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달리트 출신 추기경 임명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아시아 출신 6명을 포함해 21명의 새 추기경을 임명했다. 한국에서는 4번째 새 추기경이 나왔고 동티모르와 싱가포르에서는 교회사상 첫 추기경이 탄생했다. 이들 6명 모두는 교황 선출권을 갖는 추기경이어서 유권 자격이 있는 전체 아시아 추기경의 수는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당시 10명에서 이제 21명으로 늘었다. 이로써 선거권을 가진 132명의 추기경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는 83명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임명한 이들이다.1) 교황을 뽑는 현 콘클라베 방식이 참가 추기경단 2/3의 표로 교황 선출을 확정하기 때문에 이 수는 분명 의미 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이 다수라고 해서 그와 비슷한 세계관과 사목 방향을 가진 후임을 뽑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이번 추기경 임명을 포함해 점차 ‘제3세계’ 추기경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적어도 바티칸과 지역 교회의 관계나 분위기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에 임명된 아시아 추기경 중에 한국 교회 언론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로 인도 히데라바드 대교구장 안토니 플라 대주교가 있다. 한국과는 다르게 아시아, 특히 인도에서는 교회 언론뿐 아니라 일반 사회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왜냐하면 그가 달리트(Dalit)라 부르는 불가촉천민 출신의 첫 추기경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도의 2500만 그리스도인의 2/3에 이르는 불가촉천민은 자신을 ‘제대로’ 대변할 지도자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수십 년 동안 ‘교회 내 카스트적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해 온 운동단체들의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교회 내 차별철폐 운동 관련해서는 뒤에서 좀 더 살피기로 하고, 먼저 이번 달리트 추기경 임명의 의미를 바티칸과 지역 교회의 관계라는 점에서 얘기를 풀어가 보자.

교회 내 차별과 불가촉천민의 투쟁

잘 알려진 아시아 신학자 펠릭스 윌프레드는 이번 달리트 추기경 임명을 불가촉천민 문제를 포함해 ‘현재 가톨릭 교회 내의 소통 방식의 한계와 이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는다.2) 특히 교회 내 달리트 이슈를 비 달리트 계급 주교들이 교회의 분열을 야기하는 사안으로 보거나 힌두 카스트 문화로만 다뤄 왔기 때문에, 이번 달리트 추기경 지명은 바티칸과 인도 지역 교회 간의, 또 인도 교회 안의 소통 체계 및 방식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회 행정은 카스트 위에 있기 때문에 주교 또는 추기경 후보자가 불가촉천민인 달리트인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지역 교회의 주교들-주교회의-교황 대사의 관계’를 통한, 기존에 확립된 바티칸과의 소통 체계와 방식이 과연 공개적이고 투명했는가를 다시 살피게 되었다는 말이다. 두루 아는 바와 같이, 신도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이런 일방적인 통로에 의존해 온 현실과 더불어 이를 통한 주교의 임명 과정의 불투명성과 비밀주의는, 사실 인도 교회만이 아니라 한국과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 나아가 세계 여러 나라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겪어 온 폐단이다.

윌프레드는 달리트 문제에서 정작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고 또 이를 깊이 논의할 의지조차 없는 인도 교회의 현실에서 달리트 출신 추기경 임명은 의미심장하다고 본다. 이는 교황청이 인도의 달리트 상황을 진단하는 데에 기존 체계와 방식이 아니라 다른 통로와 자료를 찾음으로써 달리트 문제를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거의 독점적으로 이뤄져 왔던 습관화된 기존의 의사소통 체계를 넘어 다른 소통방식을 가능하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는 주요 요인으로 달리트인들 스스로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알리고 끈질기게 투쟁해 온 점을 든다. 날마다 체험하는 차별을 개인과 단체의 운동으로서 소수의 달리트 주교와 더불어 가톨릭 평신도들이 교황청에 많은 정보와 분석의 자료들을 제시해 왔기 때문에 바티칸이 깨어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윌프레드는 이번 사안을 ‘인도 가톨릭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이라 불렀다. 침소봉대요 너무 거창한 평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그 진위 여부는 시간이 가려내 줄 일이므로 기다려 보기로 하자. 다만 여기서는 그가 자세히 살피지 않은 그리스도인 불가촉천민의 투쟁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보탤까 한다.

안토니 플라 대주교는 이번에 달리트 출신의 첫 추기경이 된다. (사진 출처 = CCBI, 인도 가톨릭 주교회의)
안토니 플라 대주교는 이번에 달리트 출신의 첫 추기경이 된다. (사진 출처 = CCBI, 인도 가톨릭 주교회의)

