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립준비청년의 이야기

이 글은 <가톨릭평론> 41호(2023년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 - 편집자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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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른 삶을 산다는 자각

나는 태어나서 19살까지 보육원에서 자랐다. 내가 고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중학교에 입학한 후였다. 보육원 안에 있는 학교에 다니다가 처음으로 바깥의 학교를 다니게 되었을 때, “나에게는 부모가 없 구나”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내가 엄마라고 부르던 분은 사회복지사 선생님이었다는 사실, 일반 가정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것이 세상 밖 사람들과 제대로 마주한 첫 시작이었다.

중학교 처음 입학했을 때 각자 자기 집 주소를 적으라고 선생님께서 종이를 돌렸다. 그때 1번부터 끝 번호까지 돌아가면서 주소를 적는데, 나도 주소를 적었다. 한 아이가 내 주소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더니 “여기 보육원 아니야?”라고 나에게 물었다.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반 아이들에게 보육원에서 산다는 사실이 까발려지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장기자랑을 한다고 담임 선생님이 집에서 엄마, 누나나 여동생 치마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러자 한 친구가 “선생님 누구는 엄마가 안 계셔서 치마를 가져올 수 없는데 어떡해요”라며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그러자 반 아이들 모두 웃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공개 수업이 있는 날에는 친구들이 나에게 “너는 부모님도 안 계셔서 올 사람도 없겠다”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렇게 참다 참다 화를 내면 “보육원 출신이라 화도 잘 낸다”라며 몰아가는 일도 많았다.

고아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받는 차별적 시선

학교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을 방송으로 불러 교무실 앞 복도로 불렀다. 쉬는 시간에 다른 친구도 다 지나가는데 선생님께서 “평소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문화생활을 잘하지 못하니까 학교에서 지 원해줄 테니 주말에 다 같이 모여서 남산에 가자”고 말씀하셨다. 남의 가정 형편을 다른 친구들도 다 듣는 데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선생님이 조금은 미웠다. 매번 공개된 장소에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안 가고 말지’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중학교 시절에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남들에게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들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절대 보육원에 산다는 사실을 들키지 말자고 다짐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내 상황이 드러나면 그 후로 모든 학교생활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종례시간에 나를 갑자기 부르더니 “너는 남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지만 그래도 너희 보육원은 대형시설이라 지원도 많이 나오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때 반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는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도 많이 힘들었다. 아이들이 뒤에서 고아라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한 친구는 내 안경을 텔레비전 뒤에 숨겼는데, 나중에 그것을 선생님이 발견하자 모든 아이가 웃기도 했다. 한 친구가 내 핸드폰을 떨어뜨렸는데, 내 핸드폰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쟤 핸드폰은 떨어뜨려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말 걸어주는 친구도 별로 없고, 어쩌다 다가오는 아이들은 그렇게 시비를 걸거나 놀리기 위해서였다. 학교에서 발표를 하면 어차피 돈 없어서 대학도 못 갈 텐데 쓸데없이 공부를 하냐면서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런 일은 숱하게 많았다.

나중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나를 놀리는 8명 아이에게 학교폭력 위원회를 열겠다고 경고했다. 그때 그 친구들은 “너는 엄마도 없는데 부를 사람은 있냐?”고 말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고아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사회적 차별을 후배들은 더 이상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알로이시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농구부에 들어갔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열심히 해서 다들 운동을 정말 잘했다. 그래서 밖으로 농구 대회에 나가면 우리 학교가 상을 휩쓸었다. 그럴 때마다 다른 학교 학부모들은 “이래서 보육원 애들 후원해 주면 안 된다니까. 먹고살 만하니까 이렇게 기어 나와서 우리 애들 상이나 빼앗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마지막 생각

보육원 출신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은 격하게 공감한다. 태어나서부터 혹은 중간에 부모님께서 키우지 못해서 보육원에 맡긴 건 그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환경은 그들이 선택할 수 없었고, 그들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단지 고아라는 이유로 그들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 친구들이 아주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 친구들을 용서했다. 그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도 많이 어렸다고 생각한다. 부디 자신들의 과거 행동에 대해서는 반성을 해 주길 바랄 뿐이다.

학창 시절에 보육원 출신이라고 학교나 사회에서 놀림을 당하는 상황은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다. 이런 경험을 겪으면서 자라난 사람은 자신을 부정하거나 가치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는 정말로 예민 한 감정을 낳을 수 있는 상황이며, 이러한 상황이 아주 심각한 정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려운 경험을 겪으면서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많다. 심한 경우에는 죽음을 생각하기까지 한다.

나는 학창 시절에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하지만 현재 삶에 집중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 머물러 그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일을 떠올리며 분노하고 원망하면, 더 힘들어지고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말 억울하니까, 보란 듯이 잘살아간다.

채동엽

자립 준비 청년으로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하고 원하는 전공으로 다시 입학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낮에는 학원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집에서 영상 편집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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