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사절 명령에도 대다수 불복

(기사 출처 = UCANEWS)

동방 전례 시로말라바르 교회 시노드가 승인한 전례안에 반대하는 에르나쿨람-앙가말리 대교구 신자들이 8월 17일 이 전례안을 실행하라는 시릴 바실 교종사절의 명령문을 불태우고 있다. (사진 출처 = ucanews)
동방 전례 시로말라바르 교회 시노드가 승인한 전례안에 반대하는 에르나쿨람-앙가말리 대교구 신자들이 8월 17일 이 전례안을 실행하라는 시릴 바실 교종사절의 명령문을 불태우고 있다. (사진 출처 = ucanews)

인도의 동방가톨릭교회인 시로말라바르 전례 가톨릭교회가 전례 문제를 놓고 지난 수십 년간 내분해 온 끝에, 해결책을 찾기 위해 파견한 교종 사절의 명령문에 사제와 평신도 대다수가 공개 불복하고 나섰다. 이로써 시로말라바르 전례 교회는 분열할 위험에 처했다.

논란의 핵심은 미사 중에 사제가 신자를 보고 설 것이냐, 아니면 제대를 보고 설 것이냐다. 라틴 전례를 따르는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를 계기로, 사제가 신자석을 등지고 제대를 보고 미사를 드리던 것을 제대를 가운데 놓고 신자들과 마주보는 것으로 바꾸었다. 또한 미사 언어도 라틴어에서 각 지역의 현지어로 바꾸었다. 

시로말라바르 교회에서는 신자들을 마주보고 미사를 드렸지만, 1990년대 이후 전통주의자들이 세를 얻으면서 이것을 다시금 사제가 제대를 바라보는 것으로 복구하려 했다.  이러한 논란은 시로말라바르 교회의 최고기관인 시노드가 1999년에 “신자를 바라보고 미사를 드리지만 성체성사 기도 중에만 제대를 본다”는 타협안을 통일 예식으로 의결하면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전통주의자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불복했고, 시노드의 통일안은 사문화됐다. 본당 사제와 신자 대다수는 그대로 서로를 마주보고 미사를 드려왔다. 그런데 근년 들어 교회지도부가 이 통일예식안을 다시 실행하려 하자 이번에는 다수파가 반발하고 나섰다. 마침내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종 사절을 사태의 핵심지인 에르나쿨람-앙가말리 대교구에 파견해 사태를 중재하도록 했다. 

(역자 주: 그리스도교회는 대체로 서방의 가톨릭과 개신교, 동방의 정교회로 3분 되지만, 각자 정교회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로마 교종의 권위를 따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동방 가톨릭교회라고 하는데, 인도에는 시로말라바르 전례와 시로말란카라 전례 두 교회가 있으며, 둘 다 베드로 사도가 아닌 토마스 사도로부터 이어진다. 이러한 동방 가톨릭은 교종청 동방교회부가 관할하는데, 시로말라바르 교회는 1950년 로마 교종과 친교를 회복했다. 동방 가톨릭은 로마 교종과 친교를 회복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례, 인사 등에서 각자의 정교회적 전통과 자율적  권한을 적절히 인정받는다. 시로말라바르 교회는 인도가 중심이지만, 인도인의 해외 이주가 늘어남에 따라 전 세계에 약 500만 명 신자와 교계제도가 별도로 있다. 시로말란카라 교회는 이보다 좀 작다.)

바실 대주교는 8월 17일, 교종 사절로서 명령서를 발표하고 모든 시로말라바르 교회 구성원은 지난 1999년의 통일안을 실행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또한 주일인 8월 20일까지 이 최후통첩에 따르지 않는 사제들은 파문당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대교구 소속 (현직) 사제 328명 가운데 그의 명령에 따라 시노드 통일안으로 미사를 집전한 사제는 6명뿐이었다. 본당 7곳에서는 사제들이 명령서에 따르려 했으나 신자들이 막아섰다. 압도적 다수의 사제와 신자들은 예전처럼 사제와 신자가 서로 마주보고 미사를 드렸다.

대교구의 한 고위 사제는 “내 생각에 지금 우리는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교종 밑에 있되 독립적인 가톨릭교회가 된다는 느낌이다. 압제적 체제로부터 독립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됐으며 항의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대교구 투명성 운동”(AMT)의 리주 칸주카란 대변인은 “이제 시로말라바르 시노드가 우리에게 강요하고자 하는 통일안을 대교구 대중과 사제들이 원하지 않음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칸주카란 대변인은 20일 <아시아가톨릭뉴스>에 바실 대주교가 대교구 사제들이 통일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기본 이유를 토의조차 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최후통첩을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이미 피를 흘리고 있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고, 대교구가 분열할지 모를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 셈이다.”

이 단체는 전통적으로 신자를 마주보고 드리는 대신에 통일안에 따라 미사를 집전한 사제들에게 즉각 각자의 교회를 비우고 떠나라고 촉구했다.

시로말라바르 교회는 지난 6월 12-16일, 전례 분쟁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특별 시노드를 소집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프란치스코 교종에 교종 사절을 파견하여 모든 당사자와 대화한 뒤 영구한 해결책을 끌어내 달라고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교종 사절인 슬로바키아 출신의 시릴 바실 대주교는 예수회 소속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에서 반대파들은 그가 사태를 쌍방 간에 우호적으로 해결하라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파견 사명을 따르지 않았다고 비난해 왔다.

