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올드 오크', 켄 로치, 2024

나는 그의 영화에서 사회적 ‘구원’을 본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라는 책을 통해 자본주의 원조국인 영국에서 노동자 계급이 처한 비참한 삶을 고발했다. 켄 로치의 여러 영화를 보노라면 이 책의 영화적 버전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그의 영화에서는 신자유주의 대처리즘의 잔혹한 흔적이 드러난다. 칠레 영화 '공작'(파블로 라라인, 2023)에서 대처가 흡혈귀로 묘사되었듯이, 대처를 향한 조롱과 비판은 온당하다. 최근 영국인의 삶이 말이 아니게 형편없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제국,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구호를 낳았던 복지국가였던 영국에서는 이제 먹고사는 문제로 힘겨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비단 브렉시트 때문만은 아니며, ‘철의 여인’ 대처의 부작용이기도 할 것이다.

켄 로치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가난하지만 이웃을 돌볼 줄 아는 착한 이들이다. '레이닝스톤'에서는 주인공 착한 밥이 딸아이 첫영성체 드레스 장만해 주려다가 빚을 지고, 악랄한 사채업자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의도치 않게 죽이고 만다. 밥은 차마 가족에게 말도 못 하고 본당(성당) 사제를 찾아가 자신은 자수할 테니 대신 가족에게 소식을 전해 달라고 한다. 그 장면에서 사제의 반응과 고해성사는 가슴 찡한 구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영화 속 내내 멍하게 있던 사제는 한순간에 이야기를 이끄는 주요 인물로 부상한다. 물론 경찰이 찾아오지만. 영화를 꼭 보시라. 이 영화는 몇 해 전 ‘가톨릭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나의 올드 오크', 켄 로치, 2024. (포스터 제공 = 영화사 진진)<br>
'나의 올드 오크', 켄 로치, 2024. (포스터 제공 = 영화사 진진)

거짓 신화에 맞서 싸우는 예언자

켄 로치의 영화에서는 심심찮게 가톨릭적 소재가 등장하는데, '레이닝스톤'처럼 가톨릭을 따뜻하게 묘사하지만은 않고 꽤 날 선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비롯한 몇몇 예술가를 초대해 “당신들은 거짓 신화에 계략에 맞서는 선지자”이자 “자신의 ‘동맹’”이라고까지 하며 찬사를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켄 로치 감독은 1936년생 동갑내기다. 이 두 양반은 세상의 비참과 가진 자의 비루함을 너무도 잘 꿰뚫어 보고 있다. (관련 기사)

볼 때마다 심장이 뜨끈뜨끈해짐을 느끼게 하는 켄 로치의 영화가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서 이젠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의 영화적 버전처럼 느껴졌다. 켄 로치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말(물론 부디 마지막 작품이 아니길 바란다)이 심심찮게 나오는 '나의 올드 오크'는 '모든 형제들'을 제대로 떠오르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한 후 내내 난민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보이고, 전 세계를 향해 그들에 대한 환대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함께 먹으면 더욱더 단단해진다”

제목에서 ‘올드 오크’는 영화 속 배경인 영국 북동부 폐광촌의 오래된 펍이다. 이 펍은 환대와 받아들임의 공간으로 설정된다. ‘오크(참나무)’를 들으면서 예전 엄청난 인기 팝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가 떠올랐다. 노래 내용이 오크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 줌으로써 용서와 받아들임이 이뤄지는데, 영화 속 오크와도 상징성이 통하는 느낌이다. 이 영화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와 함께 북동부 3부작으로 이야기된다.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의 폭정을 피해 망명한 난민이 여기 폐광촌에 정착한다. 한때는 번성했던 이 지역의 경제는 한참 쇠락했고, 활기도 없다. 가뜩이나 불만 가득한 사람들은 난민을 만만한 이곳으로 보낸다고 심통이 나 있다. 올드 오크에서 모인 중년 남성의 입에서 나오는 난민 혐오 발언은 도를 넘어선다.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도 아주 지저분한 맹활약을 한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 때 인터넷에서 겪었던 그 끔찍한 순간을 연상하는 장면도 나온다. (함께 사는 반려견 마라의 죽음과 관련해서)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티제이와 사진작가를 꿈꾸는 소녀 야라 이 둘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티제이가 야라의 고장난 카메라를 고쳐주면서 가까워지는데, 지금은 쓰지 않는 펍의 다른 공간엔 이 지역에서 열심히 일했던 광부들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다. 1984년 광부들의 파업과 활기찬 축제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던 이 공간은 곧 난민과 마을 사람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처지가 딱한 야라는 마을 사람을 잘 돌봐 준다. 반려견 마라의 죽음으로 식음을 전폐한 티제이까지도. 사실 이 마을 사람의 삶도 비참하다. 굶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고. 사회복지사인 티제이의 친구와 야라가 펍에서 무료 급식소를 열어 마을사람과 난민이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티제이는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펍의 손님이라고 해 봐야 자신들의 불만을 엉뚱한 대상에게 화풀이하는 오래된 동네 친구들이니, 여기서 난민과 함께 식사를 하자면 그 얼마 안 남은 손님마저 끊기는 걸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예전에 삶을 놓고자 할 때 살아갈 이유를 찾아준 마라의 죽음 때문에 절망하는 그에게, 무료 급식소는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갈 이유가 된다. 수많은 사람이 먹을 음식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자, 파업 때 우리 어머니들은 수백 명의 음식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무척 씩씩하고 힘차기만 하다.

