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28]

드디어 동화를 쓸 때가 되었나? 너무도 동화 같은 며칠을 겪었다. 그러니까 그 시작은 다랑이의 호언장담.

“엄마, 난 이번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한테 앵무새 선물을 받을 거야. 아니면 새나.”

그 말을 듣고 우린 모두 비웃었다. 새는 무슨 새, 마당에 나가서 맨 손으로 참새를 잡아 온다면 모를까 뜬금없이 새 선물이라니.... 나는 새는 물건이 아니고 새 입장에서는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는 게 좋을 거라는 말로 다랑이의 집념을 단념시키려 애썼다. (다랑이는 고집도 세고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만약 이대로 간다면 크리스마스 때까지 새 노래를 부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뒤,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새 선물이 도착했다. 이런저런 볼 일을 보러 읍내에 나갔는데 헌옷 수거함에 넣을 헌옷가지를 상자에 담아 트럭 짐칸에 실었더랬다. 마침내 수거함 앞에 도착해서 옷을 꺼내려는데 상자 속에서 뭔가가 파르르륵 소리를 내며 움직여서 보니, 그게 새였던 거다. 다나 주먹보다도 작은 아기 새. 세상에나 만상에나!

조심스레 옷가지를 꺼낸 뒤에 새가 든 상자를 차 안으로 옮기며, 얼떨떨한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얘들아, 상자 속에 새가 들어 있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아, 다랭이 오빠가 새 선물 받고 싶다고 해서 산타 할아버지가 주고 갔구나? 내가 아까 산타 할아버지 목소리를 들었거든. ‘산타크리스마하스, 다랭이에게 선물을 준다, 새를....’ 이런 목소리가 났어.”

다나의 말에 다랑이 입은 벌써 귀에 걸렸다.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가 되면 너무 추우니까 일찍 선물을 보내준 거 아니냐면서 잔뜩 들뜬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 새는 다랑이의 아기 새가 되었고, 우리는 집에 돌아오는 내내 어떤 이름으로 부를까 고민하다가 똥똥이란 이름을 붙여 주게 되었다. 작고 똥똥해서 똥똥이.(다울이 말로는 이 이름을 말했을 때 새가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자꾸 끄덕였다고 한다.)

숨은 새 찾기! 똥똥이가 어디 있을까요? 머리 위에 앉아 있지요. ^^ ⓒ정청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똥똥이 집을 마련해 주고,(종이상자에 지푸라기로 만든 둥지를 넣어 줌) 새 상태를 살폈는데 아주 건강해 보였다. 처음엔 다리가 불편한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아직 날갯짓이 서툰 아기 박새인 듯했다.(날갯짓을 연습하다가 짐칸 속 상자에 떨어진 게 아닌가 추정됨.) 먹이는 뭘로 주나 앞으로 어떻게 보살펴야 하나.... 어린 새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 까막눈인지라 처음엔 작은 물 그릇과 현미를 넣어 주었는데 조금도 먹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러나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 봤더니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병아리와 달리 아기 새는 먹이나 물을 입에 직접 넣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곡식 낟알은 먹기 어려우므로 달걀 노른자를 으깨어 주거나 쌀가루와 들깨가루 같은 곡식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작은 경단처럼 만들어 떠 넣어 주어야 한단다.

그걸 알고부터 아이들에겐 똥똥이 밥 먹이기 놀이가 시작되었다. 작은 튜브에 물을 담아 한두 방울 씩 넣어 주기, 돌콩 만한 쌀들경단 핀셋으로 집어 넣어 주기, 지렁이 잡아서 작게 잘라 넣어 주기.... 먹이를 주는 손길이 다가오면 새가 입을 쩍쩍 벌리고 달게 먹으니 너무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먹었다, 먹었어. 입 벌리는 거 너무 귀엽지 않아?”

“근데 똥똥이는 조금만 먹으면 금방 배가 불러지나 봐. 지렁이 세 조각 먹였더니 배가 땅에 닿을 것 같아.“

“저 배 좀 봐. 웃기다 웃겨.”

“아, 이제 배가 부른가 보다. 입을 벌리지 않잖아.”

“신기해. 내가 밥 줄 때는 입을 안 벌리더니 다랑이가 주니까 먹어.”

“치, 똥똥이는 다랭이 오빠만 좋아하잖아.”

그랬다. 똥똥이는 다랑이를 아주 좋아했다. 다랑이가 주는 먹이만 받아먹을 만큼. 다랑이도 똥똥이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한 번만 손에 안아 보고 싶다고 난리였다.

“그럼 조심스럽게 한 번만 안아 봐. 아직 낯설어서 무서울 거야.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내가 말을 하자마자 다랑이가 똥똥이를 향해 손을 뻗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똥똥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랑이 손바닥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다랑이한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손목에 올라타 앉고, 어깨 위에 앉고, 머리 위에 앉고, 발등에 앉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함께 논다. 다랑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새를 어깨 위에 얹고 다니고 싶어 했는데 순식간에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엄마, 나 좀 봐. 내 꿈이 이루어졌어. 소원을 생각하면 정말 이루어지는구나. 앗, 그런데.... 똥똥이가 내 손에 똥 쌌다!”

똥똥이는 먹기도 많이 먹었는지 똥을 참 자주 쌌다. 물감 짜 놓은 것 같은 작은 똥을.... 그럼에도 아이들은 똥이 더럽다 하지 않고 서로 치우겠다고 나섰다. 누가 코딱지만 조금 묻혀도 질겁을 하는 녀석들이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순간, 내 눈에는 "히어와서의 노래"라는 그림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 히어와서(북미 원주민의 영웅)와 할머니가 새들에 둘러싸여 새들을 친구처럼 바라보는 장면. 새들이 사람을 피해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곁에 머무는 장면. 그 장면을 보며 아름답지만 돌아갈 수 없어서 아득한, 그리움을 느끼고는 했는데, 지금 내 눈 앞에서 그리움이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하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혼란스럽고 감격스러운 가운데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히어와서의 노래" 중 삽화. (이미지 출처 = "히어와서의 노래")

 

그 후로 어린 히어와서 온갖 새들의 말을 배웠네

새들의 이름과 가지가지 비밀도 알게 되었네

여름에는 어떻게 둥지를 트는지

거울에는 어디에 몸을 숨기는지

새들을 만나면 늘 함께 이야기 나누었네

히어와서의 아기 새라 부르며....

 

2, 3년 전에 "히어와서의 노래"에 나오는 장면 장면들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었는데 오랜만에 그 노래를 소환하게 된 것이다. 우리 집 히어와서 다랑이, 다랑이와 순식간에 친해져버린 똥똥이, 그 둘을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 이 노래가 우리 모두를 어디로 데려갈지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나는 몇 번이나 거듭해서 노래를 불렀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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