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정평위 노동사목소위, 산재 트라우마와 교회의 역할 토론

11월 9일 주교회의 정평위 노동사목소위가 산업재해 트라우마와 교회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사진 제공 = 주교회의)
11월 9일 주교회의 정평위 노동사목소위가 산업재해 트라우마와 교회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사진 제공 = 주교회의)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소위원회가 9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산업재해 트라우마와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노동재해와 트라우마 정의, 유형”, “산업재해 트라우마와 법, 제도 그리고 개선방안”, “직업트라우마센터 현황과 활동사례” 등 주제 발표와 “산업재해 트라우마에 대한 교회의 역할과 지역 연대”에 대한 토론으로 진행됐다.

토론회에 앞서 주교회의 정평위원장 김선태 주교는 2017년 5월 1일 거제도 조선소에서 일어난 크레인 붕괴로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사고에서, 사고에 직간접적으로 사상을 입은 25명, 사고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500여 명의 노동자, 가족들 그리고 수습을 위해 투입된 이들의 트라우마를 언급했다.

그는 “산업재해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그리 크지 않으며, 그 피해 범위와 대상을 명확히 규정할 수 없어 산업재해 트라우마는 보이지 않는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로 불린다”면서, “산업재해 예방과 대처를 위한 법과 제도, 사회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의 원인을 함께 해결하려는 끊임없는 성찰과 지속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교회도 이러한 연대에 참여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첫 발표는 “노동재해와 트라우마 정의와 유형, 무엇이 트라우마를 지속-변형-(재)생산하는가”에 대해 이은주 활동가(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가 맡았다.

“잠자리에 누워 있으면 크레인에서 끊어진 육중한 와이어가 활선이 되어 내 몸과 마음 여기저기를 휘갈기는 것처럼 고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파편이 되어 버린 사고 현장처럼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도 상처투성이의 유리 파편이 되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5년간 거제 조선소 크레인 사고 피해 노동자를 상담하고 있는 이은주 활동가는 “한 해에 약 10만 명의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고, 병들어 가는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장기간 반복적이고 지속적 트라우마에 노출되면서 끊임없는 정신적 외상을 겪고 있다”며, “외상의 상처는 그들의 말문을 막는다”고 말했다.

그는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한 외상의 고통은 말이 아니라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약한 자로 취급되고 열등한 인간이나 꾀병을 부리는 겁쟁이고 간주돼, 그들의 말하기는 다시 금지당한다”며,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고통은 말하기를 금지당하면서 더욱 악화한다. 그래서 치유의 힘은 연대하는 사람과 사회가 있을 때, 당사자의 몸과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면서 타인에 대한 온전한 공감은 불가능하지만 다만 필요한 것은 공감의 자세와 태도임을 알게 됐다면서, “고통의 소리를 듣고, 먼저 판단하거나 뒤에서 떠밀지 않으며, 말하는 이의 호흡과 속도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되새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재해를 경험한 노동자들의 트라우마 증상들

동료의 주검을 찾아 헤매던 기억, 무너진 크레인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 반복적으로 당시의 현장에 서 있는 경험, 외상성 악몽, 유사한 상황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력한 고통, 의식상실이나 신체적 통증 등 신체적 증상,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부정적 신념과 예상, 회피, 기억 상실,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왜곡된 자기 비난, 무기력증과 소외감, 자기파괴적 행동과 공격성, 과잉각성, 수면장애...

이은주 활동가가 2017년 거제도 삼성중공업 크레인 붕괴 사고 피해노동자 12명과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피해 노동자(김용균 씨 사고 당시 주검을 발견) 1명의 기록을 분류한 트라우마 증상의 양상들이다.

“그 옷 구김새나 용균이의 그 상처는 물론이고 거기 모든 게 사진 컷컷컷이 찍히듯이 제 머리에 모든 장면이 다 찍혀 있죠.”

“커다란 철제 쓰레기통이 사람을 깔고 있더라고요. 정신 없었어요 진짜. 서른 명 붙었나? 깔린 사람들 끄집어내고 다른 다친 사람 없나 돌아보니까 팔 잘려 있고, 조금 더 가니까 한 사람은 피가 계속 쏟아지고 있고....”

“그냥 거제만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거제가 너무 지옥 같은 거예요.”

“전화했을 때, 안 받았을 때 내가 왜 안 갔지? 왜 안 갔을까? 아... 바보, 바보아. 아이씨 바보야. 전화 안 받았을 때 갈걸...”

“병원에서 약 받아온 거를 한 번에 다 먹었거든요. (헛웃음) 근데 안 죽더라고...”

이은주 활동가는 노동재해 트라우마의 증상을 지속, 변형, 재생산시키는 사회적 요인들에 대해, “급성 외상을 경험한 생존자들에게 필요한 안전지대 형성은커녕, 인권이 무시되고 생명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전쟁터 같은 일터가 여전히 일상이며, 노동자 살인에 대한 책임을 아무도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고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 가해자의 지속적 책임 회피와 은폐, 반성 없는 태도, 이를 용인하는 정치권이나 사회의 태도,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 주변인들의 지지 부족, 고통을 선별하는 편견과 무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과 무관심, 냉대, 사회적 애도 부족, 사회 통합적이고 전문적 치료의 부재, 치료 자체의 어려움과 치료비 부담, 사회 복귀 프로그램 부재에 따른 생계와 미래에 대한 불안, 피해자 고통을 의심하는 행정조직의 태도, 산재처리 과정의 어려움, 여전히 위험이 남아 있는 일터와 반복되는 노동재해” 등이 외상으로 인한 노동자의 상처와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태도와 제도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산업재해 트라우마와 법, 제도의 개선 방안에 대해 말했다.

