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지워진 여성’1)

2021년 5월 산드라 슈나이더스(Sandra Schneiders) 수녀는 여성 주도의 교회개혁 그룹인 ‘미래교회’(FutureChurch)의 요청으로 ‘지워진 여성’(Women Erased)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 강의 시리즈는 미래 교회 측이 여러 여성 활동가와 신학자들에게 요청해 현재까지 지속돼 왔는데, 얼마 전 우리신학연구소 ‘월례 줌 세미나’에서 강의한 크리스틴 솅크(Christine Schenk) 수녀도 이곳에서 초기 교회 여성 지도자를 중심으로 강의했다. 슈나이더스 수녀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 ‘지워진 여성’ 시리즈에 참여한 잘 알려진 강사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했다.2) 이는 자신이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음을 뜻하는 말로 해석된다. 슈나이더스는 지운다는 것이 무엇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넘어 ‘고의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을 말살하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이 교회의 거의 전 영역, 이를테면 리더십, 성사, 전례, 성서 해석, 역사, 통치, 예술 등에서 마치 여성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의 영향력과 기여를 지워버리거나 소멸시켰음을 지적하고, 이미 그 내용은 전 강연자들이 다뤄 왔으므로 자신은 여성 수도자와 수도생활에 대해 한정해 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여성 수도자들이 교회에서 지워진 사례인가’라는 문제와 관련해 이 ‘지워졌다는 것’의 의미를 수도자와 수도생활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다시 묻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준비된 강의록을 빠르게 읽어가는 좀 건조한 형식이었지만, 좀처럼 듣기 어려운 번뜩이는 통찰과 과감한 제안이 강의 전반에 넘쳐난다. 한마디로 하면 ‘전에 알고 있던 수도생활은 이제 소명을 다했으니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직면하라’는 것이다. 가령 수도회 창립자의 정신 또는 은사에 따라 여러 사도직을 행해 왔지만 이제는 그것과 거리가 멀어진 현실, 또 여성 수도생활이 단지 독신 및 미혼 여성만의 집합적 형태가 아닐 수 있는 문제, 종신서원이나 아예 서원 자체가 요구되지 않는 ‘파트 타임 또는 부분적 수도생활 형태’, 또 더 이상 남성 지배적인 제도 교회를 위해 일하는 무급 또는 유급 일꾼임을 거부하는 문제, 수도생활이 세속에서 성공할 수 없는 여성들이나 또는 안정되고 품위 있는 노년을 위한 여성들의 피난처가 돼서는 안 되는 문제 등을 들었다. 이는 전에 공개적으로 전면화하지 못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새롭다고 할 수 있고, 더욱이 제안 하나하나를 뜯어 보면 기존 세대가 지키려고 애쓰거나 가능한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기를 바라던 어떤 선을 마구 넘어버린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그러나 슈나이더스 수녀는 이런 상상을 변화한 시대에 적합한 한 가능태로서 제시하고 있지만 결국 수도생활이 부르심과 그에 대한 응답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성소의 고전적이고도 원론적 의미와 그에 대한 투신으로 회귀한다. 조금 더 강조되는 점이 있다면 수도자만의 어떤 특별한 부르심이 아니라 ‘시인이 시를 쓰고 무용수가 춤을 추며 연인이 청혼에 확고하게 화답하는’ 그러한 결의와 투신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사목적 협력에서 수도자와 평신도가 동등한 파트너로서 더 깊은 협력과 연대가 요구된다고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여성 수도자들이 ‘지워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음은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수도회와 교회를 넘어 ‘하느님과 인간 세상을 위해 생기를 불러오는 가족을 매일 만들어 내는’ 이들의 투신이 어떤 형태로든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자의 삶은 평신도와는 다른 어떤 것’이라는 구분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부름에 대답하는 매우 개인적인 결단’이다. 바로 이 지점이 평신도와 수도자가 연대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손상될 수 없고 그리하여 지워질 수도 없는 결단과 투신의 성스러운 장인 것이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지금여기 자료사진

