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기 청소년 위한 현장 사목,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은성제 신부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말 전체 인구 가운데, 청소년(9-24살)은 약 791만 명으로 15.3퍼센트다. 전년 15.8퍼센트보다 0.5퍼센트포인트 줄었다.

청소년 인구는 줄어들고, 안타깝게도 늘어난 것은 청소년기 사망률, 가출 경험률 등 부정적 지표들이다.

2021년 청소년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1.3퍼센트 증가한 1933명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망원인은 자살이다. 10년 전까지는 안전사고였지만 이후로는 자살이 계속 1위다. 가출 경험률을 보면, 2022년 3.6퍼센트로 전년 3.2퍼센트보다 늘었다. 주된 가출 이유인 부모와의 문제는 절반을 넘었다.

여러 상황과 이유로 학교와 가정을 떠난 청소년들. 이들의 손을 잡는 것은 재난 현장에서 사람을 구해내는 것과 같고, 다만 한 명이라도 절박하고 귀하다고 은성제 신부는 말한다.

그가 맡고 있는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서울A지T(이하 ‘서울 아지트’)는 몸과 마음 둘 곳을 잃고,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한 현장 사목을 하고 있다. 은 신부와 서울아지트를 지키는 이들은 총 6명. 이들은 청소년들의 아빠, 할머니, 엄마, 할아버지, 요리사 등을 자처하며 청소년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준다. ‘아지트’라는 이름도 “아이들을 지키는 트럭”이라는 의미다.

서울 아지트 쌤들과 은성제 신부(왼쪽에서 세 번째). 모두 상담사이면서 때론 요리사, 때론 엄마, 아빠가 되는 이들이다. ⓒ정현진 기자 

2019년 시작한 위기 청소년 긴급 구호
'모퉁이 돌’의 마음으로 “끝까지 지켜줄게”

2019년 당시 청소년 사목을 담당하던 정순택 주교의 제안으로 시작한 ‘서울 아지트’는 위기 청소년을 찾아 거리 아웃리치(구호활동)를 통한 긴급 서비스 지원, 기관 연계, 위기 상담, 문화 활동, 식사 지원, 인문교양교육 등을 기본으로 제공한다. 또 자립 의지가 있는 후기 청소년들에게는 근로소득장려금 등을 통해 자립을 지원한다.

개조한 버스와 천막 부스로 마련한 이동 쉼터에서 서울아지트가 만난 청소년들은 2022년 한 해 1300여 명. 서울아지트 사무실에서 만난 청소년은 900여 명이다.

은성제 신부와 5명 ‘쌤’들은 어떻게 위기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 나서게 됐을까.

첫 시작은 100퍼센트 당시 정순택 주교의 요청이었다고 했다. 대학생사목부를 담당하던 은 신부에게 정순택 주교는 오래 관심 있었던 청소년 사목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르시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2019년 1월부터 현장에 출동할 버스를 개조하고, 위기 청소년 사목을 준비했지만,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주교님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영역의 사목이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원래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게, 사람의 기대나 계획에 따라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만약에 내가 어떤 의지를 먼저 가지고 시작했다면 아마 현실 상황을 접하고 좌절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지 모퉁이 돌이 된다는 것, 나약함 속에서 더 풍성함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없었던 처음부터 지금까지 5년은 위기 청소년들과 함께하면서 자신도 사목의 자리를 찾고 성장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무엇을 해야 하고, 심지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숱한 고민과 방황 아닌 방황이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커다란 디딤돌이었다.

버스 개조를 완료하고, 본격 거리로 나섰지만 적극 먼저 찾아오는 이들은 없었다. 골목마다 찾아다니면서 간식과 함께 아지트를 알리는 초대장을 나눠 준 뒤에야 한 명, 두 명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아지트 버스를 찾는 청소년들은 적은 날엔 20여 명, 많은 날엔 100명 정도다.

현장에 나가 부스를 차리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아지트 버스. (사진 제공 = 서울 아지트)

버스와 천막으로 차린 부스에 아이들이 찾아오면, 봉사자와 직원(선생님)들이 맞이한다. 간단히 상황을 파악하는 질문지를 작성한 뒤에는 먼저 간식과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원하는 대로 놀이와 문화 활동도 함께 한다.

찾아온 청소년들이 처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대화로 파악하는데, 생각보다 다양하고, 때론 무겁다. 숙식과 같이 기본 생활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것은 물론, 직간접으로 폭력 사건에 연루된 경우, 성 문제, 절도 등 법 문제와 의료 문제에 처한 경우도 있다. 긴급하고 전문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는 이를 지원하는 전문가 집단, 지자체 기관 등과 연계한다. 대부분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이용하지만, 상황에 따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도 있다. 그런 경우는 서울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를 통해 긴급 지원을 받기도 했다.

