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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모미사는 안중근 의사의 가톨릭 신자 신분 공식 확인하는 자리"-정진석 추기경, 명동성당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미사 봉헌해
-뮈텔 주교 입장, "교회와 사제, 안중근 모두를 돌보는 방법이었다"

   
▲ 사진출처/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가톨릭굿뉴스 교구 보도자료)
지난 3월 26일 서울대교구 주최로는 처음으로 안중근 의사 추모미사가 명동성당에서 봉헌되었다. 이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념한 행사로, 정진석 추기경이 직접 주례를 맡았으며, 이 자리에는 안중근 의사의 외손녀인 황은주·은실 씨 자매와 신자 800여 명이 참석했으며, 가톨릭신자로 알려진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토마스) 장관과 보건복지가족부 전재희(마리아) 장관 등도 참석했다.  

이날 미사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안중근 의사의 삶이 숭고하고 신앙과 민족 운동이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되기 때문에 추모미사를 봉헌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은 안중근 의사를 민족자존과 국권 수호, 정의 실현을 위해 생명까지 아낌없이 바친 애국자이며, 평화주의자, 인권운동가, 고매한 인격자, 교육가로 소개하면서 "무엇보다도 가톨릭 세례명이 토마스인 철저한 신앙인"이었음을 강조했다. 

한편 정진석 추기경은 "안타깝게도 우리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안중근 의사를 신앙인으로 올바르게 평가하는데 소극적"이었고, "당시 교구장인 뮈텔 대주교님의 소극적인 처신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해명에 나섰다. 

당시 뮈텔 주교가 금지했음에도 뤼순감옥까지 안중근을 찾아가 종부성사를 준 빌렘신부에 대해서, 정 추기경은 "교회 책임자의 묵인내지 내적 협조 없이 주임사제가 사목지를 이탈해 성사를 집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뮈텔 주교의 묵인 또는 내적 협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면서, "나중에 비교적 가벼운, 몇 개월간의 직무정지를 명하고 빌렘 신부를 외국으로 출국시킨 것도 오히려 교구장이 사제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고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이어 당시 "뮈텔 대주교님의 입장에서는 교회와 사제, 그리고 신자인 안중근 토마스 모두를 돌보는 방법을 고심하며 최선의 선택을 내린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밝혀진 학계의 주장과 달라 그 반응이 기대된다.

독립기념과장을 지낸 김삼웅 씨등 학계의 견해에 따르면, 뮈텔주교가 안의사를 거사 전부터 이미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안중근을 알지 못한다 말하고 심지어 신도가 아니라고 공언했다. 이어 뮈텔주교는 1909년 11월 4일 서울 헌병본부에서 거행된 이토의 장례식에 선교사 3명과 함께 참여했다. 장례행사가 일본의 신도(神道)의 예식이라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조선천주교회'라고 쓴 화환을 식장에 진열케 했다.

한편 1910년 2월 8일 중국 봉천의 슐레(Choulet)주교가 조선의 뮈텔 주교에게 서한을 보내 "빌렘 신부가 여순에서 안중근의사에게 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했다"며 빌렘 신부가 사형수에게 성사를 집행하러 뤼순에 올 수 있도록 동의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일주일이 지난 2월 15일 뮈텔 주교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냈다. 다음날 뤼순감옥이 안중근과 빌렘 신부의 접견을 허락한다는 전보를 뮈텔에게 보냈으나, 여전히 "보낼 수 없다"는 회답을 보냈다. 2월 21일 안중근의 사촌동생 안명근이 뮈텔을 찾아가 다시금 부탁했지먼 거절당했다.

결국 빌렘 신부는 3월 2일 자신이 여순으로 출발한다는 서한을 뮈텔에게 보내고, 3월 9일 안중근을 만나 종부성사를 주었다. 3월 10일 빌렘 신부가 감옥에서 집전한 미사성제에서는 안중근이 직접 복사(服事)하고 성체를 받아 모셨다. 

뮈텔주교는 청계동으로 다시 돌아온 빌렘 신부에게 명령불복종과 정치적 문제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2개월간 미사집전을 금하는 징계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빌렘 신부는 뮈텔 주교의 부당한 조처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안중근에 대한 성사집행의 정당성을 밝히고, 자신이 소속된 파리외방전교회로 건너가 로마 교황청 재판소에 가서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항소를 제기했다. 교황청 포교성성은 뒷날 특수상황에서 행한 빌렘 신부의 성무집행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였지만, 빌렘 신부는 결국 뮈텔 주교와 다른 사제들의 미움을 받아 1914년 본국으로 쫓겨가고 말았다. 

게다가 역설적이게도 빌렘 신부가 1911년 1월 11일 교구장에게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명근이 신민회와 관련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있음을 뮈텔주교에게 보고하자, 뮈텔 주교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즉시 일본 헌병대를 찾아가 이 사실을 제보했다. 

이처럼 그동안 밝혀진 바에 따르면, 뮈텔 주교가 교회와 사제, 안중근 모두를 보호하려고 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날 정진석 추기경의 강론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천주교인으로 다시 조명된 것이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을 통해서였다"면서, 자신 역시 "전임 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오늘 이 추모미사는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가톨릭 신자 신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결국 정진석 추기경은 이번 미사를 통해 뮈텔 주교가 부인했던 것을 철회하고 "안중근 의사가 가톨릭신자였다"는 사실만 확인한 셈이다.  

이어 정 추기경은 "그분의 독립투쟁과 의거는 신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강조하며, 안중근 의사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모범을 보여준다"고 칭송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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