‘공공선’을 향한 수도자와 평신도의 연대

미래 교회에서 진행 중인 ‘지워진 여성’ 시리즈는 제목부터가 편안하지 않다. 아니 불편하고 충격적이다. 어쩌면 교회뿐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가 직면해야 할 ‘진실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온 얘기를 정리하면서 슈나이더스가 ‘교회의 거의 전 영역에서 마치 여성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의 영향력과 기여를 지워버리거나 소멸시켰음’을 지적한 대목은 거꾸로 교회가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여성을 복권시켜야 하는가를 은연중에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교회 내에서만의 회복이나 복권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또 그것을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교회의 공공성과도 연결된 문제로 확장해 해석할 수 있다. 곧 기본에도 못 미치는 교회의 성평등, 인권, 민주주의, 합리성 수준 등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해 이를 끌어올리는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와 동시에 공공선을 위해 특히 교회가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공적인 역할을 해낼 것인가의 문제도 아울러 제시하는 대안 중심의 책임 있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술지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같은 교회 매체를 통해 평신도와 수도자와의 협력과 연대를 요청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별 수도회와 작은 만남이나 연대는 있었지만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런 가능성이 있는지는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 한 학술대회에서 여성 수도자가 발표한 ‘공동협력성’을 주제로 한 시노드에 대해 논평하면서 나는 이 주제를 수도자-평신도 연대로 확장하기를 요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회개혁 프로젝트의 잠정적 종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하느님 백성의 시노드’에서, 과거 여성 수도자들이 세월호, 용산, 광장의 촛불혁명의 선두에 있었던 것처럼 1만 여성 수도자가 주도하는 ‘수도자-평신도 시노드’를 개최하여 교회와 사회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계기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이는 당시 발표자가 ‘교회가 단순히 복지주의로 추락해서는 안 되며 구조적인 개혁까지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한 데 대한 한 평신도의 응답이자 요청이었다. 앞 논의와 연관시켜 말한다면 ‘지워진 여성’은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형이라는 문제의식과 비슷한 맥락에서 제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곧 교회 내 평신도, 특히 여성이 교회 삶 구석구석에서 활동의 중심을 담당함에도 그 지위와 역할이 인정되지 못하고 무시되는 이 위계적 제도 교회를 개혁함으로써 명실공히 세상을 위한 교회라는 공공성을 더욱 제고하자는 제안이었다.3)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탄핵을 지지하면서도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자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는 수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들이 예언자를 닮았다고 썼다. 그것은 수녀들이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사회 정의와 평화, 평등이 요구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희생자와 그 가족들과 그 고통을 함께했던, 시대의 예언자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체 한국 교회는 여성 수도자에게 진 빚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만을 향했을 뿐, 교회 안에서는 결코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교회 내 여성의 인권이나 지위가 점점 더 후퇴하는 상황에서도 이에 대한 어떤 목소리를 낼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수도자가 교회 안에서 ‘지워져 가는’ 처지에 있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스스로의 책임도 있다고 보인다. 어쩌면 교회와 사회에 대한 그런 이중적 시각과 태도는 ‘수도자는 평신도 위’라는 의식적, 무의식적 우월감 및 자족감과 타협하고 이를 내면화한 데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4) 이 물음을 슈나이더스의 목소리 옆에 나란히 놓아 본다. 수도회의 존립 자체를 고민하는 마당에서 과연 이러한 비판이 유효한가에 대한 재성찰로서 말이다. 단 한 명의 수도자가 남는다고 하더라도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수도생활이 어떤 형태로든 지속되는 것이라면 이 과제 역시 철회될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리하여 이 길도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5)의 교회 버전으로 여겨지는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을 가족을 매일 만들자’는 결단의 장, 결코 지워짐 없는 수도자와 평신도의 연대의 장,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투신의 장이어야 하지 않을까.

1) “Sr. Sandra Schneiders: Women's religious life is undergoing a transformation that will help it survive”, by Sandra Schneiders, National Catholic reporter, May 19, 2021. by Sandra M. Schneiders. https://www.globalsistersreport.org/news/spirituality/news/sr-sandra-schneiders-womens-religious-life-undergoing-transformation-will
2) 이 강의와 더불어 다른 강의들에 관심이 있다면 ‘미래교회’ 웹사이트(https://futurechurch.org/)를 참고하라.
3) 강신숙, “포스트 팬데믹과 시노달리타스의 향방: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헌을 중심으로”, '신학전망' 215호, 2021.12.13.와 황경훈, “‘포스트 팬데믹과 시노달리타스의 향방: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헌을 중심으로’에 대한 논평”, '신학전망' 215호, 2021.12.13. 참조할 것.
4) 황경훈, '교회문화 바꾸기 - 여성 6 : ‘수도복, 벗어야 하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7.03.16.
5)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최유미 옮김, 마농지, 2021.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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