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에서 진도 9.0 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다음 날 3월 12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1호기부터 3호기, 2호기, 4호기가 차례로 폭발했고 그 후 11년이 되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인류가 알게 된 것은 기후 위기 시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고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2021년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의 해양방류 결정을 고수하고 있다. 2023년부터 방사성 오염수를 낮은 농도로 희석해 하루 500톤씩 1킬로미터의 해저터널을 통해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계획이다. 정화를 거쳤다는 오염수에는 기준치의 1만 4000배를 초과하는 방사성 물질인 스트론튬을 비롯해 삼중수소는 40배, 세슘137은 9배까지 검출되고 있다. 만일 일본 정부 계획대로 방출된다면 저서 생태계와 해양생태계는 큰 방사능 피해를 입게 된다. 먹이사슬을 타고 바다 생물 체내에 축적된 방사능이 우리와 전 세계 식탁을 위협할 것이고, 특히 5000년의 반감기를 가진 탄소14는 현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에게도 방사능 오염 피해를 준다.

2022년 후쿠시마 핵사고 당일 종교환경회의 소속 종교인들은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거짓과 탐욕으로 수많은 이를 고통받게 만들고, 인류를 공포에 시달리게 만드는 핵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탐욕을 절제할 힘을 기르고, 생존의 가치가 물질의 노예로 떨어지지 않기를 빌며 생명 평화 탈핵 11배를 올렸다. 핵은 소유와 힘의 논리, 경쟁과 지배 논리의 결정체임을 깨닫고 내 나라, 내 종교, 내 가족 중심의 이기심으로 살아온 왜곡된 자기 사랑과 집단 중심의 삶을 뉘우치며 열한 번의 절을 올렸다.

3월 11일 청와대 앞에서 있던 후쿠시마 핵사고 11주년 생명평화탈핵 11배 모습. (사진 출처 =&nbsp;종교환경회의)<br>
3월 11일 청와대 앞에서 있던 후쿠시마 핵사고 11주년 생명평화탈핵 11배 모습. (사진 출처 = 종교환경회의)

이미 2015년 3월 프란치스코 교종은 “인간은 신이 정해 놓은 자연의 규칙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핵발전소를 구약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에 비유했다. 스스로 신과 같아지려 하늘에 오르는 탑을 만든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결국 파멸을 불러왔듯이 우리 시대의 바벨탑이 바로 핵발전소라는 교종의 경고였다.

그리고 이번 대선은 탐욕의 승리였다. 절대 규칙이 되어 버린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과 탐욕의 승리였다. 기술과 경제와 권력의 동맹으로 만들어진 이 탐욕의 승리는 이들의 즉각적인 이익과 무관한 모든 것을 배제하고 죽게 할 것이다.('복음의 기쁨' 56항) 그 전조는 윤석열의 탈원전 정책 폐기, 핵발전 비율 확대, 소형원자로(SMR) 개발, 그리고 10년 내 무려 10기의 핵발전소 수출 공약 등에서 이미 느껴진다.

대선이 끝난 후 2017년부터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이어온 종교인들의 생명 평화 탈핵 순례가 있었다. 천도교 수운회관 앞에 모인 종교인들은 함께 기도로 순례를 시작하였다.

“저희가 생명 평화 탈핵의 순례 기도에 나서오니, 우리들의 걸음걸음이 무지와 욕망과 오만으로 점철된 이기적 삶을 참회하고 반조하며 성찰하게 하옵시고, 우리들의 걸음걸음이 만물과 내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관계’임을 깨우쳐 알게 하옵소서. 우리들의 걸음걸음이 결코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핵발전을 중지하고 탈핵을 선언하고 태양과 바람의 친환경 에너지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시옵소서.”(원불교 탈핵 기도문)

세상이 바뀌어도 길을 걷는다. 핵과 같이 우리와 미래세대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어떤 권위와 제도, 관습과 억압에 비참여, 비협조, 비폭력으로 극복하자 다짐하며 걷는다.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핵을 반대하며, 어떤 명분의 차별이나 편견 없이 생명의 존엄성을 보호하겠다고 다짐하며 길을 걷는다.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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