“함께 먹으면 더욱더 단단해진다.” 야라는 예전 광부들의 사진을 돌아본다. (이미지 출처 = '나의 올드 오크' 메인 예고편 갈무리)<br>
“함께 먹으면 더욱더 단단해진다.” 야라는 예전 광부들의 사진을 돌아본다. (이미지 출처 = '나의 올드 오크' 메인 예고편 갈무리)
마을 식당은 난민과 지역 주민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공간이 된다. (이미지 출처 = '나의 올드 오크' 메인 예고편 갈무리)<br>
마을 식당은 난민과 지역 주민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공간이 된다. (이미지 출처 = '나의 올드 오크' 메인 예고편 갈무리)

일부 불만세력이 있지만 무료 급식소로 인해 마을은 활기를 찾는다. 난민은 물론 마을의 가난한 사람도 함께 음식을 나눈다. ‘식구’란 말이 의미하듯, 사실 가족은 함께 음식을 나누는 존재다. 독일 철학자 칸트도 참 좋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음식이야말로 가장 값지고 복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함께 먹으면 더욱더 단단해진다.” 음식을 나누면서 가까운 이웃이 되고, 또 가까워진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기쁜 일이 되는 원환관계를 만들어간다. 무료 급식소에서 시리아 전통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야라가 찍은 사진을 함께 보는 장면은 무척 감동적이다. 하지만 불만세력의 분탕질로 무료 급식소는 심각하게 훼손되는데, 거기엔 배신까지 일어난다.

비극 속에 피어난 한 줄기 희망

실의에 빠져 바닷가를 거닐던 티제이에게 비보가 전해온다. 야라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사실 야라의 가족은 한때 아버지의 생존 소식에 기뻐했으나, 야라는 처참한 시리아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결국 이리되고 만다. 티제이는 곧바로 야라를 찾아가는데, 야라의 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수많은 마을 사람의 행렬이 이어진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비탄에 젖은 사람과 함께하려는 마음이 먼저다.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이요 희망이 피어나는 장면이다. 좌절된 밥상 공동체는 애도의 공동체로 전환되며, 영화 속 희망을 향한 낭랑한 외침 '용기, 연대, 저항'의 깃발 펄럭이는 행진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시리아 난민이 만든 ‘용기, 연대, 저항’이 적힌 깃발. (이미지 출처 = '나의 올드 오크' 메인 예고편 갈무리)<br>
시리아 난민이 만든 ‘용기, 연대, 저항’이 적힌 깃발. (이미지 출처 = '나의 올드 오크' 메인 예고편 갈무리)

2016년 영국 북동부 더럼 주의 실화를 모티프로 만든 이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이 중 하나인 난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우러질 것인지를 너무도 따뜻하고 푸근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영화는 난민 문제 그 이상을 보여 주는데, 자신을 비탄에 빠지게 한 추악한 세력에게는 찍소리 한마디 못 하고 자기보다 더 처지가 곤란하고 비탄에 빠진 자를 향한 혐오와 편견을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지.” 대다수 없이 사는 사람이 범하는 어리석음을 살포시 꾸짖는 대사다. 알고 보면 지금 한국 사회의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해당하는 대목이다.

극악한 대처리즘으로 내쳐진 폐광촌 사람들은 난민을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희망찬 시선”(헐리우드 리포트)을 확보하며 연대할 때, 비로소 자기 구원의 길을 찾는다. 영국의 보물, 아니 세계의 보물인 거장 켄 로치 감독이 던지는 단순하면서도 굳건한 메시지는 하느님의 심부름꾼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과도 강건한 동맹을 형성한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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