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매달 세 번째 금요일에 '현 시기의 병적 징후들'을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사회복지 및 보건의료 관점에서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집필해 주신 정형준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최근 환자 보호자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 뇌경색 환자에게 ‘줄기세포 패치’를 추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패치는 미국, 일본에서는 허가를 받았는데 한국은 아직 미승인이지만 효과가 입증되었으니 써 보라는 주변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궁금증에 ‘줄기세포 패치’를 검색했다. 다양한 결과가 나왔다. 심장조직 재생에 쓰려고 연구 중인 과제가 있었고, 상용화 된 것은 대부분 피부 미용과 관련된 것이었다. ‘제대혈 줄기세포 배양액’이 성장 인자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패치를 붙이면 노화된 피부 조직이 재생된다는 식의 설명이 덧붙여졌다. 실제로 ‘재생’, ‘항노화(안티에이징)’가 피부, 성형 분야에서 범람한 지는 오래됐다. ‘줄기세포 화장품’ 광고는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피부미용 분야의 과장된 광고보다 앞서 이야기한 환자들에게 가짜 의료가 공급된다는 점이다.

뇌경색으로 인한 신경 손상을 치료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을 환자나 보호자는 거의 없다.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길이 없는 말기 암 환자나 희귀 난치병 환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종 요법, 자연 요법에 빠지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환자들의 심정을 악용하는 세력들, 가짜 약과 가짜 의료를 부추기는 세력들에 대해 현대에는 국가가 나서서 이를 검증하고 규제한다. 그래서 허가 제도와 임상시험이 있고, 이를 검증하는 전문가 학회와 평가제도가 있다. 이런 제도적 장치들은 법률에 명시되어 있으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로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의료연구원, 질병관리청,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등 기구도 독립적이고 상호견제 원칙하에 운영된다.

따라서 정상 국가라면 근거도 미약하고 효과도 불분명한 의료 기술과 약품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허가 제도나 임상시험 절차를 규제로 몰아서 이를 완화하려는 시도를 정부기관이 나서서 하고 있다. 우선 윤석열 정부는 지난 9월 안전한 의료기술과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먼저 허가를 해 주고 이후에 평가를 하겠다는 ‘선진입 후평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를 기업도 아니고 정부에서 했다는 사실에 귀를 의심했다. 정부가 기업 이익을 위해 국민 건강을 팔아먹으려는 생각이 아니고선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문제는 이런 헛소리를 여러 주장을 섞어서 문제 없다는 식으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정부 주장은 안전성이 확보되는 대전제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안전성이 입증되면 시장에 마구 팔아도 된다는 뜻이다. 생수가 약수로, 과자가 약으로 바꿔서 팔린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자. 식품 영역이라면 그나마 안전성만으로는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의약품이나 의료기술은 실제로 안전성은 기본 전제 사항이고, 효과도 입증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들은 금전 피해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시간도 낭비하게 된다. 추가로 효과가 입증되더라도 기존 치료 기술이나 약제와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면 경제성 평가도 해야 한다. 비슷한 효과가 나타나는데 가격이 2-3배라면 허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약품이나 의료기술이 식품과 비슷한 수준의 문제라고 정부가 포장하는 꼴이다. 시장에서 이런 약품과 의료기술이 경쟁 속에서 입증되면 된다는 천박한 시장자본주의적 발상이기도 하다.

결국 어떤 의료기기를 ‘선진입 후평가’ 하겠다는 이야기는 국민의 호주머니를 의료기기 회사가 털어가는 걸 방기하는 것이고, 만약 효과가 있더라도 기업이 책임져야 할 임상시험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고가 의료기기가 범람한다면 기존 치료기술이나 의료기기에 상대적 피해를 입히는 셈이다. 즉 이는 국가의 책무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정부가 나서서 주장하는데, 언론도 산업계 입장만 보도하고 ‘규제 완화’라 찬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추가로 전문가 단체도 나서서 반대를 해도 시원찮은데, 기업들에 포섭이 된 것인지 관련 학회를 포함해 모두 조용하다. 정부에 쓴소리를 하는 노동시민 사회단체들만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료시장화가 확산되어 의료 전문가들까지 시장에 포섭된 결과다.

그런데 이런 정부 정책을 견제해야 하는 국회에서는 한술 더 떠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 바이오 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단재생의료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첨단재생의료법은 2019년 줄기세포 치료제 등의 허가를 간소화 한다는 목적으로 통과된 악법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무력화해서 기관 인증만 받으면 줄기세포 시술과 재료를 마구 팔 수 있게 개정하겠다고 한다. ‘줄기세포’ 이야기만 나오면 신기루처럼 환상을 부추기는 세태도 문제지만, 국회의원들까지 줄기세포 업체에 포섭되어 청부 입법에 앞장서는 상황을 어찌 봐야 할지 모르겠다.

슬프게도 정부도 국회도 자신의 공적 임무는 방기하고 의료기기, 제약 업체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몸을 팔아먹고 있다. 마치 우리의 몸과 건강을 수탈하는 과정에 이 업체들은 주식시장에서 거짓 광고로 천문학적 이익을 거두기도 하고, 이를 실패하더라도 ‘국민 건강을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 속에 숨게 된다. 이런 난맥상을 국가가 부추겨서야 되겠는가? 사람의 생명에 빨대를 꽂아 이윤을 빨아들이는 흡혈귀와 다를 게 없는 기업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에 있다. 공적 의료공급과 공적 의료규제를 포기하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정부는 결국 국민의 생명도 투기판에 버려 둔 셈이다. 생명투기를 부추기는 건 다름 아닌 기업과 한 몸이 되려고 하는 타락한 국가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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