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 사제의 밤”, 토마시 할리크, (최문희), 분도출판사, 2021

“고해 사제의 밤”, 토마시 할리크, 최문희 옮김, 분도출판사, 2021.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br>
“고해 사제의 밤”, 토마시 할리크, 최문희 옮김, 분도출판사, 2021.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

한 고해 사제가 현대인의 신앙에 대한 고민과 혼란을 신학적 통찰로 바라보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써냈다.

다른 종교를 경험하고 돌아온 신자에게 사제는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고해성사는 속마음을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덜고, 조언을 얻는 것 이상이어야 하며, “화해의 성사는 그보다 훨씬 깊고, 부활 사건들에서 오는 치유의 열매”라고 저자는 말한다. 죽음 이후의 삶, 종교와 과학 등 신자로서 드는 물음에 관해 저자가 깊이 있게 풀어가는 방식과 내용이 전형적이지 않고 흥미롭다.

1948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토마시 할리크는, 1978년 동독에서 비밀리에 사제 서품을 받고 지하 교회에서 활동했다. 1992년 교황청 비신자대화평의회(현 문화평의회)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에서 실천신학 교수 자격증을 받았다. 지금은 프라하 카를 대학 사회학 교수로 있다.

그는 종교간 대화, 저술 및 교육 활동, 영적 자유와 인권 보호 증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종교계의 노벨상인 템플턴 상을 받았다. 그의 책들은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 책 속에서

“나는 의심의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신앙을 갖게 된 경우다. 나로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같은 현수막들과 참기 힘든 가식적 미소를 띤 치어리더들이 있는 대형 집회에서 갑자기 집단 신심에 전염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내가 회심하던 때는 경기장과 서커스단이 본연의 목적에 쓰였지, 종교적 광대놀이에 동원되지는 않던 시절이다. 물론 자기 신앙을 북돋우기 위해 비슷한 마음을 지닌 군종 속에 섞여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존중한다. 그러나 내 신앙은 그런 인파 속에서 오히려 길을 잃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얄팍한 종교적 열정에 치우치는 것을 늘 경계하고 바로잡기 위해서 약간의 회의론과 반어법과 비판적 이성을 갖추는 것은 정신 건강과 영적 건강의 필수 조건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함성과 외침으로 하느님의 참된 목소리를 덮어 버리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70쪽)

“(고해 사제로서의 내 경험을 참조한다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기도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저씨’와 나누는 가상 대화에 신심을 자극하는 시 구절들까지 끼워 놓으면 더는 진지하게 앉아 있지 못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관상을 다시 한번 배워야 한다. 관상이란 하느님께서 당신의 독특한 사건들과 우리의 삶을 통해 말씀하실 수 있게 하는 내적 침묵의 기술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그 신심의 속임수에 빠져들려고 할 때 우리 삶 자체가 하나의 개선책이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의 투사와 계획들을 신의 입속에 밀어 넣는 일은, 언제든 ‘대기하고 있는’ 거짓 신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다행히도 살아 계신 하느님, 실재의 깊은 신비는 이런 식으로 다룰 수 없다.
사람들의 영적 여정을 동행하는 고해 사제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은, 우리 삶의 사건들에게서 하느님의 암호를 식별하고 알아보며 우리 삶을 통해 던지시는 그분의 도전에 응답할 수 있도록 침묵하고 경청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269-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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