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

한 달 전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주최한 월례 줌 세미나에서는 2023년 세계청년대회(WYD)에 참가한 이들이 나와 자신의 경험을 솔직담백하게 나누었다.1) 가볍게 호응해 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오히려 듣고 있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학생운동을 시작해 30대 중반까지 이어진 본당과 교구 청년운동, 그 과정에서 부딪쳐야 했던 일들에 대한 원하지 않는 기억이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당시 가톨릭대학생연합회는 이영희, 백기완, 박현채, 송건호 등 재야인사를 초대해 강연회를 열고, 행사 끝에는 으레 스크럼을 짜고 도로로 쏟아져 나와 ‘독재 타도’를 외치며 가두 투쟁으로 이어지는, 당시 지역에서 폭압적 상황에 균열을 내는 거의 유일한 ‘돌파구’ 역할을 해냈다. 그렇게 1980년대 군부독재 정권과 싸우면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어둠의 시대에 조금씩 파열을 내고 빛을, 희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말처럼 그리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교구 교육국 담당 사제와 수녀는 구실을 붙여 행사 개최를 막으려 했고, 학생 집행부는 강행하려는 데서 늘 갈등이 빚어졌다. (3년여 동안 총무와 회장을 연이어 맡았던 나는 이들과의 대면을 피할 수 없었고, 매달 ‘인내의 끝을 시험하는’ 피 마르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 심각한 화병이 돋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지경이었다. 지도 사제와 수녀 모두가 똑같지는 않았고 바뀔 때마다 정도 차이는 있었다.) 당시 전경들의 군홧발 소리와 최루탄 냄새가 두려움을 넘어 공포의 기억이라면, 지도사제, 수녀와의 갈등은 허탈과 좌절로 몰고 가기 일쑤였다. 그 기억하기 싫은 경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성당마다 ‘청년연합회’가 있을 정도로 많은 청년이 왁자하던 활기찬 풍경은 점점 사라져 가고 교구 청년연합회에 속한 회원수도 예전 한 본당 청년회 수준으로 쪼그라드는 과정을 몸소 겪으며, 마음은 사람들이 떠난 구도심의 담벼락처럼 메말라 갔다. 불과 19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10여 년에 걸쳐 일어난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교회 당국이 물적 여력이 없어서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는 의혹이 드는 것은 어쩌지 못한다. 교구에서 운영하는 그 많은 영리기관과 사회복지, 학교 등의 재단을 통해 벌어들이는 막대한 자본에 생각이 미치면, 망가져 거의 껍데기만 남은 본당 청년 상황(어디 청년들 상황뿐이랴)을 아무런 사목적, 제도적 조치 없이 방관하는 교회 당국의 태도는 무능이 아니라면, 책임 방기로밖에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었다. 이건 한 본당의 특수한 예가 아니라 전국 거의 모든 성당의 현실인데도 ‘뜻있는’ 개별인들의 노력이 산발적으로 있었을 뿐, 전 교회 차원의 정책적 접근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었다.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있을 리 없었고, 결국 20여 년이 지난 오늘 그 당시보다도 더 처참해진 현실을 그저 처연 또는 망연하게 바라보는 일 말고는 딱히 응답할 길이 없음이 이번 연구소 월례 줌 세미나를 대하는 내 내면의 풍경이었다. WYD에 참가한 이 참으로 기특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유독 이들이 경험한 낙담과 실망감에 감정이 완전 몰입된 것이 단지 “나 때는....”의 옛날을 지나온 한 꼰대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지 출처 = World 
(이미지 출처 = World Youth Day 페이스북)

2027 WYD를 ‘시노드의 길’ 실현의 장으로!

사정이 이러한데 청년사목의 현실 또는 활성화에 대한 솔직하고 진지한 성찰이나 모색 없이 2027년 WYD를 한국에서 열겠다니, 과연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토론 중에 ‘교회 지도자들은 아마도 2027 WYD 한국 개최를 청년사목 활성화 계기로 삼으려는 것’ 같다는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 아니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현실성 있는 말이기 위해서라면 지금부터 그러한 방향으로 내용과 형식을 갖추어 나가는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 핵심 중 하나는 이번 WYD의 한 참가자가 희망사항으로 제시한 ‘준비 과정에서부터 청년들의 주체적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2) 마침 ‘함께 걷는 여정으로서의 시노드’가 로마에서 열리고 있지 않는가. 어쩌면 청년대회의 한국 개최는 이 시노드 정신을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 줄 어쩌면 너무도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도하고 있는 ‘하느님 백성 중심의 시노드’, 곧 교회 개혁으로서의 ‘공동협의적 교회’(synodal church)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대해 한국 천주교회가 그간 보여 온 모습은, 비유하자면 하기 싫은 숙제를 억지로 해치우고 다시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학생 같다.

