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해마다 정초가 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일 년 운세를 보는 경우가 있다. 오래된 풍습이다. 운세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당이나 역술인을 찾아가 점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점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예지 능력을 믿는다기보다는 긍정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AI시대에 비이성적 주장이나, 비과학적 상황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특히 미래 예측은 슈퍼 컴퓨터도 맞추기 힘든 고난도 작업이라서 몇 가지 가능성만 열거해 놓고 대비하는 것이 유일한 대응 방식이다. 그래도 호기심 많은 호모사피엔스들은 가끔 점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가볍게 점집을 찾아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무당과 역술인들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기성 종교가 대신하거나 온라인 토정비결과 같은 가벼운 디지털 방식이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조금 오래된 통계이지만 무당과 역술인이 이 디지털 시대에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2006년 대한경신연합회에 가입한 무당은 약 14만 명, 역술인연합회에 가입한 역술인은 20만 명으로 합계 34만 명 정도였는데, 10년이 지난 2017년 두 단체에 각각 회원 약 30만 명, 비회원까지 추산하면 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총 100만 명의 무당, 역술인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6년에서 2017년 사이에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여전히 발전하고 있었고, 특히 2016년에는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는 뉴스가 온라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런 시기임에도 무당과 역술인은 계속 늘고 있었다. 100만 명이라는 숫자는 개신교 목사의 네 배에 해당되는 큰 규모다.

무당과 역술인이 증가하고 있는 일차적 이유는 분명하다.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 그 수요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발생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 또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 본성은 인간이 시공간을 의식하게 된 이후로 계속 있어 왔다. 시대에 따라 본성이 표출되는 양식은 다르지만 미래라는 아직 오지 않은 시공간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이천 년 넘게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톨릭은 근대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시대에 잠시 흔들린 적은 있었지만 미래라는 시공간에 대한 해석을 주도하면서 당시 과학기술과 근대적 이념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런 이유가 디지털 시대에 무당과 역술인 증가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왜 디지털 시대임에도 무당과 역술인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이비 종교들이 횡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운세 홈페이지 갈무리)
(이미지 출처 = 운세 홈페이지 갈무리)

디지털 기술은 우리 사회를 좀 더 이성적이고 투명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피해 숨을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줬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만든 가상공간은 우리가 실제 살고 있는 사회적 공간 또는 현실 공간과 달리 사회적, 제도적 규범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다. 누구나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다. 사회적 현실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개별 정체성보다 사회적 규범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의 일탈 또는 소수의 목소리는 엄격히 제한되거나 부정된다. 대부분의 경우 다수의 의견이 중요시되며 다수 안에 있어야만 적절한 대우를 받는다. 민주주의는 그 다수의 결정에 의해 국가와 사회가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이런 사회적 공간에서는 다양성이 인정받기 힘들다. 다수와 소수, 정통과 사이비, 이성애와 동성애, 비장애인과 장애인 등의 이분법적 구별이 일반적으로 수용된다. 적절한 직업이 있고 이성애자이며 건전한 종교가 있고, 이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선호된다. 성소수자, 장애인, ‘하등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무시당하거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은폐한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개인들은 다수의 의견을 추종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정체성, 성적 취향, 종교적 신념이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만나 모임을 만들고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서는 기존의 도덕이나 질서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소해 보이는 것들도 여기에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고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 못하는 것들도 여기에서는 인정을 받는다. 사회적 공간에서는 소수자로 낙인찍힌 사람이라도 가상공간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발언한다. 무속과 역술에 대한 관심이 이 공간에서는 정당하게 인정받는다. 개인의 특수한 경험들이 교류되고 그 경험을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이어지면 그동안 부정적으로만 묘사되었던 무속과 역술은 이제 보편적 설득력을 얻게 된다. 사이비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의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은 교인들을 자신의 영향력에 구속시키기 위해 외부 세계와 단절된 특정 물리적 장소 안에서만 생활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최근 사이비 종교들은 특정 장소를 벗어나 일반 교회와 같이 전국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예전 특정 장소에서의 영향력보다 더 크다. 이들은 물리적 공간 대신 자신들만의 가상공간을 만들어 외부 세계의 규범 대신 자신들만의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에 순응하면서 생활한다.

가상공간의 탄생 전까지 호모사피엔스는 물리적 공간에서만 호흡해 왔다. 이 공간은 철저하게 사회 위계가 존재하는 사회였고 법과 질서로 유지되는 공간이었다. 공간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공간에서 그리고 공동체에서 추방당했다. 공간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순응하거나 혁명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방법뿐이 없었다. 이런 숨 막히는 상황에서 디지털 네트워크가 만든 가상공간이 등장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신들의 공간을 구축해 호흡하고 발언하고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 공간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해방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사이비 교주와 같은 반사회적 인간들의 활동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기성 고등종교가 현실 공간에서 다수에 대한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소수그룹들은 가상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확장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일시적일지 또는 계속 유지될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우리 모두 처음 겪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홍열

연세대 졸업. 사회학 박사. 미래학회 편집위원.
저서 "축제의 사회사", "디지털 시대의 공간과 권력"
공저 "뉴사피엔스 챗GPT", "시그널 코리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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