올해부터 서울아지트는 위기 청소년을 위한 개별 맞춤 서비스 “끝까지 함께할게”, 위기 발생 상황의 긴급 서비스를 위한 “끝까지 지켜줄게”, 자립 의지가 있는 후기 청소년을 위한 근로소득장려금 지원 “끝까지 채워줄게” 등 프로그램과 사업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청소년들을 만나고,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의 구체적 현실에 발을 담그며,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헤아린 5년. 사목자로서, 때론 활동가로서 지난 시간은 은성제 신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정확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첫해는 그저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그다음 해부터 코로나19를 겪었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개인적으로도 사목자로서 똑바로 서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겉으로는 아이들이 와서 북적거리니까 좋기도 했는데,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어쩌면 혼란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위기 청소년과 함께하는 사목이란 무엇인지 정립해 가는 과정에서 그는 심지어 서울아지트의 주보성인을 정하는 것조차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2021년 현재의 사무실에 다시 자리를 잡으면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그는 “비로소 사제, 사목자로서 나 역시 다시 지어지는 듯한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그때, 그가 접한 성화가 있다. 어두운 밤, 피난길에 오른 나귀에 탄 마리아와 예수, 그 곁의 요셉 성인을 묘사한 심순화 화백의 그림이었다. 아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집트로 피난 가는 부모의 모습. 권력과 세상에서 버림받음의 끝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으로 돌보고 함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성화를 보면서 은 신부는 직접 만든 ‘서울 아지트의 기도’에 “주님, 저희 모두(봉사자, 후원자, 실무자) 이집트로 피난 가실 때, 죽음의 위험에 놓인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가신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마음을 닮아, 위기를 겪는 청소년들과 함께하게 하소서”라고 썼다.

아기 예수를 살리기 위해 이집트로 피난 가는 어둠 속의 마리아와 요셉. 은성제 신부는 이 그림을 보면서 비로소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알았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재정난, 실적 위주 행정 실무.... 정작 아이를 놓칠 수 있는 현실
"현장 사목은 영적 싸움터와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2021년부터 서울아지트를 후원하고 응원하는 이들도 늘었다. 대부분을 후원자 지원으로 운영해야 하는 형편에서 재정도 큰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과제이기도 했지만, 이 사목을 지속해서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하느님 앞에서 강수를 뒀다. 해야 할 일이라면 길을 만들어 주되, 아니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게 해 달라는. 하지만 이제 그는 “이제 이 길이 맞느냐고 당신께 묻지 않겠습니다. 답을 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하지만 어느 길로 가야 할지는 항상 묻겠습니다”라고 기도한다. 처음에 우연히 후원자 한 명과 시작한 후원 미사도, 이제 8명으로 늘어났다.

“제가 서 있는 곳이 정말 최전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현장에 나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영성적으로도 교회 안과 밖이 다르고,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 사이에서 영적 싸움이 일어나는 전쟁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속의 권력과 그 권력을 쥐고 있는 세력과의 싸움 같은 것이죠. 싸우려면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 무장하는 것이 정말 절실합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현실은 가끔 가혹하고, 절망스럽고,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마음과 방법을 다 해도, 결과가 늘 좋거나 선으로 귀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상담, 치료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범죄자가 되는 아이를 보면서 은 신부는 “정말 내가 예수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지만, 다음 순간 찾아온 생각은 “그 한계 때문에 오만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영적 무장이 무엇보다 절실하고, 서울 아지트가 갖춰야 할 영적인 강함을 위해서 더 많은 기도를 청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 얼굴을 직접 보고, “밥은 먹었냐”고 묻는 활동이도록
위기 청소년은 위협적 존재 아니다, 그들이 설 자리 지켜 달라

그렇다면 정부, 지자체 등 제도권과 연계하면서 정책이나 제도 안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을까?

은성제 신부는 “한 마디로 서류 작성하다가 정작 아이를 놓치는 지경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해당 정책을 담당하는 실무자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고, 관리 항목은 늘어나면서 현장에서는 본질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한 명이라도 양질의 돌봄과 지원을 주는 것보다 양적 성과가 평가 기준이 된다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어떤 청소년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사무실에 전화해요. 그러면 기본적으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고,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세히 들어야 해요. 최소한 얼굴은 보고 이야기해야죠. 만약 밥을 안 먹었다면 불러서 라면이라도 먹이고, 쉼터가 필요하다면 같이 가 줘야죠. 그런데 양적 실적을 강조하면 그냥 인근 쉼터 연락처 주는 것이 상담 1건 한 것이 돼요.”

또 하나, 아지트 버스가 거리로 나가서 부스를 차릴 때, 지역 주민들의 반응도 안타깝다. 아지트 버스 외에 서울시에는 같은 목적의 버스 4대가 더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버스 주차를 두고 형평성을 운운하는 민원 등을 받을 때도 있다. 민원의 힘은 세기 때문에, 아무리 허가받은 활동이라도 민원이 들어온 곳에서는 제대로 활동하기 어렵다. “그곳에 온 아이들은 지역민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그는 “제발 부정적이고 적대적 시선으로 대하지 말아 달라. 그 마음 한 켠을 내주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그마저도 쉴 공간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 모든 쉽지 않은 여정과 환경, 시스템 속에서 은 신부는 서울아지트라는 현장 사목에서 찾은 은총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것, 재난 현장의 구호 활동과 같다”면서, “죽음 앞에서 발길을 돌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것을 볼 때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현장 사목이 오래 지속되고, 더 다양한 현장으로 확산하기 위해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또 상담이 주 업무인 직원들이 다른 인원을 들일 형편이 되지 못해 행정, 회계를 겸하는 상황이 정말 안타깝다면서, 실질적인 후원에도 동참해 주길 부탁했다.

후원문의 : 02-382-5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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