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6일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참가 후기입니다. 글을 쓰신 이전수 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2023 세계청년대회에서 만난 청년들. ⓒ이전수
2023 세계청년대회에서 만난 청년들. ⓒ이전수

내가 모태신앙으로 유아세례를 받은 줄로 알지만,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5년에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18년째 접어들고 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그동안 세계청년대회가 주기적으로 개최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세계청년대회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다. 무엇보다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계청년대회 경험이 없었고 더욱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문득 코로나-19 팬데믹이 잠잠해지고 다시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작년 12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개최된다는 2023년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는 몇 년 안에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더 이상 청년으로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점에 세계청년대회가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2023년 리스본 세계청년대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항공권을 예약하고, 개인 참가자로 얼리버드 등록을 해 할인된 비용으로 참가 등록까지 마쳤다.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나도 직장에 다니며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여름휴가라고 하더라도 길게 연차휴가를 내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터에서 눈치를 보면서 8월 1-7일 연차휴가를 내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출국했다. 사실 세계청년대회 본대회는 1일부터 시작이 되나, 나는 항공편 일정 때문에 하루 늦게 2일에 리스본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간 다른 참가자들은 교구 대회를 위해 최소 일주일 전에 포르투갈에 도착했고, 1일 개막 미사로 이미 본대회 일정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나는 개인 참가자로 등록했지만, 운 좋게도 지부장이신 박기석 신부님의 배려로 고통받는교회돕기(ACN) 한국지부 참가단에 초대받아서 함께할 수 있었다.

2일부터 사흘 동안 오전에는 언어별 교리교육이 진행되었고, 오후에는 교종 프란치스코 환영 행사, 교종 프란치스코와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 등 여러 프로그램이 리스본 시내의 지정된 장소에서 열렸다. 한국어 교리 교육은 한국에서 오신 세 분 주교님께서 하루씩 나누어 진행해 주셨다. 교리교육 첫날에는 청주교구 교구장이신 김종강 주교님께서, 둘째 날에는 대전교구 보좌주교이신 한정현 주교님께서, 마지막 날에는 부산교구 보좌주교이신 신호철 주교님께서 진행하셨다. 주교님들의 교리교육도 매우 좋았지만, 교육에 앞서 참가자들이 나누어주는 이야기도 교육에 못지않게 흥미로웠다.

특히 둘째 날 의정부교구 참가자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 그 청년은 본대회에 앞서 참가한 교구 대회 기간 현지 홈스테이를 하면서 느낀 따뜻한 환대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타인을 맞아들이는 따뜻한 환대는 사실 복음에 그 정신이 잘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오랜 전통이다. 다들 바쁘게 일상을 살면서 잊고 있었을 환대의 의미를, 그 청년은 교구 대회 홈스테이를 하면서 발견하고 깊이 체험한 느낌이었다. 더 나아가서 그 청년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신앙인인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 성찰했고, 그 성찰의 결과를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 세계청년대회가 어쩌면 저 청년에게는 신앙생활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로 저마다 경험하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신앙생활의 새로운 이정표가 마음속에 생겼겠거니, 이게 바로 세계청년대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받는교회돕기(ACN) 포르투갈 지부가 마련한 순교한 성직자 유품 전시회 . ⓒ이전수
고통받는교회돕기(ACN) 포르투갈 지부가 마련한 순교한 성직자 유품 전시회 . ⓒ이전수

그날 오후 교종 환영 행사에 가기 전에 고통받는교회돕기(ACN) 포르투갈 지부가 마련한 행사장을 찾았다. 그 행사장은 이라크 지역에서 박해로 순교한 성직자들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요즘 시대에 박해와 순교가 웬 말이냐 싶겠지만, 이라크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는 여전히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고 그 공격 때문에 순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라크 교회의 어떤 주교님께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성작을 들어 올렸는데 그 순간에 저격수가 총을 쐈다고 한다. 주교님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성작은 총알이 관통하면서 뚫려 그 안에 있던 성혈이 마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흘리신 것처럼 바로 흘러내렸다고 한다.

유품에 관해 설명하신 분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보면 총알이 관통한 성작이지만, 주교님께서 순교하신 순간의 의미를 되짚어 보면 마치 예수님 죽음의 순간처럼 모두의 구원을 위한 성혈이 흘러내려 지금 우리가 여기서 축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즐거운 축제의 시간을 갖고 있지만 지구의 한켠, 이라크 같은 곳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설명이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당시 교회에 난입해 성직자를 살해한 사람은 분명 극단주의 성향의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에 대한 책망이나 혐오 표현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는 점이다. 유품에 담긴 의미도 컸지만 설명이 주는 의미도 컸다. 설명을 들으면서 "잘못한 형제가 있다면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마태 18, 21-22)는 복음 말씀이 떠올랐다.

