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편집 = 장기풍)

“세상 모습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께 매일 간구합시다”

교종, 성 베드로 대성당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성령의 역할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28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세상에 조화를 주시고, 세상 흐름을 인도하시며, 세상 모습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께 매일 간구하라고 당부했다. 강론 내용.

성령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세상과 교회와 우리 마음 안에서 활동하면서 모든 영역에 질서와 조화를 가져오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할입니다. 성령께서는 ‘처음과 이제와 항상 영원히’ 창조된 세상을 무질서에서 질서로, 분산에서 응집으로, 혼란에서 조화로 이동시킵니다. 성령은 세상에 조화를 가져오면서 시간 흐름을 인도하고 지구의 표면을 새롭게 합니다. 특히 불화와 분열로 얼룩진 오늘날 우리 세계는 이에 저항하는 성령의 조화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연합’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무관심으로 마비되어 서로 단절되어 있습니다. 이는 ‘분열자’를 의미하는 악마의 정신으로 촉발한 적대감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악에 맞서기 위해 구원의 정점에서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위해 필요한 조화를 주시기 위해 당신의 거룩한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성령은 ‘일치의 영, 평화의 영’으로서 필요한 조화를 가져옵니다. 

성령께서는 오순절부터 교회 안에 역사하시면서 각 사람에게 특별한 은총과 고유한 은사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다양한 은사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창조된 세상에서와 같이 성령께서는 다양성에서 조화를 이루시기를 좋아하십니다. 성령의 조화는 강제하거나 획일하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질서가 있지만 그것은 성령의 다양한 은사에 따라 조직됩니다. 오순절 성령께서 ‘불의 방언’으로 강림하시어 사도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듣고 이해할 수 있게 하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께서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시면서도 다른 차이나 문화를 제거하거나 단조로운 획일로 줄이지 않고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오순절에 모두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사도 2,4) 교회의 삶은 정확한 세부 계획이 아닌 하느님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조화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성령은 당신의 사랑과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당신의 선물에 경탄을 느끼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도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시노드가 ‘성령과 일치하는 여정’, 무엇보다 복음화의 힘으로 성령의 숨결에 온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없으면 교회는 생명이 없고, 신앙은 교리와 도덕 의무에 불과하고, 사목은 수고에 불과합니다. 반면, 성령을 교회 중심에 두면 믿음이 생명이고, 주님 사랑이 우리를 확신시키며, 희망이 다시 태어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을 다시 교회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이번 시노드가 하느님 백성들이 함께 여행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교회 안에서 화합을 이루고 쇄신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들이 ‘하느님과의 친밀함’을 이루면서 마음의 조화를 회복시키는 방법으로 서로의 죄를 용서하고, 화목하게 하고, 악과 상처로 상하고 죄책감으로 빗나간 마음을 화목하게 하기 위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조화를 원한다면 세상의 대용품이 아니라 성령을 찾도록 합시다. 날마다 성령께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합시다. 성령께 순종합시다! 이렇게 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살펴보고 우리가 성령의 조화에 열려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추구와 생각을 고수하면서 변화에 저항하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은 지나치면서 다른 사람을 빨리 판단합니까? 또한 화해를 촉진하고 친교를 위해 노력합니까? 우리 자신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성령을 부릅시다. “성령이시여, 성자 예수님과 성부 아버지의 영, 마르지 않는 조화의 샘이시여, 당신께 세상을 맡깁니다. 당신께 우리 마음과 교회를 봉헌합니다. 오소서, 창조주 영이시여, 인류의 조화이시여,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소서. 오소서, 선물이시며, 화합이시여, 당신 안에 우리를 하나되게 하소서. 오소서, 용서와 조화의 영이시여,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저희를 변화시키소서.”

 

“성령은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문을 열어 줍니다”

교종, 5월28일 성령 강림 대축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28일 베드로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성령 강림 대축일 낮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두려움을 몰아내고 하느님 사랑의 불꽃을 되살리라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로 복음이 우리를 예수님 죽음 이후 사도들이 피신했던 다락방으로 인도합니다. 유월절 저녁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움과 고뇌에 처한 제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 보여 줍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어라’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은사로 제자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 나가서 복음 증인과 선포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요한 복음은 제자들이 '두려워 문을 닫았다'고 전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상황이나 개인 문제로 얼마나 자주 자신을 가두고 있습니까? 우리의 고통이나 주변에서 숨 쉬는 악 때문에 절망에 빠질 위험이 있고 용기를 잃게 됩니다. 이는 당시 사도들처럼 우리도 걱정의 미로에 자신을 가두게 됩니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두려움이 지배하도록 허용할 때 자신을 가두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으로 건물 안에서 경보가 울릴 때처럼 마음의 문이 닫힌 것입니다. 

