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힘들면 몸을 살짝, 움직입니다", 허휴정, 생각속의집, 2022

우리는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 것일까? 

현대인들은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또는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대개 많은 경우 이처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채찍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과연 진짜 내 마음일까? 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진실된 소리는 내 몸을 혹사해서 무언가를 꼭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몸과 마음은 또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마음이 힘들면 몸을 살짝, 움직입니다", 허휴정, 생각속의집, 2022. (표지 출처 = 생각속의집)<br>
"마음이 힘들면 몸을 살짝, 움직입니다", 허휴정, 생각속의집, 2022. (표지 출처 = 생각속의집)

이 책은 ‘어느 정신과 의사의 작고 느릿한 몸 챙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저자는 10년 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타인의 마음을 다루는 일을 한다. 늘 마음의 문제에 골몰하다가 결국 몸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몸과 마음의 연결성에 관해 깊이 탐구하고 알게 된다. 이 책은 진료실 풍경과 더불어 저자 자신의 실제 체험이 주를 이루어 독자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게 생동감 있게 그려졌다. 

수년 전 저자는 임신 후 자궁 경부가 짧아 조산 위험 때문에 석 달간 누워서만 지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그때 자신의 무력감을 압도적으로 경험하면서 죄책감과 자괴감, 열등감의 깊은 늪에 빠진다. 또 우울증이란 ‘마음의 병’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몸을 잠식하는 병’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했고, 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찾던 저자는 자신이 없어도 병원이 잘 돌아가는 차가운 현실 앞에 갑자기 자신이 쓸모없고 가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때 저자는 질문한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그러면서 많은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 ‘자신의 마음’만을 생각했다고 말한다. 몸은 그저 마음의 명령을 받아,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 주는 부하 같은 존재라고. 그런데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몸은 마음에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무서운 힘을 가진 존재로 돌변했다. 몸은 분명 자신의 일부였지만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몸에 대해 무지했는지를 깨닫는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다. 젊은 날 과거의 수도 생활에서 몸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높은 정신의 고양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늘 영혼의 문제에만 집중했을 뿐, 몸이 내는 소리는 애써 외면했다. 영혼과 육체라고 하는 종교적 이분법에 오래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공황발작을 처음 경험한다. 그 뒤로 자신의 진료실에 찾아와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머리로 아는 것과 자신이 체험해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더 나아가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진료실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구체적이고 자세한 치료법을 제시한다. 또 요가 선생님과 함께 ‘소마틱스’(Somatics)라는 기법을 구현한다. 이는 정서 조절과 호흡을 통해 여러 가지 신체 기법들을 녹여내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 기법을 환자들에게 적용하면서 놀라운 치유 경험들을 하게 된다. 소마틱스란 1인칭 시점에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 즉 몸 내부에서 느껴지는 내적인 감각 경험을 중요하게 다루는 몸 작업이다. 

저자는 운동 중에도 누군가와 경쟁하곤 했다. 다른 동료 선생님과 요가 수업에 참여하면서 그 선생님보다 자신이 몸을 더 많이 뒤틀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된다. 결국, 무리하다 몸은 비명을 지르고 동작을 포기한다.

“대체 M 선생님보다 4센티미터를 더 움직이는 게 무슨 의미야? 그렇게 지내다간 나도 망가지고, M 선생님과도 멀어지게 될걸?
몸이 마음에게 되묻더니 조용히 충고했다.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이제는 내 동료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결국 자신의 몸을 대하는 ‘그 마음’으로 우리는 타인을 대하고 자신을 대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열등감을 내려놓자, 몸이 스르륵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통과 어깨, 그리고 목과 머리가 이제 서로의 속도를 조율해가며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M 선생님과 나도 손발을 맞추어가며 부드럽게 움직여야 하는 동료였다. 앞으로도 우리는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몸의 소리를 듣는 일이 결국 나를 대하고 타인을 대하는 삶의 태도에까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하고도 소중한 깨달음이다. 나 또한 작년에 유방암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동안 이 책의 저자처럼 몸과 마음의 대화를 하며 그 시간들을 잘 지나올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온종일 아무것도 할수 없이 가라앉거나 우울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내 마음이 내 몸을 야단치고 있었다. 

“넌 왜 그렇게 의지가 약하니, 계속 그렇게 누워만 있을 거야? 도대체 어쩌려고 그래?” 

몸은 꾀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실제로 힘에 부쳐 쉬기를 원했던 것이다. 마음의 소리가 어느 정도 잦아들고 나자, 내 몸이 내 마음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네가 지금 무슨 얘길 하는지는 알겠는데, 좀 기다려 줘. 난 아직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면 시간이 좀 걸려. 지금은 네가 나를 기다려 줘야 하는 시간이야.”

이렇게 마음이 몸의 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나는 삶이 말할 수 없이 편안해졌다.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어떤 것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몸과 마음의 대화가 시작되면서 관계가 변하는 신비한 일들이 벌어졌다. 몸에 귀를 기울일수록 마음은 선명해졌고 덩달아 몸도 편안해졌다. 이 놀라운 연결 지점을 우리 모두가 경험해 보길 진심으로 권한다. 몸과 마음의 문제. 100세 시대를 살아갈 우리 모두에게 작은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번 제대로 경험하고 나면 한결 살아가는 일에 자신감과 편안함이 생긴다. 선 경험자로서 말할 수 있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분명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한 가을이 될 것이다.

구영주(세레나)
11살, 세례 받고 예수님에게 반함. 뼛속까지 예술인의 피를 무시하고 공대 입학. 돌고 돌아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피는 절대 속여서는 안 됨을 스스로 증명.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화가로, 아동미술치료사로 성장.
<가톨릭 다이제스트> 외 각종 매체에 칼럼 및 영화평과 서평을 기고하며 프리랜서 라이터로 활발히 활동. 현재 남편과 중학생 아들, 두 남자와 달콤 살벌한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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