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세르바토레 사이언티피코]

성소수자들의 해방공간, 퀴어문화축제

매년 초여름 서울 시내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2000년부터 서울에서만 개최되던 퀴어축제는 전국으로 확대되어 부산, 대구, 광주 등의 대도시에서도 열린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의 여파로 개최가 연기되고 있지만, 매년 퀴어축제의 개최가 확정될 때마다 늘 논란의 중심에서 ‘동성애 찬반논란’을 일으켜 왔다.

동성애(homosexuality)는 현대적인 젠더 관점에서 인간이 가진 성적 지향의 한 갈래로 인권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찬반’의 대상이 아님에도 보수 개신교 단체를 중심으로 찬반의 대상으로써 철저하게 대상화되어 왔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오는 단순한 행사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평소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이 일 년에 단 하루 동안 광장이라고 하는 공적인 공간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며 발견하는 곳이 바로 해방의 공간인 퀴어축제다.

가장 명료하면서도 위험한 도구, 생물학

생물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유전학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유전 현상, 더 나아가서는 유전에 의해 나타나는 유전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또 그 치료법을 찾아내는 데에 어느 정도는 성공을 할 수가 있었다. 특히 서양에서 근대 이후 ‘과학혁명’으로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과학은 종교를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적 권위를 획득하게 된다.

종교의 경전에서 드러나는 신의 뜻, 계시를 통해 드러나는 신비는 과학의 등장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과학은 경전에서 나타나지 않고 신비하지도 않은데, 정연한 이론으로 나타나며 신의 뜻을 빌리지 않고도 자연의 신비로움을 인간 이성으로 충분히 설명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과학적이다”는 상투적인 말로 집약할 수 있는데, ‘과학적인’ 대상이나 설명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비판의 동력을 잃게 된다. 과학에 의해서 해체된 신비를 다시금 신비로 포장하거나 재구성할 필요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과학자 중에서도 신앙인의 비율이 꽤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나마 과학의 영역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신비로움’의 지분을 강조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건 자신들이 과학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갖는 헛된 기대감이다. 보통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신앙이 있는 물리학자나 천문학자’를 예로 드는데, 신앙을 갖고 있는 물리학자나 천문학자들은 그들이 직업적으로 사용하는 수식이나 계산법을 이용하여 주일마다 읽거나 듣는 성경을 해석하거나 이해하려는 해괴망측한 행위들을 하지 않는다.

지난해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동성애의 죄악을 회개하라"고 시위하는 보수 개신교 단체 ⓒ김수나 기자

역사적 사건들을 돌아봤을 때, 비판이 어려운 과학의 권위와 생물학의 결합이 가장 지독하게 나타났던 때는 제2차 세계대전 때다. 나치 독일은 게르만 인종의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우생학(eugenics)의 주요한 이론들을 빌린다. ‘과학적’이라는 이론 앞에서 인종의 우수성은 입증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정당화되었으며 정말로 인종 간 우열의 관계가 있는지를 따져볼 비판의 기회는 제거되었다. 서구 열강이 앞다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할 때 식민지에서의 착취와 학살을 정당화하는 ‘과학적인’ 도구로 이용한 우생학을 나치 독일도 그대로 사용했던 것이다. 세계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시설들을 여행으로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나치 독일이 자행한 이 처참한 ‘과학적’ 차용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는 유전학의 기본적인 내용을 중학교 과학 수업부터 가르친다. 많은 학생이 지루한 과학 수업 도중에 재밌어하는 내용은 멘델유전을 그대로 따르는 인간의 표현형들을 직접 비교해보는 것이다. 학생들은 친구와 함께 짝을 지어서 귀의 모양, 혀 말기의 모양 등을 관찰하고 우성형질과 열성형질을 분류해본다. 우성을 뜻하는 영어단어는 ‘dominant’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유전자의 빈도가 높아서 전체 인구집단 안에서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표현형임을 의미한다. 반면, 열성을 뜻하는 영어단어는 ‘recessive’다. 마찬가지로 이 단어의 생물학적 의미는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유전자의 빈도가 낮아서 전체 집단 안에서 낮은 빈도로 나타나는 표현형임을 의미한다. 어떤 표현형을 결정하는데 한 쌍의 대립유전자만 존재하고 다른 유전자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멘델의 유전법칙을 완벽하게 따른다고 가정할 때 우성형질은 최소 4분의 3 이상, 그러니까 전체 집단에서 75퍼센트 이상 흔하게 관찰할 수 있는 표현형이란 의미다. 열성형질은 그 반대로 아주 적게 나타나는 표현형이란 의미다. 그런데 일본어식 번역 투인 우성과 열성이란 단어는 표현형의 빈도가 높고 낮음이 아니라 우월함과 열등함의 의미로 해석이 되며, 이 내용을 학습한 중학교 학생들은 친구를 놀리기 위해 또는 괴롭히기 위해 우열의 권력 관계를 형성하는 도구로 이용하기도 한다.

