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의 필름창고] 장이머우 감독, <인생〉(1994)

장이머우의 〈인생〉은 ‘국공내전기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기’, ‘대약진시기’,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기’ 등으로 구분되어 중국현대사를 관통해서 이해하는 데 참으로 유용한 영화 중 하나다. 방탕하고 도박에 빠져 지낸 부자집 아들 부귀는 마침내 재산을 다 탕진하고, 호구지책으로 그림자극놀이를 하며 떠돈다. 그러다 국민당군에 붙잡혀 전쟁터로 내몰리다가 홍군에 합류하게 되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간다. 중국공산당은 내전에서 승리하고 드디어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 사이 부인 가진은 딸 봉화와 아들 유경을 잘 키우고 있었다. 부귀는 비록 재산을 다 탕진했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그것이 결국은 부귀의 목숨을 살렸다. 부귀와 도박을 하여 그의 집과 재산을 장악한 용은 악덕지주로 몰려 인민재판을 받고 처형을 당한다. 부귀가 그 모습을 보고 어찌나 쫄았던지, 그냥 바지에다 오줌을 누는 것이다. 그 뒤에 부귀는 꽤 소심해지고 몸을 사리기 일쑤다. 그러한 부귀의 태도는 영화 전반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비록 봉화가 병을 얻어 말을 못하게 되었지만, 이들 가족에게는 평화가 온 듯하였다. 그러나 이 평화는 대약진기, 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깨져버린다. 대약진운동은 1958년부터 1960년 전반기까지 중국이 고도 성장정책으로 전개한 전국적인 대중운동이었다. 이런 시절이었으니 생산력 증강을 위한 힘겨운 노동은 아이들에게도 해당되었는데, 어느 날 유경은 피곤한 나머지 잠을 자다 구장이 모는 차에 치여 숨지고 만다. 그 구장은 부귀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춘생이었다.

유경을 잃은 상처가 점차 아물어가고 봉화가 만이휘라는 청년에게 시집을 간다. 이때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기로 홍위병이 난립하던 시기다.(한국의 수구세력들이 시도 때도 없이 써먹었던 그 ‘홍위병’) 당시는 마오쩌둥에 대한 우상화가 극에 달했던 시절이라, 봉화가 만이휘가 결혼할 때에 <모주석어록>을 가슴에 품고 “부모보다 더한 모주석의 은혜…” 뭐 이런 모택동 찬가를 부른다.

거유와 궁리가 연기한 푸궤이 부부는 거듭된 비운에도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부귀가 나름대로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림자극놀이 도구를 불태우는 장면이다. 사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기나 대약진기만 해도 부귀의 그림자극놀이는 노동에 지친 인민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혁기에는 낡은 것으로 치부되었고, 살라져야 했다. 문혁 속에서 여러 전통들이 ‘구습’ 또는 ‘폐습’이라는 명목으로 파괴되는 모습이다. 이런 유형의 광풍은 훗날 중국사회에 큰 짐이 된다.

하여튼 다시 이 가족에게 평안이 찾아오는 듯했다. 봉화는 아이를 가졌고,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을 찾는데, 병원에 있는 의사들은 다 쫓겨났고 홍위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봉화에게 문제가 생겼다. 만이휘는 후다닥 달려나가 홍위병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의사 하나를 데리고 온다. 의사는 배가 고프다고 한다. 만두를 구해와 의사에게 먹이는데, 그만 만두를 먹다가 속에 탈이 난 의사는 봉화를 돌봐 줄 수 없었고 봉화도 세상을 떠난다.

부귀는 유경부터 해서 봉화까지 자신의 아이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부모가 자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왜 이 가족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왔던 것인가? 대약진이건 문혁이건 그러한 시대적 경향이 아주 직접적으로 이 가족을 해하지는 않았다. 부귀의 경우를 보면, 오히려 용케도 잘 피해갔다고 할 수 있다. 부귀는 그런 시대 흐름을 늘 두려워해 언제나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어찌되었건 살아 남는 것이 목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시대적 흐름의 파급이 간접적인 형태의 인과적 필연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우연과 만나는 지점에서 비극이 발생한다. 먼저 유경은 대약진시기라는 강한 노동강도의 시기에 힘겨워 졸다가 차에 치워 세상을 떠난다. 만약 그때에 부귀가 지쳐 있는 유경을 굳이 아이들이 일하는 현장을 보내지 않았다면, 또 설령 잤다 해도 구장의 차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였다면…. 대약진시기라는 거대한 조류와 그 순간의 상황과 조우하여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봉화도 마찬가지이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광란의 시기에 미숙한 홍위병 간호사가 아니라, 의사나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가 그 자리를 지켰더라면 봉화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필요가 있었던가! 어쨌튼 힘겹게 비판받던 의사를 데리고 왔는데, 왜 하필 그때에 만두를 먹고 탈이 나서 봉화를 돌볼 수 없었는가. 이처럼 유경과 봉화의 죽음은 참으로 기묘한 우연과 필연의 교차점에서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문혁은 끝이 났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을 가슴에 묻은 부귀와 가진, 그들에 앞에 남아 있는 봉화의 아이. 영화는 광풍이 가라앉아 평안함이 그윽한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저물어 간다. 그러나 원작소설 <인생>(위화, 백원담 역, 푸른숲, 2000)은 더욱 가혹하여 부귀의 아들, 처, 딸, 외손자, 사위 모두 세상을 떠나고 부귀만 세상에 남는다.

그나마 영화에서는 처, 외손자, 사위를 남겨 둔 것이다. 어떠한 광풍의 시대가 몰려오고, 어떠한 고난이 찾아온다 해도 “어쨌든 살아가라, 살아가야 한다”라는 어떠한 지상명령(至上命令)과도 같이, 그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든, 이 가족들의 삶은 그렇게 이어진다. 어쩌면 모든 이데올로기, 종교, 정치체제는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질박하고 끈질긴 인민들의 삶일지 모르겠다. 영화 자체가 이 가족의 슬픈 이야기를 극명하게 드러냈지만, 알고 보면 매 순간마다 굵직한 역사적 격변을 경험한 이 땅의 사람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으리.

*역사의 굵직한 시기별로 자식을 잃은 부귀 가족의 이야기〈인생〉이 있다면, 이와 유사하게 시기별로 남편과 아버지가 바뀔 수밖에 없었던 수연과 그의 아들 철두의 이야기를 다룬〈푸른 연〉이 있다. 이 영화 또한〈인생〉의 연장선상에서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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