세계청년대회에서 순교 성직자 유품 전시회를 마련한 고통받는교회돕기(ACN) 포르투갈 지부. ⓒ이전수
세계청년대회에서 순교 성직자 유품 전시회를 마련한 고통받는교회돕기(ACN) 포르투갈 지부. ⓒ이전수

순교한 성직자들의 유품을 본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교종 환영 행사가 이루어질 에두아르도 7세 공원으로 걸어갔다. 행사 기간 내내 주요 행사장 주변에는 교통이 통제되고 대중교통은 무정차 통과를 하기 때문에 계속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환영 행사는 오후 5시 45분부터 시작이었는데, 에두아르도 7세 공원에 도착한 오후 3시쯤에 이미 전 세계에서 온 청년들로 매우 붐볐다. 교종께서 오시기 때문에 경호를 위해 행사장에 들어가려면 포르투갈 경찰로부터 보안검사를 받아야 했다. 교종께서 앉으실 제대에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유럽의 청년들은 정말 처음 만나는 누구에게나 반갑게 인사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하는 게 매우 많이 어색한 한국 사람인 나는 그 인사를 다소 수동적으로 받아주었다. 유럽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오늘 어떤지 물었다. 당시 많은 청년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니까, "다음 개최지는 서울이라던데, 진짜야?"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짤막하게 대답했다. "Who knows? Only God knows."(누가 알겠어, 오로지 하느님께서만 아셔)

시간이 다 돼서 교종께서 오셨고, 그때 처음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교종을 보았다. 교종께서는 강복을 주면서 빠르게 지나가셔서 사진조차 제대로 찍을 기회가 없었다. 나중에 환영 행사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면서 식당 텔레비전 속 뉴스 자막을 보았다. 포르투갈어는 잘 모르지만, 대략 백만 명 이상이 에두아르도 7세 공원에 몰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온 백만 명 이상의 청년들이 교종을 만나기 위해 한 공간에서 "에스타 에스 라 후벤뚜드 델 빠빠!"(Esta es la juventud del Papa!, 우리는 교종의 청년들입니다!)를 외치고 있었다는 것이 상당히 생경한 경험이었다.

4일 교리 교육 마지막 날까지 리스본 시내 여러 행사장을 다니면서 세계청년대회 모습들을 보았다. 5일 토요일에는 공식적인 행사는 거의 다 마무리되었고, 철야 기도와 다음 날 있을 폐막미사를 위해 모든 사람이 떼호 공원으로 가야 했다. 엄청난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오전부터 철야 기도와 폐막 미사가 열릴 장소로 그 많은 사람이 미리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폐막 미사에 참례하지 못한 채로 6일 새벽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리스본 시내에 남았다. 사흘 동안 걸어 다니느라 발가락마다 물집이 잡히고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는 상태라 공항으로 가기 전까지 시내에서 휴식했다. 물론 포르투갈어는 잘 모르지만 텔레비전 뉴스를 계속 보면서 폐막 미사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교종 환영 행사를 보러 가는 청년들. ⓒ이전수
교종 환영 행사를 보러 가는 청년들. ⓒ이전수

한국행 비행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항공편이었기 때문에 잠시 내려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뉴스를 보았다. 폐막 미사 때 교종께서 다음 2027년 개최지는 대한민국 서울이라고 공식으로 발표하셨다. 마지막날 밤에 광장에서 만난 브라질 청년이 자신은 한국을 엄청 좋아한다며 다음을 기대한다고 웃던 표정이 생각나서 웃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세계청년대회의 모든 참가자가 그 뜨거운 여름의 햇빛 아래 묵묵히 걷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 질문은 나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내가 30대 후반에 접어들어 이제 곧 더 이상 청년이 아니게 되니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고자 리스본까지 갔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나이를 더 먹게 되므로 이것이 마지막 참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나 역시도 왜 그 뜨거운 햇빛 아래서 걷는 것을 선택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할 필요는 있었다. 그 이유를 생각하면서 떠오른 것은 리스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비록 한국 정서의 특성상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스스럼 없이 대화하는 것이 익숙하진 않지만, 어떤 차별이나 거부감 없이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다름을 좁혀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같이 떠올랐다. 격의 없이 서로를 따뜻하게 환대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세계청년대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신앙이 깊은 것 같아 보였다. 각자 자리에서 일상에서나 교회에서나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왔을 청년들이 이곳에서 고개를 들어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두니 보편교회 속 다른 청년들을 만나고 함께 걸으며 그 안에서 보편교회의 일원인 자기 모습을 재발견하는 것, 곧 신앙 안에서 자유로운 자신을 재확인하는 그런 매력이 세계청년대회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매력이 그 많은 사람을 한 장소로 불러 모으는 것일 테고 말이다. 한편으로 세계청년대회의 참가자들은 공식적으로 대회 기간 순례자라고 불린다. 이런 점에서 참가자들을 단순히 참가자나 여행자로 부르지 않고 순례자로 부르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도 대회 기간 내내 리스본 날씨는 아주 덥지 않았고 좋았다. 한낮에는 햇빛이 따가웠으나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에 있으면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단, 거의 하루 종일 걸어 다녀야 해서 그건 솔직히 정말 아주 힘들었다. 그런데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여 순례길을 함께 걸으며 앞으로의 신앙생활, 특히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부르고 계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큰 기회였다. 교종께서 발표하신 대로 2027년 세계청년대회는 서울에서 개최된다. 서울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세계청년대회에 모인 전 세계 청년들. ⓒ이전수
세계청년대회에 모인 전 세계 청년들. ⓒ이전수

이전수(라파엘)
천주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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