대처할 수 없다는 두려움, 혼자 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는 두려움, 실망을 겪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우리를 마비시키며 고립시킵니다. 이방인, 다른 사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심지어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벌하시고 화를 내실까 두려움이 있는 곳에 폐쇄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부활하신 분의 성령의 치료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분은 우리를 두려움의 감옥에서 해방시키십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문이 열립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가까움과 친밀함을 느끼게 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고, 길을 밝히고, 위로하고, 역경을 견디게 합니다. 우리와 교회와 온 세상을 위해 성령을 청해야 합니다. 새로운 오순절이 우리를 덮치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하느님 사랑의 불꽃을 되살리도록 해야 합니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사이클론 피해자 지원 호소

프란치스코 교종은 삼종기도 가르침 말미에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사이 벵골만의 강력한 사이클론으로 치명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용이하게 해 줄 것을 관계 당국에 호소했다. 교종은 사이클론과 미얀마의 폭력으로 방글라데시에 피난한 로힝야 난민 등 80만 명 이상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사이클론으로 큰 피해를 입은 미얀마-방글라데시 국경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호소했다. 

보도에 따르면, 5월14일 일어난 강력한 사이클론 모카가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사이에 상륙해 41명이 목숨을 잃고 700명 이상이 다쳤다. 이번 사이클론은 미얀마에서 540만 명에 피해를 끼쳤으며, 320만 명이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약 230만 명이 피해를 입었고 1만 2000채 가옥이 파괴되었다. 이는 캠프에 사는 로힝야 난민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종은 피해자들에게 거듭 동정을 표하며 동시에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적 연대와 교회의 연대감으로 우리 형제자매들을 도와 달라고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교회는 성직주의와 형식주의를 배제해야 합니다”

교종, 이탈리아 전국 교구 시노드 대표회의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25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이탈리아 시노드 전국 교구 대표회의 참석자들에게 시노드에 임하는 지침들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서 교종은 현재 교회에는 불안한 바람이 감돌고 있으며, 만일 교회가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제대로 식별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젊은이, 여성, 가난한 이들이 산발적으로만 남아 있는 소수의 교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설 요지.

현재 교회에는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형태의 자기 참조를 극복하고 불안에 도전하기 위해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식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심과 쇄신’이라는 독특한 영적 경험을 정의하고, 본당과 다양한 교회 공동체에 있는 잠재력을 강화하도록 격려하는 대결의 길에서 용기와 결단력을 갖고 나아야 합니다. 저는 얼마 전 피렌체에서 열린 대회에서 교회의 얼굴을 특징짓는 세 가지 특성으로 ‘겸손’, ‘무관심 극복’, ‘팔복’을 말씀드렸습니다. 공동 교회는 부활하신 분과 함께 역사의 길을 생생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무상의 보살핌으로 복음에 봉사하고, 자유와 본질적인 것에 근거한 하느님 사랑의 기쁜 소식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고유한 창의성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조직과 관료주의, 형식주의에 짓눌린 교회는 이 시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될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60년이 지난 지금도 사목 활동을 수행하는 일부 '자격 있는 사람'과 ‘일반신자’를 분리하려는 유혹이 항상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공간이 확장되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고 조직과 사목 수단으로 소그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동 책임을 느끼는 기쁨을 선호하는 곳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제로 안수 받는 방법과 이 시대 교회에서 사역을 수행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성령께 청해야 합니다. 경로를 공유하는 것은 사제와 부제 없이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주교들에게 적용됩니다. 그것은 또한 더 넓은 우리, 즉 사제직 안에서 봉사를 표현하도록 부름받은 사제와 부제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이것은 모든 세례 받은 공동체 전체에도 적용됩니다. 은사의 풍성함과 독특함 안에서 다른 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이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 침묵하면 목소리가 가려지는 사람들, 어렵거나 복잡한 인생 경로를 가졌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들은 선험적으로 파문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모두, 모두, 모두, 모두’ 함께 가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지상에서 걷던 길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구별 없이 함께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 공간을 만들고 있는지, 젊은이, 여성, 가난한 사람, 실망한 사람, 상처받은 사람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그들의 존재가 교회에 산발적으로 남아 있는 한, 교회는 '함께 걷기'가 아닌 소수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질병은 자기 참조성입니다. 성직주의는 변태이며 그것이 평신도에 스며들어 갈 때 무척 해롭고 정말 끔찍합니다. 두려운 태도는 더 이상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불만에서 나타나며, 자신의 영향력을 느끼게 해야 할 필요 때문에 은밀하게 일종의 ‘방어적 신자유주의’가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시노드는 우리 모두 연약하고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우리 시대를 즐겁고 겸손하며 창의적으로 걷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를 부릅니다. ‘취약점’이라는 단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십시오. 저는 시노드 경로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취약성이라는 단어를 보고 싶습니다. 즉, 성령께서 마음에 비추는 불을 끄지 말고 생명을 낳고 기쁨을 더하기 위해 걸으라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돈 프리모 마졸라니(1890-1959) 신부가 사제들이 형제들 마음을 밝히는 대신 생명을 질식시키는 행동의 위험에 대해 말씀한 것을 반복하고 싶습니다. 또한 감옥 수감자들에게 헌신하며 최선을 다하신 스페인 신부님 경험을 회상합니다. 이분들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분들은 우리 시대 불안 속에서 함께 ‘불안한’ 교회가 되라는 충고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근심을 모으고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것들을 하느님 앞에 가져오고, 예수님 유월절에 잠기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 길에서 가장 큰 위험은 두려움입니다. 감옥에서 시노드 그룹을 형성한다는 것은 상처를 입었지만 동시에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노드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시는 성령의 활동으로 시노드의 진정한 주인공은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시노드를 한다는 환상을 버립시다. 시노드 과정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들을 수 있도록 여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대화를 진정성 있고 유익하게 만드는 분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분별력을 계몽하는 분도 바로 그분입니다. 선택과 결정을 지시하는 분도 바로 그분입니다. 무엇보다 조화를 창조하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저는 이탈리아 교회의 하는 일에 감사드리며 누군가 제게 암시하신 것처럼 지금 교회가 부름을 받은 이 길에서 야기된 명백한 ‘무질서’에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우리를 오순절 아침 사도들의 상태로 돌아가게 합니다. 누가 이런 일을 일으켰습니까? 움직일 수 있는 성령께서 조화를 이루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성령께 맡기십시오, 그분은 무질서도 창조하지만 동시에 조화도 창조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창조할 수 있는 질서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끊임없이 흐르게 하라”

