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리에주 세인트 폴 대성당에 있는 루시퍼 동상.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벨기에 리에주 세인트 폴 대성당에 있는 루시퍼 동상.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당연히 악도 하느님의 산물이 되겠습니다. "아, 그렇군!" 에서 끝나면 좋겠지만, 늘 이 논리에서 혼란이 발생합니다. 그럴 것이면 악을 왜 만들어서 우리를 힘들게 하신 것인가!

그런데 이런 논리를 좀 더 밀고 나가면, 인간을 왜 만들어서 지구를 혹사시키는 것일까? 나치는? 일본의 군국주의는? 빈부격차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코로나 19는?.... 하느님이 답해야 할 것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좀 더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악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악은 인간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에 그렇습니다. 악은 철학적이고 추상적 표현인 "선의 결핍"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한 가지 양상 중에 뚜렷이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실체입니다.

중세 사람들은 첫 인간이 죄를 짓기 이미 오래전에 천사 루시퍼가 하느님의 뜻을 저버림으로써 피조물 중에 첫 번째로 죄를 지었다고 믿었습니다. 이 천사가 악마가 된 것이고, 악마는 뱀의 모습으로 인류를 꾀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로써 하느님처럼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천사의 범죄로 인해 악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천사의 범죄에 대해서는 성경에 묘사된 것이 없고, 그 대신 인간이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나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첫 인류가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던 그 나무를 소개해 주는 뱀이 끼어들죠.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여자에게 뱀이 먼저 접근한 것은 매우 똑똑한 짓이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교활했고요. 여자가 보기에 그 열매는 매우 탐스러웠죠. 악의 대표적인 속성이 탐스럽고 매력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전염성이 강합니다. 여자는 착하게도 혼자 먹지 않고 남편과 나눠 먹었습니다. 첫 사람들은 이렇게 유혹당했고, 이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당했으며, 이후로 악은 우리 주변에 상존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중세적 믿음에 기대어 악은 천사의 범죄로 인해 우연히 생긴 산물이라고 간주하는 게 마음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고 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느님의 자비와는 너무나 상충하기에 혼란스럽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악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기 보다는 상존하는 악을 구별해 내고 어찌 끊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선과 악 중에서 악을 선택하고 말고는 사람의 능력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악은 인간이 온전히 하느님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 상태임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임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온전한 하느님이 되어가는 순례의 여정에 초대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하느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게 될 것이고,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만이 악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느님과 참되게 일치하게 됩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울특별시 꿈나무마을 청소년보육사목 지원
전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센터장, 인성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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