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민화위 한반도평화나눔포럼 2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주관으로 ‘2023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을 열었다.  이 포럼은 분단 상황에서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매년 마련됐다.

올해 포럼은 18일 가톨릭대학교에서 ‘한반도 화해와 평화에 이르는 길’을 주제로 진행했다. 모두 3개 섹션으로 각각 '화해와 평화에 이르는 가톨릭의 가르침과 걸어온 길', '세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화해의 길',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가톨릭교회의 과제'를 다루었다.

1세션 내용 바로 가기

2세션과 3세션에서는 미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화해 전문가와 미국 가톨릭대 메리앤 러브 교수의 발제를 듣고 토론했다.

평화의 일꾼은 정치인뿐 아니라 종교, 언론, (역사)학자, 예술인.... 모두

'유럽의 적대국 간 다양한 화해의 형태'를 주제로 발표한 허승훈 교수(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는 유럽 각국의 식민지배, 분쟁으로 적대 관계에 놓인 나라들의 화해 또는 화해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무엇보다 화해를 이루고 평화를 구축하는 일꾼들의 역할에 대해 말했다.

허 교수는 개인 간 화해와 국가 간 화해는 매우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정치인뿐 아니라 역사학자, 예술가, 언론, 종교계, 때로는 고교생들의 움직임이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면서, 각계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화해는 전쟁 상태와 평화 상태라는 매우 광범위한 개념을 연결하는 장기적이고 고된 과정이다. 유엔 평화대학은 화해를 ‘이전에 갈등이나 분쟁을 겪었던 당사자들 사이에 강렬하거나 오래 남아 있는 악의를 변화시켜 과거의 적개심이나 해를 끼친 행위를 수용의 감정 및 심지어 용서로 바꾸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정치학에서 ‘화해’란 종교적 영역의 일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그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국가라는 집단 사이의 화해가 가능한가라는 의문,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있다. 또한 정부 간 화해와 피해 당사자와 가해자 사이의 화해도 다르다. 과거부터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 화해는 가해와 피해의 기억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허 교수는 “그 어려움들 안에서 20-30년 전부터 화해의 붐이 일고 있다”면서, “전 세계가 동시적으로 연결되는 세계화 흐름과 평화학의 연구 흐름, 이에 따른 국제 사회의 인식 변화 때문이다. 인간 중심의 다양한 사회, 경제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평화의 한 방법이라는 논의가 이뤄지면서 사과, 화해, 용서가 부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와 독일 간 화해 정책을 소개하면서, 1963년 프랑스 드골 대통령과 서독의 아데나워 총리의 우호 조약(엘리제 조약)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만나야 한다는 태도에서 가능했다”며, “성공 요소 중 하나는 국가 간 화해 정책과 함께 유럽연합이 상호 보완적 작용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국의 화해 정책이 가능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덴 역사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 해석이 달랐고, 양국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연구하며 공동역사교과서를 편찬했다. 양국 고교생들은 같은 사건을 다르게 배우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고 이를 의회에 반영시켰다. 이를 모범 삼은 것이 프랑스와 알제리의 화해 정책으로, 알제리 전쟁에 대한 양국 역사학자들이 공동 저서를 편찬한 바 있다.

종교인과 언론인들의 역할이 화해를 이끌어 낸 경우도 있다. 독일과 폴란드의 화해 정책에서, 독일 개신교와 폴란드의 가톨릭교회가 함께 화해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것과 함께, 언론인들은 상대국을 ‘악마화’하는 기사에 대해 성찰하고 이같은 보도를 하지 않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1970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바르샤바 추모지에서 침묵과 함께 무릎을 꿇어 추모하는 장면을 이끌어냈다.

1970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추모지에서 2차 대전 중 나치가 행한 만행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br>
1970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추모지에서 2차 대전 중 나치가 행한 만행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허승훈 교수는 이밖에 1940년 러시아의 폴란드 말살정책을 고발한 영화 ‘카틴숲 대학살’, 터키의 제노사이드 책임을 공개 발언한 소설가를 들면서, 비록 긍정적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영화인, 작가를 비롯한 예술인들 역시 중요한 평화의 일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그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배움의 첫걸음이며, 화해의 첫걸음은 상대방이 어떤 방식으로 왜 같은 사안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지 충분히 이해하려는 의지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 경청이 필요하다”면서, “화해의 과정에서는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서는 안 되며, 양 당사자가 서로를 잘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경청과 함께 자신이 말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이해하는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 주체들이 대화 과정에서 이런 태도를 보일 때, 적대국 간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보편 가치인 인권에 바탕을 둔 진실과 정의 위한 노력
적대 세력 배제가 아니라 공존과 상생 전제로 한 화해

김지은 교수는 “화해 없는 평화”와 “화해를 통한 평화”의 차이를 설명하고,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는 이 두 가지 범주에서 추구되어 왔다면서, “분쟁의 완전한 해소와 초월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전쟁 재개 가능성을 더 이상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따뜻한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해”가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평화학 연구의 평화 분류 기준에서 평화 상태를 “차가운 평화”, “보통의 평화”, “따뜻한 평화”로 나눈다. 분쟁이 잠시 중단되었지만 분쟁 재개의 위협이 상존하는 차가운 평화는 현재 한반도의 상황이다. 보통의 평화는 분쟁이 종식되어 전쟁이 보통 부재하지만, 분쟁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은 상태다. 따뜻한 평화는 분쟁이 완전 해소되고 초월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전쟁 재개 가능성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다.

