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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로 엿보는 과학의 세계[로세르바토레 사이언티피코]

과학(Science)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답이 아주 간단하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과학이 무엇이라는 간단한 답보다는 과학자들의 이미지가 쉽게 떠오른다. 흰 실험 가운을 입고, 두꺼운 안경을 썼으며,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고 어딘가 범상치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미지가 과학자들을 대표하는 상투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 과학자의 이미지 때문에 과학은 괴짜들의 전유물이며, 이해하기 어렵고 쉽게 접근하기 힘든 어떠한 대상으로 느껴진다. 당연히 이러한 편견 때문에 “과학이란 무엇일까?” 질문에 답을 하기란 어렵다. 

과학을 뜻하는 영어단어인 Science는 ‘알다’, ‘분별하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scindere’에서 출발한다. 어원으로부터 과학의 뜻을 헤아려 보면 과학은 ‘사물을 분별하고 구분하여 앎’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과학자들은 어떠한 사물이나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구분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지식의 형태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양 지성사에서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단연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철학자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그는 철학은 물론이거니와 자연과학, 의학, 수학 등의 여러 학문 분야에 대하여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그런 이유로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 유비 추론 등의 기술을 이용하여 자연과학의 기초를 놓았고, 관찰과 분석을 통해 ‘일반적인 원리’를 도출하는 연구방법론을 정립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 기초는 너무나도 빈약하기 그지없고, 그의 이론들이 현대에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안타깝게도 없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현상을 ‘신의 영역’에서 ‘인간 이성의 영역’으로, 즉 기초적인 과학의 형태로 옮긴 사람이었다.

'아테네 학당', 라파엘. (1511)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과학의 역사 안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를 꼽겠어요?” 질문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가장 위대한 과학자를 꼽아 보길 바란다. 아마 다수의 사람은 공통적으로 이 인물을 떠올릴 것이다.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혹시 아인슈타인이 아닌 다른 과학자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이미 상당한 과학사 지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은 가볍게 넘겨도 좋다. 

알버트 아인슈타인도 현대 과학사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내로라하는 과학자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과학의 역사 안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닐슨 보어와 논쟁을 벌이면서 양자역학을 두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양자역학을 끝까지 수용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그가 위대한 과학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토머스 쿤은 1962년 자신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정상 과학의 진보는 점진적이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서술하였다. 고도로 일반화된 이론들을 포함하는 과학을 정상 과학이라고 한다. 정상 과학은 일반화된 법칙으로써 과학자들이 큰 의심 없이 수용하는 과학적 사실들을 포함한다. 쿤은 얼핏 보면 정상 과학은 진보하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발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진보의 과정에는 분명한 불연속적인 지점이 존재하고 불연속적인 지점에서 기존 정상 과학의 전복이 일어나 새로운 정상 과학이 재정립되면서 결과적으로 정상 과학이 발달하게 된다고 하였다. 

쿤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예로 들어, 천동설로 일컬어지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정상 과학이 기각되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그것을 대체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존의 이론을 전복하고 새로운 이론을 재정립한다는 점에서 ‘인식의 틀’이 뒤바뀌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인식의 틀’이 바뀐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다. 사유의 방식이 180도 뒤집힌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역사 안에서 인식의 틀을 뒤바꿀 정도로 혁명적인 발견을 해낸 과학자들이 ‘과학의 역사 안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들’이 아닐까.

아이작 뉴턴.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인식의 틀’을 바꿔 버린 과학자들은 바로 아이작 뉴턴과 찰스 다윈이다. 뉴턴이라고 하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 이야기는 사실 뉴턴의 과학자로서의 업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며 뉴턴 법칙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일 뿐이다. 또한 뉴턴은 본래 바보였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전혀 근거가 없는 음모론이다. 만약 자연과학을 전공하기 시작한 학부생들이 미분과 적분 때문에 억하심정으로 뉴턴을 저주하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라면 들어줄 만하겠지만, 뉴턴은 바보라고 하기엔 과학자로서 엄청난 발자국을 남겼고 그는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뉴턴 이전까지 사실 과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모습이 아니었고 단순히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을 하며 유비 추론을 통해 원리를 파악하는 정도에,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관념론의 한 부분에 머물러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에 대한 영향이 뉴턴이 살았던 17세기까지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화학에는 4원소설, 에테르 설과 연금술이, 의학에는 4체액설과 같은 지금으로 보면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이론들이 당대 과학의 지배적인 이론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기는 남성의 정자 안에 온전하게 들어 있고 아기는 여성의 몸을 빌려 태어날 뿐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아이작 뉴턴은 미분법을 발명했을 뿐만 아니라, 만유인력의 법칙과 3가지의 운동 법칙의 증명을 통해 물리량을 수리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뉴턴의 공로로 물리량을 수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단 것은 매우 혁명적인 발견이었다. 이는 곧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마련하였고 고전역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뉴턴의 고전역학은 냉전 시대에 이르러 미국이 새턴5 로켓으로 유인우주선을 달로 보내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상대성이론을 완성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고전역학을 완성한 과학자로도 인식된다.