현재 노동자의 정신건강 보호를 위한 법은 “산업안전보건법,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정신건강에 대한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과 관련해서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또는 근로계약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채무불이행책임의 문제가 있다.

먼저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무를 제공하는 자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 증진함”을 목적으로 하며, “쾌적한 작업환경을 위한 최저 기준 강제”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한다. 산업안전보건법 38조와 39조는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위한 조치를 규정하지만, 그 내용에 정신건강 보호를 위한 조치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는다.

또 중대재해로 인한 정신적 외상 피해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서 안전보건공단은 무료 심리상담센터를 전국 13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 예방시설’을 설치, 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고용노동부령에는 이 같은 센터 설치가 규정돼 있지 않아 각 사업장과 노동자 건강 유지와 증진을 위한 시설이 연계되지 못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 역시 72조에 따른 ‘직업재활급여’를 보장하지만, 산재 트라우마 피해자는 보상 대상인 1-12등급 밖에 있어 직업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다.

강은희 변호사는 이같은 법과 제도적 한계에 대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산업재해 트라우마 프로그램 운영 의무화(규정), 또 중대재해 이후 작업 중지 조치를 해제하는 조건으로 트라우마 치유관련 항목 추가”등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고용노동부령에 따라 각 사업장에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 직업트라우마센터 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우리 사회는 경쟁과 효율성 추구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강요하면서 그 결과에 대해서는 눈을 돌렸으며, 법제 또한 여전히 재해의 모습을 납작하게 축소한 뒤, 당시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빠르게 복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산업재해 트라우마에 대한 법제도는 노동자의 피해를 외면, 은폐, 축소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았다. 산재 이후 트라우마의 존재 가능성, 그 치유를 위해 노동자를 재촉하지 않는 법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직업트라우마센터 현황과 사례” 소개는 구정완 센터장(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이 맡았다.

그는 먼저 직업트라우마의 특성은 “사고처리 중심으로 노동자 심리적 충격 간과, 같은 현장에서 노동을 이어감에 따른 재노출 위험 경험, 트라우마 정도의 차이에 대한 낮은 이해도, 트라우마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이에 따른 노동자 간 갈등, 회사 낙인을 우려한 트라우마 증상 감춤, 트라우마 단계에서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행될 경우 일상생활의 어려움”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직업트라우마 1차 피해자는 사망자와 부상, 정신적 외상을 직접 겪은 생존자, 2차 피해자는 사망이나 사고를 목격, 수습한 사람, 사업장 관리자 등 사고처리담당자, 피해자의 팀원이나 조원, 가족, 친구,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 쉽게 고려하지 못하는 3차 피해자는 응급서비스직(경찰, 소방관, 응급의료팀 등) 종사자, 1차 병원 스태프와 상담심리사, 사건취재 관련 언론인도 속한다.

구정완 센터장은 직업트라우마 관리 필요의 시급성에 대해 “매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의한 산재 승인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사업장 재해로 인한 노동자 트라우마 상태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더욱 관리가 요구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산재 승인은 2016년 25명에서 2020년 55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현재 직업트라우마센터는 경기, 대전, 대구, 광주, 충남, 울산, 전주, 제주 등 전국 13곳에서 운영된다. 센터 목적은 “중대재해, 동료의 자살, 직장 내 괴롭힘, 성폭력 등 충격적 사고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노동자가 트라우마 증상을 회복하고 정상적 일상과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심리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또 센터는 자체 운영뿐 아니라 지역사회 사업장, 유관기관들과 연계하고 있다.

산재 트라우마에 대한 연대와 지원 네트워크 
고통에 대한 인정과 공동 애도 필요

이어진 토론에서는 산업재해 트라우마에 대한 교회의 역할과 지역 연대를 논의했다. 

강은희 변호사는 김용균 재단 강좌 내용 일부를 인용하며, “우리 사회는 위험을 개인이 감수해야 할 몫으로 넘기고 개인의 격차에 따라 상품화, 불평등화하고 있으며, 이 지형 위에서 노동자의 내부, 시민의 내부는 수많은 갈래로 분할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다만 우리는 나의 위험과 인접하고 유사하며, 동일한 위험의 형태를 찾아내 위험과 위험을 연결하고 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이러한 연대와 지원 네트워크 구축, 인식 개선 등이 필요하다며,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정신건강에 대해 나누고 이야기함으로써 정신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재고하고 사회 인식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고 위험한 업무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나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공동체라는 믿음, 나를 보호해줄 공동체라는 확신,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교회를 기반으로 할 수도 있고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할 수도 있다”면서, “그 형태가 무엇이든 그런 믿음과 확신을 주는 최소한의 안전지대가 마련되어야 생존자도 자신의 증상을 살필 수 있다. 그 연대의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구정완 센터장은 “산업재해뿐 아니라 직장에서의 다양한 트라우마로 인한 건강 영향이 증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직업트라우마센터에서 살필 수 없는 취약 노동자들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퇴직자나 이직자, 재해자 가족에 대한 상담 경로 마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트라우마 관리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은주 활동가는 “노동자들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곧 실직이라고 인식하는 현 사회적 상황에서 트라우마 치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신뢰를 통해 안정감을 회복하고 사회구성원들이 노동자들의 고통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공동의 애도”라고 말했다.

그는 “연대나,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은 지역사회의 어디든 노동자, 피해자들이 가장 가깝게,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으로 존재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사회적 연대와 지원에 노동사목위원회 등 교회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피해자들에 대한 제도상 지원도 필요하지만 함께 고통을 겪고 생계의 문제를 겪어야 하는 가족들에 대한 지원은 없다고 지적하고, “피해자와 함께 또는 피해자에 의해 경제적, 심리적 고통을 겪는 가족들을 지원하는 역할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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