그러나 한국 WYD 개최를 기정사실화 한 이상 지금부터라도 공동협력성(synodality) 정신으로 그 방향으로 준비해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러 차례 WYD에 참가해 온 청년들의 열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행정 및 재정적 뒷받침이 어우러진다면 WYD 한국 대회가 공동협력적 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한 전형을 보여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의 핵심은 단연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공동협력이다. 이것의 실현을 위해 차제에 교회 쇄신과 개혁 관점에서 풀어야 할 과제 중에서 ‘시노드적 양성’(synodal formation), 특히 주교들의 양성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칼럼에서 말한대로 “주교들이 왕처럼 군림하는 구조를 뜯어고치고 어떻게 이들이 ‘전체 하느님 백성’으로 통합할 수 있는가를 훈련할 기구와 프로그램의 설치가 필요하다”3)고 강조한 점을 상기해 보고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제안하려고 한다.

주교들의 ‘시도드적 양성’을 제안한다

한국 교회에는 독일식 ‘시노드의 길’(synodal path)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평신도 대표 조직인 ‘가톨릭중앙위원회’(ZdK) 같은 조직이 없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 가톨릭 평신도사도직 중앙협의회’(평협)가 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영향을 받은 평신도들이 사회 문제 등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이를 불편해 한 주교들은 이런 단체들을 해체 내지는 무력화시키려고 수많은 조치를 단행했다. 가령 1978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전국 평협, 가톨릭농민회, 가톨릭노동청년회, 꾸르실료협회,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등 전국 기구로서의 명칭과 운영을 폐지하고 교구 단위로 환원한다’는 의안을 냈다. 결국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그 뒤에도 여러 시도가 있었고 결국 주교들은 1987년 3월, 온 나라가 6월 시민 대항쟁 분위기로 고조되어 가는 그때, 전국 평협과 가톨릭농민회의 활동을 중지시켰고 이돈명, 유현석 등의 평신도가 대표를 맡아 왕성하게 활동해 오던 정의평화위원회를 주교와 사제가 각각 위원장과 총무로 맡는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사실상 평신도들의 활동을 무력화시켰다.4) 가톨릭대학생회도 전국 조직의 해체와 복원을 거듭하면서 끝내는 약화 내지는 사라져가게 되었다. 크게 봐서 내가 겪은 지도사제와 수녀와의 갈등도 이런 맥락과 동일선상에 있는 한 미니어처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 뒤 모든 주교회의 전국위원회의 위원장과 총무를 주교와 사제가 맡게 되었고, 평신도의 접근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으며, 제도상으로 사실상 성직중심주의의 구조가 완성되기에 이른다. 이는 교회의 풍경을 상당하게 바꾸어 놓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직 중심의 수직적 체계는 더욱 고착화되었다. 이 문제를 직시한다면 어떻게 주교들의 단체성(collegiality)을 하느님 백성 전체의 단체성 또는 연대성으로 바꾸어 낼 것인가가 교회 개혁과 탈성직자 중심주의에서 매우 절박하고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조직에 평신도들을 임명하는 것처럼 주교회의 전국위원회나 그밖의 기구에 평신도를 임명하는 것도 성직 중심적인 수직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한 방법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에서 실시했던 ‘사회행동 주교연수’(BISA)를 벤치마킹해서 운영해 보는 것이다. 1970-1990년대 초반까지 각 나라 주교들을 불러들여 타이, 치앙마이나 필리핀 마닐라 같은 곳에서 농민, 노동자, 도시빈민의 극한의 가난 체험을 해 왔던 주교들이 그것을 겪고 ‘회심의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들이 당시에는 흔치 않게 돌았다. 단순히 사회사목 현장을 방문하는 것을 넘어 현실을 깊이 체험하고 이해하는 것은, 주교들 개인의 신앙적 회심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사목적 정책이 당면한 현실을 지향하도록 하는 데 긴요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을 ‘종의 종’이라 했고 다른 성직자들도 자신을 따르기를 바랐음을 상기한다면, ‘양의 냄새’가 나는 사목자이기 위해서 이런 주교 양성 프로그램은 평등한 파트너십으로 가는, 그리하여 종국적으로 ‘함께 걷는 길’로서의 시노드를 구현하는 효과적이고 정직한 길이 될 것이다. 주교들의 결단만 있으면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를 함께 만들고 구현해 나가는 것도 공동협의적 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효과적인 방안이 되리라고 믿는다.

1) 배선영, “청년들이 바라는 2027 세계청년대회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3.10.4. 참고.
2) 홍예진, “나는 이런 ‘세계청년대회’를 꿈꾼다!”, <가톨릭평론> 2023 vol.41, 가을, 77쪽. 이는 앞의 기사에서도 언급되었다.
3) 황경훈, “하느님 믿음 때문에 샤먼이 됐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3.09.05.
4) 성염, “교계제도와 신도의 신원” <신학전망> 107, 1994. 82-85쪽.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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