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도 비관도 하지 말아야 한다!

2023년 4월 챗지피티4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이 기술이 보여 준 효능과 기술 공개와 동시에 나타난 문제점을 개발자들이 몇 달 만에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 주어 큰 화제가 되었다. 최소 10년 이후에나 등장할 것이라 예상했던 기술이 빨리 나타난 점, 문제점을 보완하는 속도도 몇 년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불과 몇 달밖에 걸리지 않아 관계자들을 흥분시켰다. 그러자 언론과 얼리 어댑터들은 이 신기술이 우리 삶을 송두리째 빠르게 바꿔 놓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언론이 떠든 정도의 혁명적 기술이라면 모두 이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처음의 환호는 빠르게 잦아들고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왔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볼 수 있겠다.

첫째, 어떤 기술이든 그 기술 하나만으로는 실생활에서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챗지피티4가 상징하는 인공지능 기술 혁신은 가히 혁명임에 틀림없다. 속도, 질, 양면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이 기술을 보통 사람이 일상에서 혁명으로 경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인터넷이 처음 상용화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된다. 인터넷도 다른 기술들과 융합되며 활용 범위가 넓어진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하였다. 다만 인공지능의 경우 이때보다는 영향을 미치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둘째, 새로운 기술은 등장 즉시 수용되지 않고 여러 단계를 거친다. 기술은 효율성, 경제성, 편의성 등 세 가지 측면의 효용이 검증되어야 상용화된다. 하루에도 수만 가지 기술이 개발되지만 상용화되는 것은 10퍼센트 미만인 이유다. 일단 인공지능은 이 1단계를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2단계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자기 돈을 들여 기술의 효능을 테스트해 주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들이 바로 얼리 어댑터다. 이들 덕분에 기업은 자기 돈을 크게 들이지 않고 기술이 가진 결함을 보완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박애주의자(philantrophist)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들 역시 자기 비용으로 새로운 기술을 쉽게 활용하는 방법을 대중에게 알려주고 쓰임새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미디어 발달사에서 보면 ‘성(sex)’ 관련 산업이 기술을 보급하는 데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기술개발자들의 의도와 다르게 사용하는 이들 때문에 보급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VHS테잎과 VCR은 스웨덴 포르노 업체와 만나 널리 전파되었다. 인터넷 역시 초기에 성산업이 보급 확대에 기여하였다. 위성 수신기는 이슬람권 남성들이 포르노를 보기 위해 구입하였다. 이처럼 기술개발자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기술을 활용하는 이들이 기술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다. 3단계는 이렇게 유용성이 확인되어 다른 기술과 제품에 적용되는 단계다. 범용(汎用)화 단계다. 인공 지능도 위력을 발휘하려면 이처럼 실생활과 밀접한 다른 기술과 기계에 적용되어야 한다. 당연히 이 단계를 다 거쳐 기술이 대중화되더라도 관심이 적거나 아예 없는 사람이 있다. 여건이 안 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어떤 기술이 혁명이어도 당장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데이터교는 실현되었는가?

유발 하라리가 예측한 데이터교는 어떻게 실현되었을까? 먼저, 기성 종교는 ‘데이터교’가 되지 않았다. 종교인이 대체로 신기술 수용에 소극적이었고 이로 인해 자기 정보를 디지털 공간에 노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직자라면 몰라도 신자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할 필요성도 적었다. 그래서 기성 제도종교는 데이터교가 될 수 없었다. 기술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종파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사종교로서의 데이터교는 어느 정도 신도를 얻었다. 일례로 빅데이터를 기초로 미래를 예측하는 분야 종사자들은 데이터의 위력을 실감했다. 이들은 교리보다 데이터를 신뢰하게 되었다. 데이터가 충분하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이들에게는 확실한 것이 데이터뿐이어서 데이터의 거대한 집적과 이를 분석하는 빅데이터 기술이 신이다.

유발 하라리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겠지만 데이터교는 아직 이들만을 신도로 얻고 있을 뿐이다. 다만 데이터교의 확장 가능성은 큰 편이다. 데이터교는 인공지능 기술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기술 발달에 따라 두 번째 부류 신도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기성 종교는 인공 지능을 수용하는 데 소극적일 것이므로 데이터교가 될 가능성은 앞으로도 희박하다고 보아야 한다.

인공지능은 기성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성 종교가 데이터교가 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치로 기성 종교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 예측하게 된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인류가 개발한 기술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기술은 무엇일까?’ 나도 답을 알고 놀랐는데 ‘쌀, 밀, 옥수수’가 정답이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이 세 곡물은 기후에 따라 재배지 분포의 차이를 보일 뿐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보급돼 있었다. 그러면 이 곡물이 어찌 기술인가? 이 곡물들은 현재 처음 재배를 시작했을 때의 상태가 아니다. 품종 개량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여러 기술이 사용되었다. 식량이다 보니 대규모 경작이 필요했는데 이 역시도 기술이 필요했다. 일례로 농약 같은 기술이다. 그러니 현재 이 곡물들은 처음 야생에서 발견되었을 때와 유전자는 비슷해도 여러 기술 혁신이 이뤄져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기술은 지구상 대부분 지역에서 활용하는 기술이라는 면에서 가장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농업혁명의 다른 기술은 그리 보편적이지 않았다. 산업혁명의 기술은 훨씬 덜 보급되었다.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은 지구상 인구의 절반 미만 정도에만 보급되었다. 산업화한 나라들은 대부분 적도 이북에 위치해 있고 이들 나라 간에도 격차가 크다. 정보혁명 기술의 보급 범위는 훨씬 더 좁다. 산업화한 나라의 일부만 이 기술을 활용하는 정도다. 인공 지능은 정보혁명에 해당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훨씬 활용 범위가 좁다.

세계가 좁아졌다고는 하나 이 지구상에는 농업혁명 단계에도 미치지 못한 나라, 산업 혁명에  간신히 이른 나라, 정보혁명에 이르러 초정보사회로 나아간 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가 공존하고 있다. 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고려하면 정보혁명을 경험하는 국가들조차 인공지능이 모든 영역에 당장 영향을 행사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이 기술을 얕보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은 기술사에서 가장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기술이다. 그만큼 현재에도 강력하고 앞으로 실현될 잠재력이 크다. 효용을 경험할수록 쓰지 않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 안에서도 정보화가 더딘 유럽은 이 기술에서 크게 뒤처져 있다. 디지털 혁신을 경험한 일부 국가에서만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위력과 잠재력은 인정하더라도 당장 보편적인 기술이 되리라 보게 되지 않는다.

모든 종교 가운데 개신교가 정보‧소통 기술에 가장 개방적이고 도입도 빨랐다. 가톨릭이 그다음이었다. 아마도 더 빨랐던 곳 가운데 일부 신흥 종교가 있을 수 있다. 그 나머지 종교들은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거치지 않은 사회에 사는 신도가 중심이다 보니 이런 기술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다른 디지털 미디어를 도입할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인공지능도 받아들일 것이라 예측하게 된다. 한국 종교들은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있으니 이 도입 속도가 더딜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일부에게만 효용을 갖게 되리라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가톨릭평론>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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