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맞아

요즘 사전 약속 없이 오는 손님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 살아가는 방식들이 너무 정교하고, 또 계획 되어서, 불쑥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면 당황하게 된다. 설사 예고하고 오더라도, 손님맞이를 위해서는 아무리 가난한 대접이라고 해도 무언가 분주해진다. 우선 시간을 비워 놓아야 하고, 또 손님이 좋아할 만한 장소도 물색해야 한다. 손님이 오는 기간은 특별한 시간이니, 청소도 더 신경 쓰게 되고, 그렇다. 그러니 이 바쁜 세상에 누구를 찾아가는 일도, 누구를 맞는 일도 작은 일은 아니다. 게다가 그 손님이 가지고 오는 소식이 영 반갑지가 않다면 정말 문제일 게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찾아오는 손님의 예의를 이야기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이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가령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네 시가 가까울수록 나는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알게 되겠지. 그러나 만일 네가 아무 때나 무턱대고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이 구절은 영성지도 수업 시간에 잘 쓰는 구절인데, 시간 약속을 하고, 또 맞을 준비를 하면서, 손님을 위해 내 맘의 공간을 내어 주는 일은 정겹고 또 고마운 일이다.

요즘 나를 방문하는 고양이가 있다. 이웃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인데, 늦은 오후가 되면, 내 집 뒷문 앞에 얌전히 앉아 있다. 우리 사이에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 반드시 내 집에 다른 손님이 없어야 하고, 내가 문을 열고 정식으로 들어오라고 해야 한다. 그 고양이는 내가 문을 열어 두지 않으면 그저 가만히 오두막 하니 앉아 부엌 뒷문을 바라보고 있다. 더구나 문을 열어 준다고, 품위 없이 덥석 들어오지 않는다. 아주 부드럽게, “이리 들어와” 하고 두어 번 말하고 뒤를 돌면, 그제야 냉큼 들어온다. 그리고 온 집안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은 다 올라가 본 후, 내 다리를 슬쩍 건드리고는 서둘러 떠난다. 이 고양이는 예의도 바르며, 서로 사귀는 기쁨을 주는 손님이다.

늦은 오후면, 빛을 받으며 서 있는 우리 옆집 고양이. 고요한 시간이 되면, 조용히 다가오는 손님. 그냥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부드러움이&nbsp;손님의 예의라면, 기꺼이 내 맘의 공간을 내어 주는 일이 서로를 길들이는 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업. ©박정은
늦은 오후면, 빛을 받으며 서 있는 우리 옆집 고양이. 고요한 시간이 되면, 조용히 다가오는 손님. 그냥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부드러움이 손님의 예의라면, 기꺼이 내 맘의 공간을 내어 주는 일이 서로를 길들이는 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업. ©박정은

그렇게 그저 잠깐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주는 손님들이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기쁨을 주는 아가들이 그러하고, 온몸이 가려운 것처럼 느껴지는 나뭇가지 끝에 달린 새로 틔운 움이 그러하다. 어떤 손님이 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도 좋고, 새로 다가오는 봄의 싱그러움에 대해 그저 수다를 떨어도 좋고, 새롭게 읽은 소설 이야기도 좋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하느님 손 안에 놓인 자기 생에 대한 신뢰 혹은 희미한 기대 정도는 있어서 타인과 끝없이 비교해대는 치졸함을 뛰어넘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 누구도 서로의 기쁨 손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슬람 신비가 루미는 우리의 생 전체가 손님을 맞는 여인숙이라고 하였고, 그 누가 오더라도 잘 맞으라고 하였지만, 참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내게 전해 주고픈 생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를 골몰해야 한다.

내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 때, 갑작스레 다가오는 손님들은 거의 불청객이다. 성서는 무조건 내게 찾아온 손님에게는 환대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그 손님이 가지고 온 소식이 나를 사지에 몰 것 같은 예감과 함께, 내 삶의 궤적이 나도 모를 곳에 놓여질 것 같은 그런 소식이라면 반갑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뜻하지 않은, 혹은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맞은 대표적인 사람은 봄날 저녁 초승달 같은 유대 소녀 미리암이다.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은 천사의 방문을 받은 성모를 묵상하고, 또 그렸다. 눈을 깊이 내리 깔고, 명상에 잠긴 성모나, 성서를 읽으며 명상을 하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대부분 성모님의 얼굴은 고요하다. 열여섯 소녀에게 갑자기 나타난 천사는, 네가 아들을 낳을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에 대한 성모님의 표정들은 기쁨으로 빛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같이 최소한 시무룩하거나 심각하다.