교종, 2023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1일 ‘피조물 보호 기도의 날’을 앞두고 5월25일 구약의 아모스 예언자의 말에서 인용한 ‘정의와 평화가 흐르게 하라’는 주제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교종은 2015년9월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제정해 모든 신자가 공동의 집 보호를 위해 기도하도록 격려했다. 또한 이날은 10월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축일까지 이어지는 ‘창조의 계절’에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기도하고 일하도록 하는 에큐메니칼 아웃리치 시작을 의미한다. 이날의 기원은 1989년9월1일을 창조일로 선포한 정교회 세계 총대주교 디미트리오스와 2001년 유럽 그리스도교 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메시지 내용.

하느님께서는 정의가 세상을 통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물이 우리 육체 생존에 필수인 것처럼 ‘정의와 평화’는 하느님 형상으로 만들어진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삶에 필수적입니다. 저는 지난해 7월 캐나다 사도 여정에서 특히 락스테 해변 원주민을 방문했던 일을 회상합니다. 그때 저는 앨버타 안나 호수의 아름다움을 ‘대지의 어머니 심장 박동’에 비유하면서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물에서 위안과 힘을 찾았는지를 묵상했습니다. 자궁 속 아기의 심장이 어머니와 조화를 이루며 뛰듯이 우리는 자신의 삶의 리듬과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창조의 리듬을 조화시켜야 합니다. 이 창조의 계절에 우리 자신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심장 박동, 하느님 창조의 심장 박동을 생각합시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들은 조화롭게 뛰지 않습니다. 정의와 평화 속에서 조화되지 않습니다. 슬프게도 너무나 많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그 강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창조와 반대되는 환경과 기후변화라는 불의의 희생자들과 함께 서고 무의미한 전쟁을 종식시키라는 지구의 요청에 귀를 기울입시다. 

베네딕토 16세는 너무 황폐해진 사막을 회상하면서 지구의 ​​물 순환을 방해하는 탐욕과 이기심을 질책했습니다. 수자원에 대한 위협은 심각합니다. 기후변화 원인인 화석 연료와 삼림 파괴, 무분별한 채굴, 집약 동물 사육과 같은 극단 관행을 통한 담수원의 고갈과 오염은 심각합니다. 우리는 더 지속할 수 있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시급히 행동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의 중대한 경고처럼 우리 모두 현재와 미래를 위해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단결해야만 최악의 상황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한다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맑고 많은 시냇물처럼 우리가 하나가 되어 거대한 강으로 합쳐져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의 경이로운 행성과 인류 가족의 삶에 관개된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손에 손을 잡고 전 세계에 ‘정의와 평화가 흐르게 하라’는 담대한 조치를 취합시다.

