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재처리 실험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 2

이 글은 지난 11월 11일과 18일,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와 핵재처리실험저지30km연대가 진행한 토론회에서 핵폐기를위한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준한 신부(부산교구)가 발표한 내용으로, 한국의 반핵운동 역사와 의미, 그리고 핵재처리 반대 싸움의 과정을 짚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핵발전 관련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지금,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발제문은 6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역대 정부의 원자력진흥정책과 핵재처리 연구

핵재처리 실험은 대한민국 정부 출범 초기부터 시작된 ‘원자력진흥정책’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원자력진흥법’에 기반을 둔 원자력진흥위원회 활동은 핵재처리 실험이 단순히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원자력진흥정책의 결과라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1958년 3월 11일 ‘원자력법’이 제정되고, 1959년 1월 현재의 원자력진흥위원회에 해당하는 원자력위원회는 원자력이용개발전문위원회가 설치됐습니다. 이후 1995년 10월에 개정된 ‘원자력법’이 발효된 후 초안 작업을 거쳐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6월 제247차 원자력위원회를 통해 최초로 ‘제1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1997-2001)이 실시됐습니다.

1차에 이어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7월 12일 제251차 원자력위원회를 통해 제2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2002-06)에서는 본격적 의미의 파이로프로세싱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만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이미 1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이 시작되던 해에 파이로프로세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원자력진흥정책과 파이로프로세싱은 함께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1월, 정부는 ‘제4세대 원자력시스템 국제포럼(GIF)’에 참여해 소듐냉각고속로(SFR) 시스템 약정 서명과 동시에 실험실 규모의 파이로프로세싱 시험시설(ACPF-Advanced spent fuel Conditioning Facility)을 구축하면서 핵재처리실험은 더욱 진전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제3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2007-11)에서 파이로프로세싱 핵심 공정 개발과 2011년까지 소듐냉각고속로 핵심 기반 기술 확보를 계획하게 됩니다.

2011년 후쿠시마 핵 사고를 겪고 나서도 정부의 원자력진흥 정책에는 전혀 변동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확정된 이명박 정부 시절의 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2012-16)에서는 이미 2008년에 세워진 ‘미래 원자력시스템 개발 장기 추진계획’에 따라 “친환경 고속로 순환핵연료주기 시스템(소듐냉각고소로-파이로 공정 연계) 지속 개발”과 더불어 “소듐냉각고속로 원형로 개발을 위한 사업단 도입 및 파이로 공정기술의 한・미 공동연구(실험실 규모의 타당성 조사)”를 추진할 계획을 수립하게 됩니다.

2008년 세워진 ‘미래 원자력시스템 개발 장기 추진계획’에서도 앞선 정부가 규정해 왔던 대로 “핵기술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 축으로서 그 역할은 앞으로 더욱 증대될 것임을 강조”하고, “우리나라가 원자력을 시작한 지 50년이 되는 해”를 맞이해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 연구를 확정했습니다.

이어 박근혜 정부 시절 제5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2017-21)에서는 4차 계획에서 추진된 한・미 공동으로 그램(g) 규모의 고준위핵폐기물 분리 실증(2012년), 국내 연구시설에서 모의시험을 통해 파이로 공정 기술 입증(2014년), 소듐냉각고속로 사전안전성분석보고서 완성(2015년)(보고서 완성 여부는 입증된 바 없음)을 토대로 파이로 관련 핵심기술을 2021년까지 개발하고 2030년까지 실증연구를 실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또 박근혜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2013.10.-2015.6.)에서 확정한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안)’에서 “특히 신한미원자력협력협정(2015. 11월 발효)에 따른 파이로프로세싱 등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기술협력 등 다양한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고 규정하고 고준위핵폐기물의 영구처분과 파이로프로세싱을 연계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1차에서 5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통해 정부는 핵재처리실험연구를 중단 없이 진행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2017년 5월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있는) 대전 시민들의 지속적 반핵운동 결과로 2017년 12월 9일 ‘파이로·SFR 연구개발사업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했지만, 그 마저도 4개월 뒤인 2018년 4월 전문가들의 비공개 회의에서 이 사업을 2020년 말까지 진행하고 이후로는 한미 공동연구 결과를 보고 계속 진행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논의된 핵재처리실험 내용 가운데 간단하지만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2018년 11월 27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은 6개월의 활동 결과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정책건의서’를 제출했습니다.

제출된 핵재처리실험에 대한 보고서 12쪽에는, <표-1 : 재검토 항목・의제 및 의제별 논의・검토 방향>의 ‘기본방향에 대한 사항 ③-1의 “사용후핵연료는 자원으로 볼 것인가? 또는 폐기물로 볼 것인가?”라는 항목에서 “금번 공론화와 별도로 추후 논의 필요로 결정”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회의임에도 정부의 입장과 동일하게 특별한 의견대립 없이 핵재처리실험에 대한 문제제기를 포기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미지 출처 = Piaxpay)
(이미지 출처 = Piaxpay)