근대 이후에 성소수자들을 효과적으로 이성애 중심의 사회공동체로부터 분리하여 그들의 존재 자체를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로 이용된 것은 정신의학과 생물학이었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종교의 경전에 쓰여 있는 율법을 바탕으로 성소수자들을 단죄할 수 있었지만, 과학에 의해 종교가 해체되어 그 권위가 거의 사라진 시점 이후에는 종교와 상관없이 아예 성소수자들이 열등하고 비정상적인 존재임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아니면 ‘과학적’ 내용을 성소수자에 대한 종교적 단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해왔다. 보수 개신교계는 특히 후자의 방법을 이용하여 성소수자를 단죄하고 차별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의학과 생물학에 기대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성소수자 유전자, 이를테면 동성애 유전자를 발견하거나 아니면 뇌의 구조가 이성애자와 다른 부분이 있어 신경과적으로 또는 정신과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해부학적 구조의 차이를 발견하고자 노력해왔다. 이런 증거들이 발견되는 즉시 반박 내지는 비판이 거의 불가능한 ‘과학적’ 근거로 탈바꿈하기 때문에,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를 그들의 기준에서 정상적 이성애자로 교정하고자 하는 시도들을 마구 적용하거나 도덕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이 수월해지는 장점이 발생한다.

간절히 바라면 그런 증거들이 발견되도록 온 우주가 도와줄 줄 알았겠지만, 성소수자와 이성애자 사이에 뇌의 구조 차이는 없었으며 신경계의 기능에도 차이가 없었다. 현대 정신의학은 더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보지 않으며, 또한 장애로 구분하지도 않는다. 보수 개신교계로 통칭되는 그분들은 하느님께 ‘과학적이길’ 바라면서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간절한 기도를 즐겨 들어 ‘과학적으로’ 허락하지 않으셨다.

"동성애 유전자는 없다." 지난해 퀴어 축제에 참여한 천주교 여성 성소수자 공동체 '알파오메가'의 깃발. ⓒ김수나 기자

동성애 유전자? 그런 거는 우리한테 있을 수가 없어

2019년 9월 저명한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아주 흥미로운 연구논문이 게재되었다. 미국 브로드연구소(Broad Institute)의 안드레아 가나(Andrea Ganna)는 영국과 미국 사람 50만 명의 유전자를 비교분석해 동성애적 성적 행동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들, 이른바 게이 유전자(gay gene)를 분석하려고 했다. 가나는 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이라고 하는 DNA 염기서열의 작은 차이들을 비교분석하였다. SNP은 본래 DNA상에서 염기 하나의 차이를 말한다. 만약 유전자 염기서열의 작은 차이, 즉 유사한 SNP가 서로 다른 사람마다 공통으로 많이 발견될수록 그것은 사람의 공통적인 유전형질을 가리킬 가능성이 크다. 반면 공통으로 많이 발견되지 않고 특정 그룹에만 국한되어 유사한 SNP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그 그룹만의 특정 유전형질을 가리킬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에 가나는 이성애자나 동성애자의 그룹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SNP와 서로 다르게 발견되는 SNP를 비교분석하였다.

