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는 되도록 피한다. 나이 들어 체력에 부담되기 때문만이 아니다. 택시를 잡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닌 탓이다. 전화기로 부르려면 특정 기업의 회원으로 먼저 가입해야 한다는데, 개인정보를 제공하면서 바가지 요금을 감내하기 싫다. 게다가 막대한 고객의 자료를 제멋대로 이용해 치부하는 기업이라면 더욱.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국을 벌이고 시간이 꽤 지난 어느 날, 인천의 한 단체에서 주관하는 새벽 강좌에 나온 구글 담당자는 당시 개발한 버전 중 중간 정도 실력의 프로그램이었다고 뻐겼다. 상당한 바둑 기록을 기억하며 스스로 학습한 알파고를 이세돌 9단은 한 차례 이겼지만 유일한 승리였다. 알파고 퇴장 이후 비슷한 프로그램이 여럿 등장했다는데, 바둑 실력 높이려는 사람이 주요 고객인 모양이다. 한데 그런 프로그램 이후, 없는 실력이지만, 바둑에 대한 흥미가 싹 사라지고 말았다.

챗GPT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대학 강의를 마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챗GPT를 모르던 시절, 인터넷에서 복사해 리포트 제출하는 학생이 많았지만, 거의 찾아내지 못했다. 양심에 호소했고 의심스러워도 대개 넘어갔는데, 챗GPT가 보편적이라는 요즘 대학가의 풍경은 어떨까? 강사 처지에 복사 여부를 검색하는 프로그램은 사용한 적 없는데, 까다로운 교수는 챗GPT를 감시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을까?

인공지능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저장할까? 리포트 복사나 바둑 연마를 위한 프로그램은 차라리 간단할지 모른다. 작곡과 그림, 동영상까지 제작하는 상황이 아닌가. 고객의 복잡한 요구에 만족스럽게 응답하는 인공지능은 얼마나 많은 전기를 요구할까? 웬만한 포털의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은 우리 중소 규모 도시의 전력량과 비슷하다고 한다.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좋아요’ 한 차례 클릭하는 순간 평균 7대 컴퓨터 사이에 신호가 전송되면서 전기를 소비한다는데, 챗GPT는 대단할 게 틀림없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올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의 관심사는 단연 인공지능이었고 우리나라 제품의 인기가 대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스 화면에 국내 업체의 발언이 잠깐 비쳤는데, 찬사받았다는 내용을 듣자니, 어처구니없었다. 바다에 포함된 수소를 모아서 하늘을 나는 친환경 자동차를 꿈꾸는 게 아닌가. 화려한 화면을 배경으로 보여 주는 영상의 주인공은 바닷속 수소를 어떻게 모을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궁금해 하는 관광객도 없었다.

우리는 막연히 운전이 필요 없는 수소나 전기 자동차를 친환경 운송수단으로 인식한다. 하도 그리 홍보해 당연하다 여기는데, 누가 홍보했을까? 소비자는 아니다. 그런 자동차가 복잡한 시내를 안락하게 주행하려면 얼마나 많은 전자장치, 전자신호, 자동제어, 전력을 동원해야 할까? 모든 장비와 소재를 생산, 공급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 관리와 운영 인력, 그리고 폐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왜 생략할까? 사람은 대개 순수하지만, 100퍼센트는 아니다. 드물게 일어나는 예외가 무척 무섭다. 전쟁이나 경쟁, 개인과 사회적 갈등은 빛의 속도로 돌아가는 전자신호를 해킹할지 모르는데, 그때 발생하는 파국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유력한 정치인이 젊은 경호 인력과 지지자로 둘러싸인 광장에서 대낮에 피습되었다. 천만다행으로 단단한 셔츠 깃이 날카로운 칼끝을 어느 정도 막았고 그는 생명을 지킬 수 있었지만, 살인미수범은 단독 범행을 주장하는 모양이다. 해외 언론은 정치인에 대한 테러가 적은 편이던 우리나라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는데, 앞으로 달라질까? 단독 여부는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흉기를 사용하는 폭력은 경호가 보충되면 예방되겠지만, 인공지능은 어떨까? 빅데이터와 딥러닝은 정의의 편을 고집하지 않는다.

새 학기를 앞두고 인공지능을 앞세우는 학습기기 광고가 극성이다. 유명 연예인을 동원하는 광고가 한둘 아닌데, 경쟁 승리를 위해 최첨단을 앞세우겠지. 문해력을 마비시킨다는 교육 전문가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는 학습기기는 1등 도맡게 한다고 엄마 아빠를 유혹하는데, 1등이 넘칠 세상은 얼마나 끔찍해질까? 더욱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시대의 전기 소비량 걱정에 그칠 수 없다. 학습기기에서 헤어나지 못할 학생은 장차 어떤 상상력에 지배될까? 상상하기 두렵다.

박병상
60+ 기후행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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