특히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우리 마음과 생활 방식, 사회를 지배하는 공공정책을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함으로써 우리 모두 선한 변화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 출발점이며, 성 요한바오로 2세가 우리에게 권고한 ‘생태적 회심’은 피조물을 더 이상 착취 대상으로 보지 않도록 피조물과 우리의 관계를 쇄신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꾸고 하느님 창조물에 감사하는 경이로움에서 시작하여 형제이신 바르톨로메오 세계 총대주교가 촉구한 것처럼 우리의 '생태적 죄'를 회개합시다. 특히 생산 과정이 유독하고 지속할 수 없는 곳에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방식을 채택합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남성과 여성, 그리고 미래 세대까지 모두 번영할 수 있도록 우리 습관과 경제 결정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자원을 절약하고,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환경과 사회에 책임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공공정책, 특히 소수 특권층에게 수치스러운 부를 조장하고 다른 많은 사람에게는 굴욕적 조건을 조장하는 경제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와 정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기후변화의 최악의 영향을 짊어질 미래세대에 대한 불의를 멈추라고 소리를 높입시다. 지금 하느님 백성 전체가 시노드 대화와 회심의 여정에 초대되고 있습니다. 작고 큰 지류가 많은 강 유역처럼 교회는 같은 물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지역 교회, 종교 공동체의 친교입니다. 각각의 근원은 독특하고 대체할 수 없는 기여를 더해 함께 하느님 사랑의 자비라는 광활한 바다로 흘러갑니다. 공동 교회는 공동의 집과 모든 주민을 위한 생명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도달하는 모든 곳에 정의와 평화가 흘러넘쳐야 합니다. 이 창조의 계절에 공동 여정을 함께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서 우리 공동의 집이 다시 한번 생명으로 가득 차도록 일하고 기도합시다. 성령께서 다시 한번 물 위를 걸으시어 '지면을 새롭게'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대화할 때 비로소 평화가 올 것"

교종, 미국 스페인어 TV 인터뷰에서 다양한 주제 견해 피력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25일 미국의 스페인어 TV 네트워크인 <텔레문도>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주, 난민, 낙태, 사제 독신, 성학대 문제 질문에 응답했다. 인터뷰는 바티칸 인근 아우구스티니아움 연구소에서 <텔레문도> 저널리스트 줄리오 바케이로(Julio Vaqueiro) 사이에 이루어졌다. 일부 내용.

(문)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종께서는 며칠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셨습니다. 두 당사국의 갈등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종) 그것은 대화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중재를 바라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방어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가 모든 유럽 국가와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러시아로 끌려간 아이들을 다시 데려오려는 것입니다.

(문)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반환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종) 그것은 ‘정치 문제’입니다.

(문) 유럽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이주 문제입니다.

(교종) 난민이 생겨나는 국가의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촉진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한때 유럽의 위대한 여성 정치가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이주 문제는 아프리카를 지원해 아프리카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프리카를 착취하는 대신 원조를 통해 발전을 끌어올리고 독립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난 2월 제가 방문했던 남수단에는 최근 재무장하는 세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외세는 아프리카 국가를 성장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착취하기 위해 산업을 그곳에 투입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밝히지 않고 국가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지만 아프리카 문제는 정직하지 않는 정치적 무의식으로 아프리카가 착취당하고 이것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주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가 최근 이탈리아 주교들에게 선물한 책 "작은 형제"를 읽어 보십시오. 동생을 찾기 위해 기니를 떠나 스페인에 도착하기까지 3년이 걸린 소년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드라마를 보게 될 것입니다. 리비아 해안에 있는 이주자들의 드라마입니다.

(문)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주교는 ‘이주하는 것은 조금 죽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종) 그것은 자신들이 태어나 뿌리박고 살던 자신의 땅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동생을 찾기 위해 기니를 떠난 소년도 가족과 함께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저도 이민자들의 ‘칵테일’ 땅인 아르헨티나를 떠나 로마에서 10년 동안 살았기 때문에 여전히 약간의 이주민입니다. 항상 무언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렇게 보온병으로 직접 만든 차는 어머니가 주신 차도, 이모나 할머니가 갓 만든 차도 아닙니다. 같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 부족합니다. 이것이 자신들이 태어난 곳의 공기입니다. 니노 코스타의 매우 아름다운 시 ‘우리 종족’은 미국으로 가서 많은 돈을 벌지만, 결국 알 수 없는 곳에서 죽는 이민자의 운명을 이야기합니다. 이주민은 부자가 되어 잘살 수도 있고, 환영받지 못하면 심하게 고통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문)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종 재위 10년 동안 수행한 개혁에 대해 간략한 개요를 부탁드립니다.

(교종) 실제로 콘클라베 이전 회의에서 추기경들이 요구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면서 여전히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 가지 확실한 목표는 ‘비성직화’입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