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문수 스님 추모제 도중에 눈물을 보이는 수행자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선수행(禪修行)을 하던 스님이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세상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산중에서 그는 세상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악행을 보면서 자신의 몸을 공양했다. 그가 세상에 던진 마지막 호소는 짧았다. 이명박 정부에게 4대강 사업 폐기, 부정부패 척결,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한 것이 유서의 전부였다.

평소 하루 한 끼만 먹고 단지공양(斷指供養)을 하면서 구도의 길을 걷던 선승은 왜 낙동강이 흐르던 둑방에서 목숨을 버렸을까? 홀로 용맹정진하며 바쳤던 그의 기도는 개인의 구원이 아닌 뭇 중생, 삼라만상이 겪는 고통의 끝에 머물면서 치열하고 깊은 번뇌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중생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겪는 것이 바로 修道(수도)의 본질임을 알게 해 준 것이다.

문수스님의 소신공양 이후 문규현 신부님과 호형호제로 지내며 함께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를 통해 온 몸으로 생명과 평화를 증언했던 수경 수님은 그 충격으로 가사장삼을 벗고 승적을 반납한 채 다시 고행의 길을 떠났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각각의 선택을 한 문수, 수경스님 두 수행자의 공통점은 국민을 속이는 우매한 권력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어 생명조차 버리며 온몸으로 고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타락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자기성찰이 있었다. 두 종교인이 보여 준 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생명보다는 돈과 권력을, 사람보다 물질을, 연대보다는 분열을, 협동보다는 이익만을 앞세우는 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또한 생명에 대한 종교의 입장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올봄부터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는 4대강을 순례하며 생명평화 기원미사를 하였고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과 단식을 진행하였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주교단의 성명 이후 천주교 단체의 활동이 많아졌다. 그러나 지난 5월 말 사제들의 단식과 기도에 대한 명동성당의 인식과 대처는 전혀 딴판이었다.

교인들이 나서서 사제에게 로만칼라를 떼라고 하며, 골방에 가서 기도하라는 조소와 야유는 그저 옆에 서서 쳐다보는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농성장을 방해하고 사제들을 조롱하며 외면하는 것을 보면서 교회 역시 정치권력의 손아귀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을 뿐이다. 생명존중에 대한 가치가 성당 앞에 늘어선 극우세력들에 의해 빨갱이로 매도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 안에서도 무시와 모멸감을 던지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것이 지금의 한국 천주교의 수준이며 현실인 것을. 하느님의 가르침을 이야기하지만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온 신앙의 수준인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머리와 몸이 따로 놀고,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며 결정과 책임지는 것이 다르니 이미 교회는 각자의 생각대로 존재하는 교회가 되었다. 4대강 반대에 대한 주교단의 성명은 말 그대로 표현만을 주장했을 뿐 교회의 지도층 역시 적극적이지 않으며 미온적 태도로만 느껴지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교회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소리는 일반 사회단체의 단순한 주장과 표현과 다르다. 교회의 가르침, 약속, 행동이 포함된 적극적 의지가 담겨진 것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행태는 무엇인가? 한쪽에서는 야유와 조롱, 외면과 무시를 받으니 말이다.

어찌보면 예수님이 세상에서 받아야 했던 멸시를 생각하면 이것도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한 교회에서 내린 결정과 권위가 이렇게 훼손되고 내동댕이쳐 지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교회는 세상 안에 있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아름다운 강이 콘크리트로 덮혀가고 가난한 이들이 힘들어 지고 부정부패의 시대이며, 악의 기운이 높아가고 있는데 교회의 모습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가난하지도 않다. 절망하지도 않는다. 세상 굴러가는 모습처럼 교회는 이미 오래전에 기득권이 되었다. 내 소중한 것을 버리지 않으니 덩치는 비대해졌고 세속의 고통에 둔감해졌고 어디가 병들고 아픈지도 모르게 되었다. 성찰 없는 교회의 구석에서 똑같이 비굴하게 서있는 나와 자기를 버리고 다시 길 떠나는 수도승을 대비해본다. 교회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한상욱 /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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