평화를 위한 노력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억지력을 통한 평화와 유사한 (차가운) 평화 유지, 외교와 중재, 협상을 통해 보통의 평화를 지향하는 평화 조성, 그리고 근본적 접근을 통해 갈등을 형성하는 구조적 모순과 불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영구적이고 진정한 (따뜻한) 평화를 구축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는 정부는 물론 개인, 지역 사회, 시민 사회 모든 주체의 참여가 필수다.

그는 따뜻한 평화, 적극적이고 근본적 평화 구축을 위해서는 화해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진정한 화해”란 “분쟁과 갈등 속에서 벌어진 불의, 폭력의 진실을 드러내고 직시하며 인정하는 것”(진실), “불의와 폭력의 책임을 밝히고 바로잡아 사회와 구성원의 회복을 꾀하는 것”(정의), “가해자와 피해자, 적대세력 간 공존을 전제로 한 공감과 용서, 상호 수용”(자비)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연구와 성찰이 한반도 평화 구축과 화해에 주는 시사점은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바탕을 둔 진실과 정의를 위한 노력, 적대 세력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을 전제로 한 화해, 전 사회적 차원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되는 다층적이고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 모색”이 필요하다.

김지은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진실과 정의, 인권”은 이미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평화의 핵심 가치라면서, 평화를 위한 교회의 실천, 운동 방향은 “평화를 위한 핵심 가치인 진실, 정의, 인권을 말하는 데에 비둘기처럼 순박져야 하며, 냉전적 사고와 논리에 포획되지 않도록 슬기를 발휘해야 하고, 시민 사회와 정부를 잇고 한국 사회와 국제 사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데 전방위적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11월 18일 서울대교구 민족회해위원회가 평화나눔연구소 주관으로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을 열었다. ⓒ정현진 기자
11월 18일 서울대교구 민족회해위원회가 평화나눔연구소 주관으로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을 열었다. ⓒ정현진 기자

교회 가르침, ‘정전론’에서 벗어나 정의로운 평화의 원칙과 실천 방향으로 발전
평화 구축은 선택적 약속이 아니라 우리 믿음이 요구하는 것

마지막 세션에서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증진하는 한국 천주교회'를 발표한 메리앤 러브 교수(미국 가톨릭대)는 평화와 화해 증진을 위해 한국 교회가 취할 수 있는 실천 방안과 세계 각국 교회가 시도한 평화 구축에서 얻은 교훈, 미국 주교회의가 40년 전 발표한 '평화의 도전'을 이야기했다.

러브 교수는 먼저 “정의로운 평화가 있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이며, 한국 교회가 어떻게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말했다.

그는 “평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건설할 수 있야 한다”면서, “기술적 상상력, 새로운 형태의 사회 결속과 협력을 창조하기 위한 정치, 경제적 상상력과 설득력, 도덕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는 타인, 자연, 하느님 심지어 적대자들과 더 굳건하고 정의로운 관계를 만들고 상상하며, 창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프란치스코 교종이 말하는 “미래 준비”이며, 그 사명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고, 한반도평화나눔포럼,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 세계주교시노드도 그런 일을 하려는 것이다. 

러브 교수는 가톨릭 신자들이 왜 평화로 가기 위한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교회는 핵무기 보유국과 비보유국, 시민 사회와 정부, 과학과 종교, 보수와 진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다리를 놓을 때 절실히 필요한 제도적 역량과 기술을 갖고 있다”면서, 한국의 가톨릭교회 역시 다리를 놓는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편 교회로서 가톨릭교회는 다양하고 많은 지역에 있고,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민족 출신 신자들이 가진 면들을 잘 다루기 위해 대화와 평화 구축 기술을 발전시켜야 했다면서, “교회는 주권 국가보다 1600년 전에 태어났고, 신자들은 대화, 만남, 경청, 외교, 다른이들과 협력하는 기술을 연마해야 했다. 그 기원부터 오늘까지 교회 질문의 핵심은 다른 정체성 집단들이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포함시키고 포함될 것인가였다”고 말했다.

또 평화와 전쟁에 대한 가톨릭의 가르침은 ‘정전론’에서 벗어나 정의로운 평화의 원칙과 실천 방향으로 발전돼 왔고, 이런 원칙과 실천은 한국 교회에 지침을 전달한다. 그는 전쟁을 피하고 제한하기 위한 도덕적 지침(정전론)에서 나아가 평화를 구축하는 문제와 관련해, “정의로운 평화 규범은 참여, 회복, 올바른 관계, 화해, (평화의) 지속가능성이다. 정의로운 평화는 참여를 확대하고 품위를 존중하며 평화를 위한 구성원을 확장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러브 교수는 이를 위해 한국 교회의 과제는 “한국인 원폭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 북한 사람, 북한 이탈 주민과 더 깊은 대화와 포용을 위해 참여를 확대하는 것, 새로운 기술의 평화적이고 윤리적 이용을 위한 대화”를 제안하면서, “한국 교회 활동의 핵심은 갈등으로 생긴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 치료, 경제와 물질적 기반시설 복원이며, 회복 방법은 평화 교육을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 주교회의가 40년 전 발표한 사목 서한 '평화의 도전'을 언급하고, “핵무기와 핵전쟁에 대한 주교들의 성찰이었던 ‘평화의 도전’은 당시에 이상적이고 순진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 내용들이 모두 현실이 되었고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의 도전'은 우리 모두가 교회의 평화 건설 활동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면서, “평화 구축은 선택적 약속이 아니라 우리 믿음이 요구하는 것이며, 현재 부각되는 어떤 운동 하나가 아니라 예수님의 부르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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