단의 입장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엄밀히 주교단의 일치를 스스로 해치는 행위다.

▲ 용산참사 문제는 장례를 치르게 되면서 서울시와 일단 타결되었지만 유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사진/김용길 기자)

주교단과 교황의 의지조차 거슬러.. 왜?

아울러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애매한 태도는 교황의 입장과도 차이가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회칙 <진리 안의 사랑>에서 "교회는 피조물에 대한 책임이 있고 공공분야에서도 이 책임을 주장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모든 이가 창조의 선물로 받은 이 땅과 물과 공기를 수호해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인류가 자멸하지 않도록 보호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베네딕토 교황은 공교롭게도 2010년 1월 1일 세계평화의 날 담화문에서도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라고 요청했다. 

일각에선 서울대교구가 명동성당 일대의 재개발 건과 관련해서 정부시책에 대해 조심스런 행보를 걷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명동성당 서쪽 사도회관과 주차장 부지 등에 지상 9층과 13층짜리 건물 2채를 세우고, 지상에 로마의 스페인 광장을 닮은 계단광장과 녹지를 조성하는 내용의 '명동성당 종합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지난 4월 초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명동성당 일대 재개발에 대햔 보류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그러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4월 25일자 '평화방송 열린세상 이석우입니다'에서 "명동성당 자체가 근대문화유산이고, 소중한 문화재로 지정이 돼있기 때문에 혹시 공사로 인한 진동이 생길 것을 염려를 해 지금 보류를 한 걸로 알고 있다"며 "확실한 보완조치가 되면 잘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이와 관련해 2009년 12월 30일에 서울시와 극적으로 타결되어 마무리된 용산참사 문제 역시 해결과정 역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당시에도 이번 4대강 사업 반대운동 과정과 비슷하게,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인 이강서 신부가 용산참사 현장에 살다시피 했으며, 빈민사목 관련자들이 깊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정작 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용산참사에 대해 일절 발언하지 않았으며, 단 한 차례도 용산에 방문해 유족들을 위로해 주지 않았다. 그저 뉴타운 개발로 헐릴 위기에 있던 가좌동성당에만 방문해 주변의 빈축을 샀다. 

더 중요한 것은 2009년 연내 해결을 서두르던 서울시(서울시장 오세훈)가 용산범대위 측과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협상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해 온 곳은 의외로 서울대교구 관리국이었다. 당시 서울대교구 관리국장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에게 서울시의 뜻을 전했고, 정진석 추기경은 용산참사에 대한 종교인들의 중재 타이블을 교구청에 마련하려고 했다. 결국 주변의 만류로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종교인들의 모임에서 중재에 나서, 서울시와 범대위의 협상이 급진전되었다. 여기서 문제는 서울시가 왜 서울대교구 관리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서울대교구 측은 용산문제에 몰두하고 있던 빈민사목위원회와 협의도 없이 일을 추진했느냐는 부분이다. 그만큼 서울시와 서울대교구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게 아니냐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 다만 기도할뿐.. 은퇴한 문정현 신부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아파하며 오늘도 기도한다.(사진/한상봉 기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서울대교구와 정진석 추기경이 4대강 사업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명동성당 일대의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울대교구가 평화드림 등 주식회사를 차려 수익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전제한다면, 이번 명동재개발 역시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토건사업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자는 의도가 아닐지 걱정스럽다. 결국 서울대교구는 4대강 사업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서울대교구 자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태도를 결정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사안은 단순히 환경문제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서울대교구가 '교회 중심적 이기주의'와 상업주의로부터 자유로와야 하며, 개발차익을 고려하는 태도를 포기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교구 재산의 증식과 반비례하여 냉담자의 숫자를 늘려가는 게 교회 본연의 복음화가 아닐 것이다. 이처럼 '복음 없는 복음화' '예수 없는 성당'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고 먹먹해질 뿐이다.

문정현 신부가 명동성당에서 홀로 기도하며 서각(書刻)을 하신다 전해 왔다. 지금 문 신부가 목판에 새기는 글씨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였다. 참으로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의인 한 사람이 일어서면 온 세상이 새로운 기운을 받게 되는 법이다. '성인들의 통공'이라는 말이 속 깊이 저며오는 하루다. 다시 나도 읊조려 본다. '진리가 나와 교회와 세상을 자유롭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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