핵재처리실험, 친원자력 측에서도 이미 실패한 기술

그렇다면 다시, 핵재처리실험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전반적으로 우울한 전망과 그에 맞서 대응해야 할 입장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핵재처리 실험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이미 반핵운동 진영이 아닌 한국원자력학회와 같은 원자력진흥세력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2016년 한국원자력학회 산하 ‘원자력이슈위원회’가 작성한 ‘파이로프로세싱·소듐고속로 연구개발 사업 검토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첫째, 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고준위핵폐기물처분장의 면적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내 사용후핵연료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수로 핵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를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처리할 수 없으므로, 처분장 면적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둘째,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에서 고준위핵폐기물의 총량은 오히려 늘어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셋째,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양도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파이로프로세싱의 결과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외에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추가로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넷째, 원자력연구원은 국내에서 운영 중인 경수로 핵발전소와 같은 출력, 같은 기수의 고속로를 건설, 운영하면 28년 안에 사용후핵연료의 초우라늄 핵물질들을 모두 소각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다섯째, 향후 12년 안에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 전반에 대한 검증을 마치겠다는 원자력연구원의 계획은 타당성이 없다고 봅니다. 여섯째, 소듐고속로가 화재를 일으킬 가능성을 대비해야 하고, 핵 폭주를 예방할 수 있는 이론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뉴스타파> 기사 인용)

핵재처리실험은 정부와의 협상으로는 결코 중단 못해

원자력진흥정책 자체가 이미 어느 정부에서도 중단된 바 없듯이 핵재처리실험도 끊임없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원자력진흥법에 기반을 둔 원자력진흥위원회는 핵재처리실험을 주도하는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로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도 계속 활동 중입니다. 가장 최근인 2020년 12월 28일 개최된 제9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원전 이용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독성을 저감하는 기술로서 소듐냉각고속로(SFR) 핵심기술 개발 추진. ※ 1997년부터 24년간 7890억 원을 투자하여 연구개발 지속, 한-미 핵연료주기 공동연구 수행(2011-20), 소듐냉각고속로 특정설계안전성분석 보고서 발행(2017)” 등을 의결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핵재처리실험 재개 여부가 곧 검토될 즈음에도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는 변함없이 이와 같은 논의가 진행, 결정됐다는 점입니다. 한 번도 중단된 적 없는 핵재처리실험은 이미 우리 사회가 원자력진흥세력에 포위되었으며 그들이 사회의 기득권을 가지고 우리나라 과학기술개발의 방향을 좌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혹시나 정부의 교체가 바로 원자력진흥정책의 중단, 혹은 폐기를 이끌어 핵재처리실험을 백지화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갖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핵재처리실험이 고준위핵폐기물 정책과 연동해 공론화 형식으로 추진됐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보다 더 퇴행적이었습니다.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 공론화에서는 아예 그 준비단계부터 논의에서 배제되었고, 전문가 그룹에서 밀실 검토를 진행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스스로 2017년에 진행한 기만적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보다도 더 후퇴한 방식으로 핵재처리실험 검토가 진행된 것을 보면 정부는 처음부터 핵재처리실험을 중단할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현 정부는 탈핵정부를 표방했지만 개별적인 사안에서는 정권에 이로운 방식으로 때로는 공론화, 때로는 전문가검토, 때로는 회피, 때로는 논의 없는 강행으로 입맛에 맞게 채택하는 전술을 쓰고 있습니다.

특히 핵재처리실험의 경우 전국적 이슈로 부상하지도 못하고, 핵기술 분야 중에서도 특히 전문가의 위력이 과도하게 발휘되는 영역이다 보니 국민들의 눈치를 덜 보고 전문가 검토라는 허울로 강행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올해 9월 ‘한미 원자력연료주기공동연구(JFCS) 운영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도 비공개로 감추고 새로 신설할 ‘적정성 재검토위원회’도 변함없이 전문가로만 구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인적 구성마저 국회 여야 합의에 따라 2017년에 구성했던 기존 검토위원회 소속 7인에 경제 전문가 1인, 원자력공학 전문가 1인 등 총 9인으로 연말까지 결론을 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반핵운동진영에서도 핵재처리실험에 관심을 두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정부가 사실상 요식행위로 재검토 과정을 처리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핵재처리실험은 분명 핵무기 개발과 연계되었다

그동안 핵재처리실험에 쏟아부은 재정은 엄청납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미래창조과학부의 “미래원자력시스템 기술개발 및 실증 추진전략(안)에 따르면,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 실증시설 건설 운영 계획’ 아래 2020년대 중에 연간 경수로 사용후핵연료 30톤을 파이로프로세싱으로 고속로에서 활용한다는 목표로 약 3조 6000억 원을 예상했습니다.

또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9 원자력연구개발사업 시행계획’에 따르면, 미래형원자로시스템으로 ‘고독성물질(TRU) 연소를 위한 소듐냉각고속로(SFR) 개발’에 2018년 198억 3400만 원 투자에 이어 2019년 178억 8400만 원을 책정했고, ‘사용후핵연료 내 초우라늄(TRU) 원소 분리를 위한 파이로프로세싱 핵심기술 개발’에 2018년 1777억 8400만 원, 2019년 170억 1700만 원을 책정했습니다. 이어 2020년 계획서에서도 2019년과 동일한 액수의 투자계획을 각각 적용했습니다.

그토록 많은 시민의 반대, 그리고 2009년 미국에서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얻어진 플루토늄 복합물에서 플루토늄만 따로 추출하는 것은 간단한 추가 공정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의 재처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공식 발표됐음에도 핵재처리실험을 강행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에는 핵무기와의 연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기술적인 성공사례가 없는 소듐냉각고속로를 제외하고 가장 가능성이 있는 파이로프로세싱만 성공한다고 해도 원자력진흥세력으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플루토늄 단독 회수의 길이 열렸고, 이를 통해 이미 확보한 미사일 기술과 결합해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준한 신부

부산교구 남산 성당 주임, 핵폐기를위한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