그 결과로 성호르몬 조절과 후각에 관련된 5개의 유전자가 동성애적 성향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예측이 되었지만 이 5개의 유전자는 그러한 성적 성향에 1퍼센트 미만으로 작용하는 데다, 각 유전적 변수 사이에 유전적 상관계수(rg)가 0.63으로 계산되어 상관성이 부분적으로 있되 큰 상관성을 가지지는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동성애적인 성적 행동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들이 있긴 있으나 그 유전자들이 단독적으로 동성애적 성향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으며 각 유전자가 기여하는 정도는 전체적인 변이를 고려했을 때 매우 국소적이고 각 변수 사이에 상관성이 크지 않아 동성애적 성적 행동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가나는 엄청나게 다양한 유전자들이 인간의 성적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밝히고 있다. 가나의 연구는 영국과 미국 백인의 유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트랜스젠더와 같은 다른 성소수자 그룹에 대해서는 전혀 이루어진 바가 없으므로 한계점이 있으나, 동성애적 성향을 결정하는 특정 유전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을 반박할만한 충분한 ‘과학적’ 근거는 마련한다.

그렇다면 “동성애를 포함하는 성소수자들의 성적 성향이나 행동에 유전자라고 하는 생물학적 요인이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면 어떤 요인들이 그들의 성향이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는가, 또 교육이나 심리학적인 방식으로 치료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연구논문의 저자인 안드레아 가나는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각각 개별적인 개체들의 성적인 성향 또는 행동에는 워낙 다양한 유전자들이 관여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생물학적 요인의 기여도는 생각보다 아주 크지 않고 사회, 문화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개별적 개체들의 성향이나 행동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소수자의 성적 성향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사회, 문화적 요인들의 인과관계는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다.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또한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성소수자의 성적 성향이나 행동을 정신질환이나 장애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생물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의 성향이나 행동을 교육, 심리학적으로 ‘교정의 대상 또는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접근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접근이다.

의학과 생물학을 기반으로 ‘과학적’ 잣대를 약자에게 들이미는 사례들은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과학적’ 잣대는 그 어떤 이유보다도 효과적으로 성소수자 또는 사회적 약자를 부정한 존재로 만들어 사회공동체에서 분리하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다. 더구나 그들을 ‘타자화’시키고 공동체에서 분리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인권이 진지하게 고려되었던 적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과학적’ 잣대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인과관계로 구성된 오류가 대부분이었고 안드레아 가나의 연구 결과처럼 그 잣대가 잘못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확실한 반례들이 쌓이고 있음에도 그 거짓된 잣대의 위력은 여전히 성소수자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과학을 흉내 내는 거짓된 잣대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인식의 왜곡, 곧 혐오와 차별을 비판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미국 브로드연구소(Broad Institute)의 다른 유전학 연구자인 조지프 비티(Joseph Vitti)는 개인의 유전자 조합이 그 개인의 성 정체성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과학자들이 인간의 사회적인 행동들에 대한 연구 결과가 갖는 위력에 대하여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연구 결과의 정확한 해석을 전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동성애는 정신병이다”, “동성애자는 유전이다”, “동성애 유전자가 있다” 등의 여러 주장은 최근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생각했을 때 근거가 희박하고 비과학적인 주장일 뿐이다. 이성애 중심적 사고체계 안에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는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가 인정해야 하고 받아줘야 하는 열성형질이 아니다. 생물학적 반응의 다양한 갈래 중 하나이며 그 자체로서 보호받아야 하는 보편적 인권을 갖는 우리 사회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이다. ‘동성애 유전자’, 그런 거는 우리한테 있을 수가 없고 급격한 돌연변이가 갑작스럽게 인구 전체 집단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희박한 확률이 현실화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Large-scale GWAS reveals insights into the genetic architecture of same-sex sexual behavior" (2019) A. Ganna et al., Science vol.365, issue6456, eeat7693

 

이전수(라파엘)
국립암센터 연구원.
연세대 생화학과, 포항공과대 대학원 생명과학과 졸업. 
생명과학 연구자이자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과학-기술-사회(Science-Technology-Society), 과학과 종교간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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