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수도회 선교사로 남수단에서 8년간 의료 교육활동 전개하다 대장암으로 얻어
-"나는 평화로우니 걱정말라" 오히려 주변 걱정해 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everything is good"이라고 말해

▲ 사진/고동주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봉사와 교육활동을 펼쳐온 살레시오 수도회 이태석 신부가 지난 1월 14일 오전 5시 35분에 48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이태석 신부는 2009년에 대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이어왔는데, 임종을 지켰던 친누나 이영애씨에 따르면, 혼수상태였던 이태석 신부가 새벽 2시쯤 잠시 의식을 회복해 "꿈에서 돈보스코 성인을 만났다"고 말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강복을 주고, "나는 평화로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또한 "everything is good"이라고 말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태석 신부를 알던 지인들은 이 신부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마치 성인 같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동안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및 성염 전 바티칸 교황청 대사 등이 빈소에 방문했으며, 친형인 이태영 신부는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다가 갔다"고 술회했다.  

이태석 신부의 장례미사는 지난 1월 16일 오전 8시 30분 관구관 7층 대성당에서 살레시오회 한국관구장 남상헌 신부의 집전으로 거행되었다. 장례미사 후 이태석 신부는 전남 담양 천주교 공동묘역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 사진/고동주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후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살레시오회에 입회해서 광주가톨릭대학에서 공부했으며, 2001년 사제서품을 받고 2008년 11월까지 남부 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활동해 왔다. 

이 신부는 톤즈 마을에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 한센병을 비롯한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보살폈으며, 학교와 기숙사를 세워 가난한 어린이들이 자립하도록 도왔으며, 그동안 2006년 11월 제7회 인제인성대상 특별상, 2007년 3월 제23회 보령의료봉사상, 2009년 12월 제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을 받았다. 

이태석 신부는 로마의 살레시오 신학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케냐의 나이로비로 답사여행을 떠났다가, 30여 년간 남수단에서 활동해온 제임스 신부를 만나, 나이로비에서 2,800km 떨어진 남수단에 와서 주민들을 보고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사람이 저렇게도 가난할 수 있구나, 저렇게 죽음 가까이서도 살 수 있구나…."하고 느끼면서 아프리카 수단에 가서 선교사로 생활하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수단은 내전이 극심했는데, 북수단은 남부에 대한 인종청소를 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3,300만 주민 가운데 200만여 명이 죽었으며, 300만여 명이 고향에서 쫓겨나고 20여만 명이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이태석 신부는 "너무 불공평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저들이 왜 저토록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 건지. 영양 상태만 좋으면 쉽게 이길 수 있는 말라리아나 홍역으로 죽어가고, 배앓이로 죽고, 지뢰를 밟아 죽고, 총 맞아 비명횡사합니다. 아이들이 열병에 걸려 신음하면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마당에 물을 뿌려놓고 열이 내리길 기다리는 것뿐이다."라고 전했다. 

이 신부는 2001년 서울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곧 톤즈로 날아가, 진료소 일부터 시작했다. 톤즈엔 하루 200여 명의 환자가 찾아오는 진료소가 있고, 나환자 병동이 따로 있다. 전쟁고아와 기숙학생 등 150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 8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가 있다. 그 밖에도 1주일에 한 번씩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이동진료도 했다. 

그의 별명은 ‘쫄리’였는데, 그의 세례명인 존(john, 요한)과 성씨인 '이'(李)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아이들은 낮 2-3시면 어김없이 그의 진료소로 몰려와서, 춤추고 노래하며 논다. 밴드도 운영한다. 그는 음악선생 노릇까지 했는데, ‘꼼보니’라는 복음성가도 작곡했다. "즐거운 노래, 찬미의 노래를 다 함께 불러요. 꼼보니는 평화의 사도, 꼼보니는 아프리카의 아버지,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네…."라는 이 노래는 톤즈의 시민가요가 되었다. 북수단과 남수단의 평화회담에 맞춰 '너에게 평화를 주리라'는 노래도 작곡했다.  

특히 살레시안으로서 이태석 신부는 질병만 아니라 아이들의 심성을 보살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랜 전쟁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폭력적이었습니다. 칼을 들이대고 선생님들을 협박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교육을 통해 양처럼 공손하게 변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면서 가진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톤즈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건 음악을 가르치건 그 과정이 진정 행복한 것은 아이들이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 젊은이들에게 "많은 젊은이들이 봉사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바램을 털어놓았다. "봉사는 삶의 질을 높이고 자아 실현에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 사진/고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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