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출처 = U.S.Catholic)

해마다 노동절이 다가오면 우리 시사평론가들은 파업이나 노조의 여러 운동을 알리는 신문기사를 찾아보곤 한다. 동물학자들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추적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미국 노동운동이 지난 수십 년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려 한다는 징표를 찾으려 애쓴다. (역자 주: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해마다 9월 첫째 월요일을 노동절로 쉰다. 올해는 9월 5일이다.)

올해 여름에는 미국 전역에서 파업 또는 파업에 관한 소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기업활동의 기준이 되곤 하는 애플, 스타벅스, 아마존과 같은 일터에서 그랬다. 2022년은 마침내 노동의 해가 될 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노동이 재흥하는 반가운 순간이 아니다. 정책책임자들은 올해 마구 날뛰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실업률을 올리겠다는 생각을 별로 감추지 않는다. 기업계 지도자들은 2022년은 경연진이 받는 특전을 깎고 노동보상율, 노동권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조정하기에 “좋은 때”가 아니라고 입을 모아 말하여 기꺼워하고 있다. 한편 은행가들은 인플레이션 경보를 높이 울리고 있는데, 이는 낯익은 눈속임수다.

인플레이션율이라는 숫자 뒤에는 2022년에 기업의 이윤율이 사상 최고이며 경영진이 그 대가로 받는 보수가 지나침을 넘어 전혀 새로운 수준으로 올랐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2020년에는 주요 경영진 평균 보수가 평균적인 노동자 월급의 351배였다. 그리고 지난 2년여 코로나로 인한 혼란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은 혹독한 이런 격차와 워라밸을 피고용인들에게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바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현재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인력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임금뿐 아니라 미국적 생활에서 자신들이 차지할 위치에 대해서도 협상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이들을 위해 협상 자리에 나설 사람들이 있을 것인가?

노동조합원 수는 1955년 이래로 거의 꾸준히 줄어들었다. 수십 년 동안 노조의 힘이 떨어지면서 부의 분배격차는 더욱 커졌다. 소득 격차, 보건의료, 그리고 권력 격차도 그랬다. 오늘날 미국의 취업의지가 있는 노동자 대다수는 노조가 힘이 있으면 월급이 더 많아지고 생활수준이 더 높아지며 작업 안전이 개선되고, 노조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를 위한 보상이 더 많아지던 시절을 알지 못한다.

(사진 출처 = uscatholic.org)
(사진 출처 = uscatholic.org)

미국 교회는 전통적으로 미국 노동자의 동맹이었다. 미국 가톨릭 신자의 대부분이 노동 계층이었던 시절부터 그러했다. (역자 주: 미국에서 가톨릭은 개신교 앵글로색슨이 먼저 자리를 잡은 뒤 미국에 온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가톨릭 국가 출신으로 핍박받는 이주노동자들로 시작됐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은 이런 현실을 잘 그려낸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가톨릭 평신도들은 미국이 생산하는 부의 분배를 놓고 노동자들과 다투는 정치, 경영진 같은 층에서만 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근래의 역사가 미래를 알 수 있는 정확한 지표라면, 우리의 이런 형제 신자들은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에 관한 산더미 같은 먼지투성이 책들 속에서 자기가 무엇을 볼 수 있든 상관없이, 노동자의 요구에 견결히 반격하려 할 뿐인 것 같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가 아니다. 우리는 어쨌든 (신앙 안에서) 계급과 문화를 초월하는 신비한 연대를 믿으며, 지난 수십 년간 노동이 힘든 시절 내내 가톨릭노동 네트워크와 전국 평신도센터처럼 교회 안의 여러 단체들은 전통적인 교회-노동 동맹을 씩씩하게 지켜왔다.

미국 주교들은 기업 경영진에 속한 신자들이 자신의 뿌리와 인간 존엄의 필요를 기억하도록 더욱더 압박할 수 있다. 동시에, 지역 차원의 교회는 미국 노동 계급과 한편에 서는 자신의 역사적 역할에 다시금 헌신할 수 있다. 손팻말을 들고 시위와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강론대에서 인간 존엄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선언할 수 있다. 그리고 가톨릭 기관의 지도자들은 사려 있고 생산적인 고용인-노조 관계의 모범을 실제로 보여줄 수 있다. 

(새로운 가톨릭계 이주민인) 라틴계 노동자들은 여러 부문에서 힘겹게 일하면서도 노조운동가들에게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다. 라틴계가 이제 미국 교회에서 지도부 자리를 차지한 것과 같이, 이들은 가면 갈수록 미국 노동운동의 전위대를 이룰 것이다. 미국과 미국 교회의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다면 오늘날 가톨릭 지도자들은 경제적 존엄을 위한 투쟁의 성가퀴에 선 가톨릭 노동자들의 옆에서 자리를 다시 찾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바로 그곳이 교회가 속해야 할 자리다.

기사 원문: https://uscatholic.org/articles/202209/catholic-teaching-backs-workers-why-dont-catholic-lea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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