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누구인가-김인국] "정진석 추기경 실책, 쉬쉬할 일 아니다"

“이와 같은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법규를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할 뿐만 아니라
그 같은 짓을 저지르는 자들을 두둔하기까지 합니다.”(로마 1,32)
 

지글대는 폭염 아래서도 국토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일에는 쉼도 중단도 없다. 오체투지부터 소신공양에 이르기까지 애끓는 탄원과 눈물겨운 몸부림이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지만 결국 저 맑고 푸른 강들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백 년 전의 한반도도 그랬다. 조정의 관료들을 비롯한 양반지식층은 물론이고 조선인 대다수는 망국 사태를 방관했다. 소수의 지사와 소작농민들이 의병을 일으켜 끈질기게 저항했지만 한일강제병합은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강점 36년간 일제는 160만을 강제 징용했고, 30만의 여자들을 위안부와 일본군 강제위안부로 끌어갔으며, 40여만 명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고 갔다. 일제가 죽인 동포의 수는 자그마치 400여만 명이나 된다. 나라를 빼앗긴 지 일세기가 흘러 지금 우리는 강을 빼앗기고 있다. 아! 그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고, 빼앗겨서도 안 되는 절대의 가치들을 연거푸 강탈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 지난 3월 26일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 추도 미사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안중근에게 종부성사를 베풀었다는 이유로 빌렘 신부에게 직무정지처분을 내린 뮈텔 주교를 두둔하며 "뮈텔 대주교님의 입장에서는 교회와 사제, 그리고 신자인 안중근 토마스 모두를 돌보는 방법을 고심하며 최선의 선택을 내린 것"이라고 변호했다. (사진출처/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안중근 의사의 거사가 벌어지던 1909년 10월 26일 자 서울대교구장의 일기는 오늘의 우리를 기절초풍하게 한다. “드망즈 신부가 한 한국인에 의해 이토 공이 암살되었다는 소문이 장안에 나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러 저녁 5시경 왔다. 애도의 인사를 하러 통감부로 가서 사다케 남작과의 면회를 신청했다. 통감부에서는 아직 공식적인 소식은 아니라고 했다. 정치란 서글픈 것이다. 이토 공의 이번 암살은 공공의 불행으로 증오를 일으켜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습은 일본인들이나 몇몇 친일파 한국인들에게서만 보일 뿐이고, 일반 민중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뿐더러 그런 감정이 아주 일반적이다. 이토 공이 한국에 가져다준 그 모든 공적과 실질적인 이익까지도 한국을 억압하려는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뮈텔 주교 일기 4권 413쪽)  

인정과 물정에 어두운 게 교회라지만 식민지의 양떼가 겪는 피눈물 나는 현실에 어쩌면 저토록 둔감했을까? 옛 사람만 공연히 흉볼 일이 아니다. 역사는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7월 21일 한나라당 신임대표 안상수 씨가 찾아와 4대강사업과 관련하여 소통이 부족했던 점을 사과하는 자리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4대강사업은 과학적, 전문적 분야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는 만큼 종교계가 판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다.” 이 말에 고무되었는지 배석했던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이 “국민은 천주교 전체가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하자, 추기경은 “반대하는 쪽은 소리가 커 보이고 소수가 전체를 대변하듯이 하지만 그에 대해선 언젠가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 7월 22일 자) 

이 한 마디로 정 추기경은 한국주교단 명의의 결정사항을 파기하고 주교단의 전통적인 합의정신(sinodalitas)을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4대강의 암울한 미래를 염려하는 생명평화운동 진영에 구정물을 끼얹은 꼴이 되었다. 그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최근 서울대교구 사제인사 명단에는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의 이름이 빠져 있다. 삼척동자라도 그가 3년째 사목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도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사제단이 2007년 삼성그룹 회장 일가의 비리와 범죄를 고발한 일을 두고두고 괘씸하게 여기는 것이다.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고 슬프다. 인사권 행사가 고작 이런 수준이라면 세상의 폭군보다 나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어려서부터 우리는 장상의 실책일랑 슬며시 덮어 드리고, 경우에 어긋난 명령이라도 고분고분하도록 훈련받았다. 그러나 삼성 사태, 광우병 쇠고기 파동, 용산참사, 4대강사업 등 사회의 중요 현안마다 추기경이 보여준 태도는 본질적으로 그런 미덕으로 감쌀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는 이른바 ‘명동’의 정신적 자산을 탕진해버렸다. 뒤에서 쉬쉬할 일이 아니다. “하느님의 법규를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할 뿐만 아니라 그 같은 짓을 저지르는 자들을 두둔하기까지”(로마 1,32) 하는 지도자의 탈선을 공론의 장에서 토론해야 할 때가 왔다. 국권을 빼앗기고 생명의 강을 수탈당하는 일은 저절로 혹은 우연히 벌어지지 않는다. 백 년 전이나 오늘이나 교회의 알맹이라 할 그 무엇이 썩어버린 것이다. 

김인국 / 신부, 청주교구 금천성당 주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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