찰스 다윈. (이미지 출처 = ko.m.wikipedia.org)

찰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남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생물종들을 관찰하고 화석 표본들을 수집하여 이것들을 분류하고 비교하는 연구 끝에 1859년 "종의 기원"을 출판하였다. 생명의 진화를 뒷받침하는 이론이었던 "종의 기원"은 진화론을 탄생시키며 과학뿐만 아니라 여러 학문 분야에서 연구방법론을 변화시키는 일대 혁명을 일으킨다. 다윈은 뉴턴의 고전역학처럼 인식의 틀을 변화시키며, 특히 심리학과 사회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방법론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윈 이전에 생물학 분야에서는 생물이 진화를 통해 발달했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다윈은 과학 역사상 위대한 과학자로 꼽힌다. 특히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설’은 생명의 진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며, 선택압에 의해 나타나는 생명의 진화와 종의 분화는 오늘날 분자생물학과 비교유전체학 등의 연구를 통해 실험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과학 역사상 위대한 과학자들로서 뉴턴과 다윈, 두 명의 과학자를 꼽긴 했지만 아인슈타인처럼 그에 못지않은 쟁쟁한 과학자들도 많이 있다. 역사상 여성 과학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사실 남성 과학자들처럼 그들의 역할이 집중적으로 조명되지는 못했다.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이전에 이미 DNA의 구조에 대한 규명은 한 명의 여성 과학자에 의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었다. 그 여성 과학자는 로잘린 프랭클린이었고, DNA의 구조를 엑스레이 결정구조 실험(x-ray crystallography)으로 얻은 회절 데이터를 통해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엑스레이를 이용하는 실험을 과도하게 진행한 탓으로 난소암이 발병하여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한 상태로 사망하고 말았다. 엑스레이도 방사선의 일종으로 생명체에 엑스레이를 과도하게 조사할 경우 생명체는 암과 같은 질병이 발생하여 사망하게 된다.

과학의 역사 안에서 정상 과학이 형성되는 과정, 대표적인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통해 일반화시킨 법칙들로 정상 과학의 불연속적 발전에 끼친 영향 등을 고려하면 과학이 대체 어떠한 것이며 또한 어떠한 성격을 지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과학은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자들의 편견적 이미지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생산한 실험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출된, 자연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로 구성되며 새로운 이론에 의하여 기존의 이론이 기각될 수 있는 가능성(칼 포퍼가 제시하였고 토머스 쿤이 정상 과학의 불연속적 특징으로 받아들인 반증 가능성)을 항상 포함하고 있다. 

어떠한 자연현상을 규명하고 일반적인 원리를 도출하기 위해서 가설을 세우고, 실험적 데이터로 증명을 하며 그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과학 행위의 과정은 결론적으로는 인간 이성이 작동하는 대표적인 방식을 보여 준다. 뉴턴은 이 행위의 과정을 수학적인 방식으로 기술하고 계산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다윈은 이 과정에 ‘진화’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방법론 자체를 바꿔버렸다.

실험 연구 중인 과학자들. (이미지 출처 = Pexesl)

최근 과학 대중화를 위해 대중과 소통을 하려는 과학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대중들의 반응은 그렇게 달가워 보이지는 않는다. 과학자들이 과학이라고 하는 전문지식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고 하지만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그 해석이 대중에게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거기에 대중들이 갖고 있는 “과학은 어려운 것이며 괴짜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적 이미지도 과학 대중화의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 한편으로는 과학이 이해하기 어렵고 쉽게 접근하기 힘든 대상인 것은 맞다. 과학을 이해하려면 상당히 오랜 기간의 전문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훈련을 건너뛰고 유명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것을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것에는 단순히 그것을 듣는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를 공부한다면, 그 전문 훈련이 필요한 간극을 크게 좁힐 수 있다. 과학의 역사에는 우리 인간이 어떠한 체계적인 방식으로 사유하여 과학을 완성시켜 왔는가, 그 과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즉, 과학의 역사를 통하여 과학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과학 대중화를 위해 과학자 그룹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기본적 창구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과학사적 접근을 생략하거나 아니면 과학자들의 신변잡기에 치중하면서 전문지식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에만 집중해왔다는 점에서 대중과 소통하려고 했던 과학자들이 소통의 핵심을 간과한 책임도 분명히 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어떠한 사람들은 이를테면 연구 과정에서의 비화를 소개하는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만 정작 그 과학이론에 대한 이해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과학 대중화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천재들의 야사를 재미있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하는 방식’ 또는 ‘과학적으로 사유하는 방식’을 대중화시키는 것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대중들이 모두 직업 과학자들처럼 과학적 지식을 생산해야 할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안아키’와 같은 유사과학, 또는 정상 과학의 탈을 쓴 비과학의 오류를 논리적으로 판단하려면 ‘과학적으로 사유하는 방식’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전수(라파엘)
국립암센터 연구원.
연세대 생화학과, 포항공과대 대학원 생명과학과 졸업. 
생명과학 연구자이자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과학-기술-사회(Science-Technology-Society), 과학과 종교간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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