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다가 생성형 AI 챗GPT 등장으로 다소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은 메타버스가 정부 지원 등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지난 1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 K-메타버스 공동관을 구성하고, 국내 메타버스·XR 기업 참가를 지원하면서 앞으로도 메타버스 분야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통부에서는 메타버스 시장 확장성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고 시장 선점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통부의 이런 판단과는 별도로 메타버스 시장은 계속 확장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시간과 공간을 인지하는 유일한 피조물인 호모사피엔스는 늘 새로운 공간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 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신조어다. 사람에 따라서는 영어 메타버스 대신에 '가상 우주' 또는 ‘가상 세계’라는 번역어를 쓰기도 한다. 메타버스의 의미에 대해서는 "정보통신용어사전"에서 잘 정리해 주고 있다. 이 사전에 따르면 메타버스는 "현실에서 가능한 사회, 경제, 교육, 문화, 과학 기술 활동을 아바타(avatar)를 통하여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가상의 3차원 공간 플랫폼"이다. 즉 현실은 아니지만 사실상 현실과 같은 공간에서 나의 분신 아바타가 내 대신 모든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물론 이 활동은 현실과 유리되지 않은 실제적 활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보자. 2023년부터 정식 운영을 시작한 ‘메타버스 세종학당’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세종학당재단이 외국인 한국어 학습자들을 위해 구축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이 안에는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강의동, K-컬처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체험동, 사용자들이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마을 공간이 있다. 한국어 학습 희망자들은 이 공간 안에 들어와 한국어 습득,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다. 문체부가 ‘메타버스 세종학당’을 만든 이유는 단순하다. 첫째는 현실 공간에 있는 세종학당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K-POP 등의 영향으로 한국어,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해외 젊은 세대가 한국으로 유학 또는 어학연수 오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물리적 공간을 단시간 내에 확장시켜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서 메타버스 세종학당을 만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메타버스 세종학당’과 ‘세종학당’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세종학당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을 문체부가 했기 때문이다. 운영 초기에는 메타버스 세종학당이 제공하는 서비스 품질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메타버스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ICT의 모든 기술이 완벽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가상현실(VR), 증강 현실(AR), 블록체인, 클라우드 컴퓨팅, 5G, 인공 지능(AI) 등 최첨단 기술을 포함한다. 이런 기술과 기술의 구성물들이 조화롭게 구성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고 구축 비용 역시 현재로서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그러나 시장이 메타버스의 상업성을 확인하고 본격 투자를 시작하면 품질은 좋아지고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두 공간, 메타버스와 현실 공간에서 제공받는 서비스 품질 차이가 거의 없게 된다.

위 사례는 정부가 구축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관련 이야기지만 몇몇 기업은 이미 그룹 차원의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민간기업들은 공공기관보다 더 적극적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유통업계에서는 상품 판매를 위한 또 다른 공간으로서 메타버스 플랫폼을 적극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고 있거나 완성해서 사용하고 있다. 실제 매장에 가지 않아도 메타버스 안에서 모든 상품이 구비되어 있다. 쇼핑을 하다가 특정 상품을 선택하면 실제 상품이 배달된다. 옷을 입어 보고 결정할 수도 있다. 메타버스 안에서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가상화폐로 결제도 한다.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에 기반을 둔 온라인 교회 '라이프닷처치'(Life.Church)가 만든 메타버스 교회 홈페이지 메인 일부. 홈페이지 안에 다양한  (이미지 출처 = life.church)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에 기반을 둔 온라인 교회 '라이프닷처치'(Life.Church)가 만든 메타버스 교회 홈페이지 메인 일부. 홈페이지 안에 온라인으로 예배 참석하고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이미지 출처 = life.church)

이 메타버스가 서서히 종교, 믿음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의 한 연합감리교회가 온라인 게임 'Second Life'(세컨드 라이프)에서 가상 교회 'The Aloft Non-Traditional Worship Center'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 가상 교회에서는 예배에 참석할 수 없는 개인을 위해 예배 및 종교 공동체를 위한 온라인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예배를 위한 성소, 결혼식과 장례식을 위한 공간, 명상과 성찰을 위한 정원 등의 공간을 갖추고 있다. 이 교회는 메타버스 플랫폼 구축 대신 온라인 게임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지만 자체 플랫폼을 구축해 운영하는 교회도 있다.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에 기반을 둔 온라인 교회 '라이프닷처치'(Life.Church)는 마이크로소프트 메타버스 솔루션인 알트스페이스 VR을 이용해 메타버스 교회를 만들었다. 메타버스 교회 운영 방식은 일반 교회와 동일하다. 입구에 안내자가 있고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와 찬송을 하고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헌금을 하며 의식이 끝난 다음에는 봉사와 교제를 한다. 이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첫 번째 주말에 그들은 97명이 참석했고 두 사람이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97명 중 두 명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지만 가상세계에서도 신앙생활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신앙 또는 믿음 생활은 서로 다른 두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적 행동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공간 중 하나는 하느님나라로 표현되는 절대자가 있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가 서 있는 물리적 현실 공간이다. 사람들은 현실 공간에서 전달되는 목회자의 메시지를 듣고 신앙심을 깊게 하고, 보이지 않는 공간에 계시는 분과 기도로 소통하면서 위로를 받고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두 공간에 존재하는 분들과 소통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존재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신의 아름다운 피조물'이라는 자기 확신은 어느 상황에서나 절대적이었다. 이제 이런 전통적 또는 물리적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대신 내 아바타가 현실 교회가 아닌 가상세계 속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헌신하기로 결단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와 내 아바타 사이의 구별이 없어지고 결국에는 물리적 현실 공간과 메타버스의 구별이 희미해진다. 일상적 삶뿐 아니라 영적인 신앙생활도 메타버스 안에서 이루어지면서 현실 공간에 근거하고 있는 교회와 제도는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고 다시 근본적 질문을 하게 된다. 인간에게 종교란, 믿음이란 정말 무엇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김홍열

연세대 졸업. 사회학 박사. 미래학회 편집위원.
저서 "축제의 사회사", "디지털 시대의 공간과 권력"
공저 "뉴사피엔스 챗GPT", "시그널 코리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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