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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입장에서 본 '현실 모녀'[떼제에서 만난 나 그리고 청년들]

나는 3자매 중 아주 늦은 막둥이다. 큰언니와는 13살, 작은언니와는 10살 차이가 나니 나이 차이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나는 언니들과 같이 자랐다는 느낌보다는 언니들은 먼저 자랐고, 나는 그 뒤에 자란 느낌이다. 늦둥이에게 쏟아지는 무한 사랑과 관심, 특혜들을 언니들이 못마땅해 하거나 공평하지 못하다고 불평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그럴 때면 괜히 억울한 마음도 들고, 별로 대단한 특혜나 차별도 아닌데, 언니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 별말 없이 나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해 준 사람은 엄마였다. 

나도 엄마가 서른아홉에 낳은 늦둥이였고 엄마도 외할머니가 서른여덟이 되어 낳은 6남매 중 막내셨다. 부모님으로부터 아주 특별한 사랑을 많이 받으셨고 언니의 시기 질투도 받았다고 얘기하셨다. (막내로서 받는 사랑과 특혜가 크다는 것은 인정하나 가장 큰 단점은 부모님과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다른 자녀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며 막내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고 대변하고 싶다.)

애증의 관계, 세대 차이, 가치 차이

늦둥이인 나와 엄마는 38년의 차이가 크다 보니 종종 세대 차이와 가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엄마와 의견이 충돌하거나 나의 마음과 생각을 엄마가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지 않을 때 느끼는 이질감과 박탈감은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의 폭과 차원이 다르다. 타인도 아닌, 내가 이 세상에 나오게 한 엄마와의 다름과 불통, 갈등은 때론 내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과 같은 깊숙한 아픔과 상처를 남기는 것 같다. 그래서 모녀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 같다고 때론 생각한다.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사랑하지만, 또 그만큼의 큰 애정이 있어 몰이해, 불통으로 인한 갈등이 더 아프고 힘들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누구로도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바로 ‘엄마’임을 매번 깨닫는다.

늦둥이 초등학교 입학식 때 부모님과 함께. ©유혜진

같은 막내지만 다른 두 막내

보수적인 집안에서 모범생으로 자란 엄마와 역시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지만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10대를 보낸 나는 갈등이 많았다.

어려서는 ‘엄마 껌딱지’라고 할 만큼 내내 붙어 다녀,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녀 사이였다. 그러다 내가 10대가 되었을 때, 아직 어린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정문제가 생겼다. 쉽게 해결되지 않아 그 기간이 무기한 길어지면서 온 가족의 관심이 갑작스럽게 나에게서 벗어나 다른 쪽으로 쏠리면서 나의 외로움과 방황이 시작됐다. 누구보다 친했던 엄마의 관심과 사랑의 부족이 가장 크게 외롭게 했던 것 같다. 서운한 마음에 착한 딸로 어려움을 공유하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기보다는 반항심과 독립심을 보이며 대들었고 그런 나를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어려웠던 긴 시기를 더 힘들게 보냈었다.

새로운 모녀 사이의 시작

그런 모녀관계가 개선된 건 내가 20대가 되면서 서서히 철이 들었고, 무엇보다 아빠를 하느님 곁으로 일찍 보내드리면서 엄마와 급격하게 돈독해졌다. 아빠가 발병 사실을 안 지 2달 만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임종부터 장례까지 정신이 없었고 그 모든 순간을 실감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내게 남은 엄마의 존재가 더더욱 소중하며 절대적인 대상이 되었다.

만 스무 살에 아빠를 보내고 그 뒷정리와 여러 일들을 처리하고 힘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1년 휴학하고 엄마와 물리적으로 많이 붙어 있었다. 그런 일에는 누구보다 힘이 되고 모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은 가족뿐이니 말이다.

그렇게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내면서, 보호자인 엄마와 미성년자 자녀였던 관계가, 내가 성인이 되면서 조금은 수평적으로 동반자 같은 마음이 되었던 것 같다. 나아가 이제는 내가 엄마를 챙겨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20대부터 엄마와 다시 가까워졌지만,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엄마가 되었음에도 그동안 내 몸에 밴 습관으로 과거의 관계로 돌아가는 듯한 때가 종종 생긴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또 화해하기를 반복한다. 가족과의 관계라는 것은 단편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오랜 기간이 축적된, 심오한 관계인 것 같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지지자

떼제공동체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을 지낼 때, 하루는 한 친구가 자신은 이곳에 장기 봉사자로 오기 위해 엄청난 가족의 만류와 반대를 무릅쓰고 왔다고 했다. 그 친구의 가족들도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 혹시나 이 친구가 신앙공동체에서 봉사자로 지내다가 수녀원에 입회라도 할까 결사반대한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야 수도자가 되었다고 하면 모두가 축복 속에서 서원하고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나 보다 생각하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반대와 어려움 속에서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 친구도 결국 수녀가 되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그와는 전혀 달랐던 우리 가족을 떠올렸다. 떼제공동체에 두 번이나 장기 봉사자로, 처음에는 몇 달을, 두 번째는 1년을 더 살고 오겠다며 떠날 때에도 우리 가족들은 무한 지지로 나를 보내줬었다. 그래서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게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이었는지를 그제야 크게 체감하며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느껴 왔던 가족들의 존재와 그 따뜻한 마음에 크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떼제에서 보낸 엽서들. ©유혜진

감사한 마음으로, 그러나 현실은 현실 모녀

그러한 마음을 담아 떼제에서 감사 기도도 드리고, 가족들에게 애정 담긴 엽서와 편지도 보내고, 종종 반갑게 통화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앞으로 그러한 마음으로 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 다시 내 방, 내 집, 내 가족들과 내가 속한 곳으로 돌아오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많은 깨달음과 다짐은 어디 가고,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나오는 본심이 아닌 거친 언행에 당혹스러웠다.

참 환경이라는 것이 중요한 게 그렇게 많이 변화하고 성장한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과거의 내 모습만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예전에 비해 자존심을 세우기보다 금방 제 잘못을 자각하고 뉘우치고 사과한다거나 더 선한 방법을 추구한다는 긍정적인 변화들은 있으나, 떼제에서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습으로 가족들과 새롭게 시작할 수 없음에서 온 좌절감도 컸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가족들과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몇 달이나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내내 한 공간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나 싶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엄마와 갈등이 생기게 되고 그럼 또 마음이 지옥과 같아진다. 그리고 진정되고 나면 또 나에게 제일 소중한 존재이기에 그런 극한 감정도 느끼는구나 생각하고 화해하기도 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유로, 자녀에게 너무 많은 강요와 핍박, 언어적 폭행 등을 일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내 친구들로부터도 가끔 듣는데 참 마음이 아프다. 그런 때에는 또다시 내 엄마는 그렇지 않음을, 종종 서로 부딪히고 어려움이 생기는 관계지만, 기도 안에서 화해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 우리 모녀 사이가 참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런 이야기도 있지 않나, 하느님이 모든 곳에 함께 계실 수 없어서 ‘엄마’라는 존재를 창조하신 것이라는 이야기. 내게 엄마는 정말 그런 존재다. 그런 엄마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현실은 ‘현실 모녀’지만 늘 ‘이상 모녀’를 추구하고 노력하며 소중한 이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오늘도 노력해 본다.

유혜진(마리아)
MaryU(메리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카리나 연주자이자 강사. 공연기획 및 진행, 영어 통•번역 일도 하고 있으며 떼제 기도모임에서 선창과 솔리스트를 맡고 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 사회복지학, 실용음악학(오카리나)을 전공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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