많은 운동단체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달리트 그리스도인 해방운동’(Dalit Christian Liberation Movement, DCLM)의 활동이 눈에 띈다. 나는 이 달리트 해방운동 조직과 인권 단체들이 2016년 8월 델리 주재 유엔 사무국에 인도 가톨릭교회 안의 달리트 차별에 대해 교황청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고 교황청과 인도 주교회의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것과 관련해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다.3) 사정과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가톨릭 성직자나 평신도들이 이 소식을 접한다면 당장이라도 분기탱천하여 이를 ‘하극상’으로 몰아가기 쉬울 법하다. 그러나 힌두교의 카스트라는 차별이 싫어서 목숨 걸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이나 ‘모태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 ‘이등시민’으로 살면서도 끝내 힌두교로 개종하지 않는 이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교회 안에서 이들이 겪는 차별은 ‘배반당한’ 분노가 더해진,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가령, 지역 또는 본당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사망한 달리트 신도의 관을 경당에 들여놓을 수 없게 하여 장례를 치루지 못한다거나, 경당 안에서도 달리트가 앉는 자리가 따로 구분돼 있는 등 기본적 권리가 부정되고 주변화되 온 현실은 사회에서 당하는 차별이 교회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어 온 듯하다.

DCLM은 이런 문제를 늘 겪어 왔기에 오래전부터 달리트 출신 교구장 또는 추기경이라는 ‘자신들과 같은’ 불가촉천민 출신 지도자를 염원해 왔다. 이 단체는 이번 달리트 추기경 임명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인도 교황대사를 찾아가, 달리트 신자가 3/4에 이르고 1년째 공석이던 한 대교구의 수장으로 달리트 출신이 임명돼야 한다고 설득하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비달리트 대주교가 교구장에 임명되자 이들은 저항 운동을 벌이며 ‘수십 년 동안 참아 왔지만 이제 이를 헌법과 세속법에 호소할 것’이라고 밝혔다.4) DCLM의 이런 운동의 태도나 방향에 이번 달리트 추기경 임명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은 교회 내 다수를 이루는 달리트 집단의 공익을 위해 정부 당국과 협력해 교회를 상대로 싸우겠다는 이 역설적 상황에 대해, 또 이들이 종국적으로 제기하는 ‘교회가 과연 누구를 대변할 것인가’ 하는 ‘공공성’ 문제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교회의 의사소통과 공동협력적 교회

앞서 보았듯 인도 달리트 추기경 임명과 그 과정은 교황청과 지역 교회 사이의 의사소통에 새로운 장을 여는 의미 있는 진전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가촉천민의 끈질긴 연대와 투쟁이야말로 이런 결과를 가져온 주요한 동력이라는 사실이다. 아래로부터의 이런 역동적인 자발성이 없었다면 여전히 관성적으로 교황대사는 비달리트 주교들이나 주교회의에서 추천하는 주교후보자에 관한 정보만을 바티칸에 전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트 추기경이 임명됐다고 해서 그가 달리트 가톨릭인을 제대로 대변할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설사 합당하게 대표한다고 하더라도 DCLM을 비롯한 달리트 그리스도인의 풀뿌리 운동이 의미가 상실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달리트 추기경이 교황청과 잘 소통하는가의 관건은 이런 달리트 풀뿌리 운동 조직들과 얼마만큼 긴밀한 소통과 협력관계를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협력해 나가는 공동협력성(synodality)을 통해 교회 내 불평등을 하나둘 없애 나감으로써 인도 가톨릭교회는 카스트적 불평등과 억압이 여전한 인도 문화를 바꾸어낼 ‘씨앗’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년 10월에 있을 주교 시노드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 교회에서도 ‘경청 모임’이 회자된다. 특히 한 교구에서는 본당별 경청모임뿐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지역사회 시민단체 등을 경청모임에 초대해 이들이 바라는 교회의 상과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내년 주교 시노드 진행과 결과에 상관없이 이런 대화와 소통의 자리가 지속되고 나아가 협력의 장으로 될 수 있다면 교회 문화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할 것 같기도 하다. 이를 제도화함으로써 교회 안 소통을 활성화함과 동시에 이런 경청 과정이 자칫 교회 울타리 안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도 지속적으로 유대관계를 가져나간다면 교회가 지역 사회 안에서 지금껏 해 오지 못한 일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어쩌면 이러한 작은 모임들이야말로 교회 문화를 바꾸어내는 실질적인 교육과 훈련의 장이 아닐까. 이런 장들을 제도화하기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하는 데에 인색치 않는 것도 공동협력적 교회를 이루는 데 있어 교회 당국이 해야 할 중요한 일로 보인다.

1) '프란치스코 교황, 새 추기경 21명 지명', <가톨릭 프레스>, 2022.06.02.
2) Felix Wilfred, 'Communications ‘sunlight’ is the Church's best disinfectant', <UCANEWS>, June 16, 2022. 펠릭스 윌프레드는 이 글을 아시아 가톨릭 언론 UCAN에 보내면서 동시에 우리신학연구소에도 보내왔는데, UCAN은 이 글(원제: “On the Importance of Alternative Sources and Channels of Communication in the Church”)을 절반 정도로 요약해 게재했다. 본 칼럼은 원본을 따른다.
3) 황경훈, '달리트, 인간 발전 그리고 교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6.09.09; 황경훈, '불가촉천민과의 동반관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7.02.27. 참고.
4) 'India's Dalit Christians protest installation of archbishop', <UCANEWS>, May 02, 2022.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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