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모니터링 자료는 11월 1일자 1041호 <평화신문>과 2670호 <가톨릭신문>이다.

▲10월 26일 정진석 추기경은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명동성당에서 봉헌한 안중근 추모미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관변단체로 알려진 안중근의사 숭모회와 조선일보가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 안중근 유묵전시회에 참석해서 발언했다. (사진/한상봉)

안중근 도마

민족에게 있어서 ‘안중근’이란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세대 차이와 관계없이 코흘리개 아이부터 노인까지 그를 민족의 의인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념적 대결과 관계없이 남북한 모두 그를 독립전쟁의 고귀한 희생으로 여기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안중근 의사가 종교적으로 천주교인임을 교회 관계자들은 언젠가부터 조심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짧지 않은 세월을 흘려보내야만 했다.

안중근의 하얼빈의거 100주년을 맞아 교계신문들은 오래 전부터 독자들에게 알려왔다. 그리고 거사일(10월 26일)을 전후하여 벌어진 여러 행사들을 특집으로 기획하여 독자들에게 전했다. <평화신문>은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의거 100돌 기념미사를 톱에 배치하고, 정진석 추기경이 안중근 유묵전에 참석하여 축사한 내용을 사이트 톱에 배치하였다. 이어 의거 100돌 기획과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5개 논문을 요약하여 20, 21면에 실었다. <가톨릭신문>은 정 추기경의 발언을 1면에 놓고, 수원교구 원로사목자인 김춘호 신부가 기고한 ‘ 안중근 토마스의 의거와 사회정의’와 함께 의거 100돌 기념미사를 3면에 놓았다. 이어 100주년 기념학술대회 요약을 13면에 실었다.

누가, 왜, 이런 행사를 하는가?

교계신문들은 공교롭게도 공통된 주제인 ‘안중근 하얼빈 의거’에 대하여 진행된 몇 가지 행사의 주관 혹은 주최단체에 대한 소개를 보도 기준 없이 들쑥날쑥하거나 무신경했다. 그러나 행사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단체가 준비하느냐에 따라 행사는 완전히 그 목적과 내용을 달리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교계신문의 종사자들이 평소에 그런 것을 놓친다면 독자들에게는 사실전달의 기초조차 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기념미사는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최하였고,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된 유묵전시회는 예술의 전당, 안중근의사 숭모회, 조선일보가 주최하였으며, 국제학술대회는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였다.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와 안중근의사 숭모회, 민족문제연구소와 조선일보의 차이점을 교계신문 비평란에서 변별할 수는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그러나 교계신문들은 역사를 조금 더 길게 보고 말할 수 있다면 유료독자들에게 더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교계신문이 지난 1993년 8월 29일자에 크게 다룬 기사가 ‘안중근 의거’에 대하여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가톨릭신문>이 지난 3월 15일 12면에서 상기한 바 있다.) 당시 교계신문은 1993년 8월 21일 김수환 추기경이 집전한 안중근 추모미사가 사상 첫 공식 추모미사였음을 알리고 김 추기경이 일제하 제도교회가 안중근에게 단죄한 것도 사죄했으며 민족복음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이어 스케치기사를 통해 현장에서 나온 박수와 환호, 감격의 눈물을 실감나게 전했다.(<가톨릭신문> 1869호 1,3면)

1979년, 1993년 그리고 2009년의 발언들

이제는 고인이 된 김 추기경의 당시 강론 서두이다. “일제 치하의 당시 한국교회를 대표하던 어른들이 안중근의사의 의거에 대해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림으로써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한데 대해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연대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일제 당시의 제도교회가 올바르게 하느님 백성을 인도했다고 보기 힘든, 한국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친일적인 행위가 있었음을 한국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 아파합니다. 이 모든 과오에 대해서 교회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과를 하라면 사과를 할 것이며 속죄를 해야 된다면 속죄를 하겠습니다.” 이날 김 추기경이 말한 “안중근 의거가 가톨릭신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은 16년 만에 지난 10월 26일 정진석 추기경이 유묵전에 참석한 자리에서 다시 재언급 되었다.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천주교회에서 ‘모르쇠’ 하던 안중근‘문제’가 공식으로 고위성직자 입에서 갑자기 나온 것은 1979년 9월 2일 명동성당에서 노기남 대주교 집전의 안중근 탄생 1백주년 기념미사 때의 일이다. 그는 강론에서 “안 의사의 의거는 사사로운 원한이 아니라 조국과 동양 전체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1백주년 미사는 ‘안 의사 탄신 1백주년 기념 준비위원회’(위원장 이은상)의 기념축전의 일환이라고 전하며 교회가 스스로 주최한 행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기사도 톱이 아닌 3면에 실렸다.(<가톨릭시보> 1979년 9월 9일자) 결국 노 대주교의 언급은 당시로서는 정리되지 않은 발언에 불과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안중근 의사 탄생 100돌(1979년)을 기념해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벌였다. 그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안중근 의사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할 계획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시사저널> 2005년 8월 8일) 결국 박 대통령은 그해 10월 26일 김재규의 권총에 맞아 숨졌다. 그 날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오를 저격하던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는 두려운 것이다. 그런가하면 역사는 힘 있는 자들의 속임수이며 은신처인 것도 사실이다. 안중근 추모사업과 <친일인명사전> 대상자들은 어떤 관계일까. 기가 막힌 일이다. 독자들은 다빈치코드를 찾아보시라.

어디서 어떻게 말할 것인가?

교계신문들이 그동안 안중근 의사와 관련하여 그의 명예를 회복하고 천주교인임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 왔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내년으로 다가온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준비 중인 특집도 기대한다. 그러나 안중근에 대한 교회 책임자들의 언급이 1993년에는 혜화동 교리신학원 성당에서, 2009년에는 예술의 전당 전시회장에서 나온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진정 한국천주교회와 당시 안중근을 단죄했던 경성교구장의 후계자인 서울대교구장이 그의 의거에 대하여 할 말이 있다면 주교좌에서, 특별사목서한과 같은 가시적 문서로서 안중근의 의거를 만천하에 의로운 전쟁으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돌아가신 김 추기경이 16년 전 힘들여 말한 내용을 그의 후임자가 그대로 반복하면서 “교회가 그동안 소극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회피일 따름이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안중근의거에 대하여 소극적이지 않았으며 단지 교회 책임자들이 소극적이었다고 해야 정확한 진단이 될 것이다. 10월 26일 명동성당에서는 사제단 등이 주최한 안중근 의거 100돌 기념미사가 있었고, 같은 날 예술의 전당에서는 조선일보 등이 주최한 유묵전이 열렸다. 교회 책임자들의 발걸음에 고민이 있었어야 했다. 그 답답한 마음을 <가톨릭신문> 22면 ‘기자수첩’에서 기자는 한국 교회 차원의 의거 100주년 추모와 행사는 없었다고 적었다. 적절하고 당연한 슬픈 지적이다.

교계신문에서 보고 싶은 기사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2010년)이란 말은 우리 국호를 빼앗긴 경술국치 100주년이 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는 죽고 나라는 빼앗겼다. 누구나 민족의 의인이라 할 안중근을 추모하고 숭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누구나 경술국치를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어두운 시기에 바르지 못한 행실이 있는 당사자와 기관들은 먼저 할 일이 있다. 그런 연후에 안중근에게 꽃을 바쳐도 늦지 않을 것이다. 행사장이 아닌 ‘주교좌’에서 안중근 의거에 대하여, 그의 순국에 대하여 말할 때가 되었다. 그 기사를 교계신문에서 보고 싶다.

김유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경남민언련 이사,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