성모 영보에 대한 여러 가지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가브리엘 천사를 맞는 이 소녀 마리아의 마음을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또 그 어린 소녀에게 위험천만하게 들리는 이 메세지를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의 마음은 또 어떤 것이었을까 하고. 그 순간 성모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방문을 받는 마리아의 반응은 영혼 깊은 곳, 내면의 응답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마 아직은 젊은 성모님은 “아이를 가져 낳을 터”란 그 말의 의미를 다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탈리아 피렌체 산마르코 수도원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성모 영보'.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이 작품에는 천사의 핑크핑크한 치마와 함께 몸을 앞으로 기울인 성모님의 분위기가 무언가 시작되는 신비에 대한 작은 설렘이 느껴졌다. 관광객이 없던 이른 아침 고요한 수도원을 걷다, 이런 천사라면, 그리고 이런 성모라면, 신비에 대해 좀 더 많이 이야기를 친구처럼 나눌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다, 언젠가 벽의 잔잔한 색은 사라지겠지만, 천사의 방문을 받았던, 그리고 받을 많은 이 땅의 성모를 생각했다.&nbsp;©박정은
이탈리아 피렌체 산마르코 수도원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성모 영보'.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이 작품에는 천사의 핑크핑크한 치마와 함께 몸을 앞으로 기울인 성모님의 분위기가 무언가 시작되는 신비에 대한 작은 설렘이 느껴졌다. 관광객이 없던 이른 아침 고요한 수도원을 걷다, 이런 천사라면, 그리고 이런 성모라면, 신비에 대해 좀 더 많이 이야기를 친구처럼 나눌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다, 언젠가 벽의 잔잔한 색은 사라지겠지만, 천사의 방문을 받았던, 그리고 받을 많은 이 땅의 성모를 생각했다. ©박정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성모 영보는 피렌체 산마르코 수도원 벽에 그려진 프라 안젤리코의 것이었다. 핑크빛과 연노랑 색깔로 그린 프레스코화는 무언가 천사의 방문이 마음 설레는 어떤 시작의 예고였음을 나에게 일러주는 듯했다. 부드러운 색에는 앳된 성모님의 마음이 느껴지고, 그런 성모님을 사랑한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 신비하고 고요한 시작의 예고에 흠모를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성모님의 마음, 언제나 순수하고 고요한 그 마음, 그리고 "네" 하고 피앗 (fiat) 하는 그 마음을 기리는 것이다.

얼마전 난 미술관에서 놀라운 성모 영보 조각 작품을 만났다. 이 작품의 성모님은 똑바로 서서 천사에게 화를 잔뜩 내고 있었다. 천사의 뜻밖의 메시지에 대해, 그리고 위험한 당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진심으로 성질이 난 얼굴이셨다. 나는 총명하고, 현실적인, 그리고 당당히 불만을 표시할 줄 아는 이 성모님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결국 예 하고 대답을 하겠지만, "아- 증말~ 이게 무슨 일이냐고요?"라며 따져 묻는 듯한 성모님의 모습이 진심 좋았다.

"아오! 뭐라고요?"라고 당당하게 물었을 것 같은 주저함이 없어 보이는 성모님의 모습. 이 작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폴 케티 미술관에서 만난 &nbsp;중세 작품으로 작가는 이탈리아의&nbsp; 조반니 발두치오인데, 성모님이 보여 주는 얼굴 표정에서, 21세기를 사는 일상 속에 계신 젊은 성모님을 뵌다. 이 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성모님은&nbsp;주님의 신비 앞에 우선 당당히 묻고, 품위 있게 기도하시고, 그리고 적극적으로 "네!" 하소서. 어느 것도 당신의 혼을 기죽이지 마소서! ©박정은
"아오! 뭐라고요?"라고 당당하게 물었을 것 같은 주저함이 없어 보이는 성모님의 모습. 이 작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폴 케티 미술관에서 만난  중세 작품으로 작가는 이탈리아의  조반니 발두치오인데, 성모님이 보여 주는 얼굴 표정에서, 21세기를 사는 일상 속에 계신 젊은 성모님을 뵌다. 이 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성모님은 주님의 신비 앞에 우선 당당히 묻고, 품위 있게 기도하시고, 그리고 적극적으로 "네!" 하소서. 어느 것도 당신의 혼을 기죽이지 마소서! ©박정은

성모님의 천사 방문 이후로도, 많은 여성이 고유한 삶의 이야기를 펼쳐 갔고, 또 펼쳐 갈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여성들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통해, 하느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이다. 천사의 방문을 받은 성모님을 묵상하면서, 내 삶에 이런 천사의 방문이 있다면, 나는 어떨까 상상해 본다. 오늘 저녁 가브리엘 천사가 나를 방문한다면, 큰 머그잔에 꾹꾹 눌러 담은 커피를 나누면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하나 묻고, 따져 보고 싶다. 그리고 나서, 그래도, 그래도 알 수 없는 신비라면 웃으며 "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자유와 순명을 살고 싶다. 그러니 성모 영보 축일은 누군가를 방문하고픈 삼월에, 그리고 부활의 빛을 기대하는 사순절의 어느 날에 놓여야 한다. 해서 이번 성모 영보(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는, 이런 저항하는 순명(conscientious disobedience)의 정신과 자유가, 나를 포함하여 이 세상을 사는 신앙하는 여성들의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지길 기도할 것이다.

박정은 수녀
홀리네임즈 대학 명예교수. 글로벌 교육가/학습자.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인문학"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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