칸주카란 대변인은 “그는 대교구장 서리인 앤드루스 타자스 대주교의 도구가 되어 그의(타자스의) 변덕과 망상을 그대로 실행하려 애쓰다가 가톨릭교회에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타자스 대주교가 2022년 7월에 에르나쿨람-앙가말리 대교구의 교구장서리로 임명된 이후 대교구 내의 위기를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과거에 그의 해임을 추구했으며 심지어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한 교종청은 물론 인도 주재 교종 대사관도 바실 대주교가 교종 사절로서 지닌 사명을 밝힌 그의 임명장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임명의 정당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는 그가 교종 사절로 임명됐다고 알리는 간단한 통지문만 제공됐다.

바실 대주교는 8월 5일 대교구 신자들에게 발표한 공식 통지에서 자신의 사명은 협상이 아니며  미사 통일안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시로말라바르 교회의 대변인인 안토니 바다케카라 신부는 바실 대주교의 명령을 거부한 사제들이 파문될 것이냐는 질문에 “그것은 바티칸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명령서는 교종 사절, 즉 교종 자신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교구 사제들의 불복 행위들은 그들이 사제품을 받을 때 한 (순명) 서약과 교종에 대한 불순명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아시아가톨릭뉴스>에 “교종 사절은 바티칸에 그간의 상황을 알리고 그에 따라 적절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로말라바르 교회에 속한 현직, 은퇴 주교 54명은 8월 21-26일에 에르나쿨람-앙가말리 대교구청에서 시노드를 한다.

이번 시노드는 현재 상황을 토의할 것이지만, 바다케카라 신부는 지금의 위기에 대해 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교종이 이번 시노드에 건의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은 있지만, 불복종 사제들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릴 권한은 바티칸에 있다.”

반대파들은 사제 470명 가운데 450명과 대교구 신자의 압도적 다수가 자신들을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에르나쿨람-앙가말리 대교구는 시로말라바르 교회의 수장인 조지 알렌체리 추기경의 권좌다. 대교구 신자 수는 약 50만 명이며, 시로말라바르 교회에서 신자 수로는 2번째로 큰 교구다.

한편, AMT 소속 신자들은 19일 교종 사절이 사제들에게 미사 통일안을 택하라고 지시한 명령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법원에 소장을 냈다.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법원은 바실 교종 사절과 타자스 교구장서리에 답변을 요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청문 기일을 24일로 잡았다.

시로말라바르 교회에서의 전례 분쟁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나고 약 10년 뒤 시로말라바르 교회의 전례를 부흥시키려는 시도가 시작되면서 시작됐다. 한 그룹이 고대의 전통에 따른 전례를 부흥시키려 했고, 다른 이들은 전례를 현대화하기를 원했다.

전통주의자들은 사제가 성체성사 내내 제대를 보고 있기를 원했고, 현대주의자들은 사제가 신자들을 마주보기를 원했다.

시로말라바르 시노드는 2021년 8월 사전에 아무런 예고 없이 1999년의 타협안을 부활시키고 모든 35개 교구에 이를 2021년 11월부터 실행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에르나쿨람-앙가말리 대교구를 제외한 모든 교구는 시노드가 승인한 이 통일 미사안을 실행했다.

대교구 신자들의 비타협적 입장은 항의 시위, 단식 투쟁, 거리 싸움으로 이어졌으며, 심지어 성모 주교좌 대성당 내부에서 폭력 충돌이 일어나 대성당이 거의 8달 동안 폐쇄되기도 했다.

(역자 주: 시로말라바르 교회에서의 전례 분쟁은 “토착화”의 해석과 관련한 문제이며, 또한 로마 가톨릭이 교회일치를 위해 여러 정교회와 더불어 벌이는 노력의 문제, 가톨릭교회 내 전통주의의 확장 문제, 또한 지역교회의 자율성 문제이기도 하다. 대체로 비서구권에서 “토착화”는 교회 개혁주의와 동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로말라바르 전례에서는 이것이 너무 오래전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혁 이전의 전례를 되살리려는 노력, 전통주의로 이어졌다. 인도인 상당수가 서구에 대비해 자기 전통에 대한 강한 자부심도 한몫했다. 베드로 사도가 아닌 토마스 사도로부터 이어진 전통에 대한 자부심의 한 물길이 라틴 전례와의 외적 구별성,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로마 교종청 중심으로 1990년대에 발흥해 교종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시절 준동한 전통주의자들은 인도 교회에서의 이러한 전통주의를 지원, 고무했다. 또한 교종청 동방교회부는 동방 가톨릭교회들의 “전통”을 잘 유지하고 우대해야 아직 가톨릭과의 친교를 주저하는 다른 정교회들에게 호감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시로말라바르 교회 내의 전통주의자를 지원할 뿐 아니라 심지어 교회 지도부에 “전통 회복”을 요구했다. 서구 교회 내의 개혁파들은 이에 무관심하거나 오리엔탈리즘의 눈으로 시로말라바르 교회 내의 “전통 회복”을 호의적으로 보거나, “지역교회의 자율성”, “교회 내 다양성”으로 인식했다. 전통주의자들은 이런 명분을 이용했다. 기사 본문에서 “압제적”(oppresive)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맥락으로, 이 표현은 인도교회에서(만) 교종청과 서구 중심 교회를 비판할 때 등장한다. 인도 현실을 잘 모르면서 자기들이 더 잘 안다고 주장하고 결정을 강요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indias-syro-malabar-church-on-verge-of-split-over-liturgy-row/10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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