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46)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11월 29일(대림 제1주일)부터 2021년 11월 27일(대림 제1주일 전날)까지 한 해를 희년으로 선포하고 기념합니다. 

교회에서는 희년(禧年, Jubilee)이란 말도 쓰고 성년(聖年, Holy Year)이란 말도 종종 사용합니다. 두 단어는 혼용해도 무방할 정도로 유사어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희년은 본래 성년이라는 용어의 배경을 만들어 준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희년은 히브리인들의 큰 축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안식년이 여섯 번 지나고 7년이 지나 일곱 번째 안식년까지 지나고 나면, 그 이듬해가 희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일곱 번째 돌아오는 해인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마흔아홉 해의 다음 해를 희년으로 셈하는 것은 천지창조와 관계 있다는 걸 금방 눈치채셨을 겁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조물주께서 이레째 하루를 쉬신 것을 기념하여 안식일이 생겼고, 이것을 한 해에 적용하여 7년마다 한 해씩 안식년이 돌아왔습니다. 안식년을 이용하여 경작하는 토지를 7년마다 쉬도록 내버려 뒀습니다. 경작지가 쉬는 동안 농부는 그 땅을 건드리지 않았으나 땅은 그곳이 경작지였던 만큼 자연스레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열매를 자라게 했습니다. 안식년 동안 휴경지에서 난 열매들은 가난한 이들의 몫이었습니다. 더불어 안식년에는 빚을 진 이들은 빚도 탕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새롭게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안식년을 통해 마련된 것입니다. 

이렇게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고 난 후 희년으로 선포되었습니다.(레위 25,10) 희년에는 땅을 일구지 말고, 노예를 해방시켜줘야 하며, 땅과 집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라는 것이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내용이었습니다. 히브리 사회에서 희년 규정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땅이 함께 쉬도록 이끌어 준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토지가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쓰이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임을 깨닫는 시기가 희년의 영적인 의미가 됩니다. 

희년에는 땅도 쉬게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희년에는 땅도 쉬게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나중에 교회는 이 희년의 정신을 신학적으로 활용하여, 희년 혹은 성년의 기간을 통해 전대사를 베풀어 신자들의 잠벌을 사해 줬습니다. 보니파시오 8세가 교황으로 있던 1300년을 그리스도교 안에서 희년의 시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구약의 희년 개념을 적용한다면 50년 주기로 희년이 선포되어야 하지만, 50년 주기가 적용된 적은 두 번 밖에 없고 거의 25년 주기로 희년을 선포해 왔습니다. 

25년 주기든 50년 주기든 희년을 선포하면서 진정으로 휴식과 해방의 의미를 되살렸으면 좋겠습니다. 빚을 진 이들, 가난한 나라들도 탕감받아 빈부의 격차가 그만큼 줄어들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야 참으로 기쁜 해를 맞을 수 있겠습니다. 

희년의 선포는 꼭 로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교회가 선포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은 한국 천주교회가 선포한 것이니까요. '희년'(Jubilee)이란 단어는 희년의 정신을 아는 공동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센터장, 인성교육원장,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