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26]

십수 년 전, 대안학교 생활교사로 지낼 때, 이야기 듣는 것과 이야기 들려주는 걸 모두 좋아하던 한 아이가 있었다. 이야기를 들려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며 참 많이 친해졌던 아이인데 코로나 시국을 맞아 갑자기 그 아이가 들려 준 짧고 강렬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옛날에 어떤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마녀가 나타나서 마법의 가루를 솔솔 뿌렸어. 그러자 사람들은 개미만큼 작아졌지. 개미만큼 작아져서 작게 작게 살았대.”

작아진 다음에 다시 원래 모습대로 커지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그냥 작게 작게 살았다니 엄청난 반전 아닌가? 누군가는 너무 시시하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라 마음속 이야기 보따리 안에 깊이 간직해 두고 있었다. 바로 이런 날 꺼내어 삶을 비춰 보려고 그랬을까?

아무튼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의 무리를 아주 작아지게 만들어 놓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원래부터 작게 살았던 나는 크게 별일 없이 산다. 봄이 되니 땅을 갈고 끼니마다 밥을 차리고, 아이들 노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해바라기(일광욕)를 하고....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고 땅에 단단히 뿌리 박고 있는 삶에서 오는 평온함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느끼고 있는 참이다. 더구나 때는 꽃 피는 봄날이 아닌가. 아침이면 모종판에 심어 놓은 씨앗이 얼마나 자랐을까 하는 궁금함에 가슴이 설렌다.

ⓒ정청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모종판을 모셔 놓은 작은 비닐하우스 비닐을 벗기러 나가면 어느새 따라 나와 각자의 밭으로 향한다. 얼마 전 심어 놓은 어린 나무에 새 잎이 핀 것을 보고 환호하기도 하고, 꽃을 따서 꽃다발 선물을 만들기도 하고, 새싹을 발견하여 물을 주기도 하고.... 밭에 나가면 나날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감동하고 발견하고 감동하고.... 그러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어제 아침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울금 심을 이랑을 만들어야겠다고 했더니 다나가 자기가 하겠다고 괭이를 가져갔다. 다나도 괭이질 흉내는 제법 내지만 그렇다고 일이 진척될 리는 없다. 제풀에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자 싶어서 두둑에 난 풀이나 매고 있었는데 다울이가 달려와 다나를 구슬리기 시작했다.

“다나야, 괭이 나한테 주면 내가 나중에 선물 줄게.”

“선물? 뭔데?”

“비밀! 근데 아주 멋진 거야.”

불확실한 선물과 괭이를 바꾼 다나. 마침내 다울이가 괭이를 들고 이랑을 만드는 데 폼도 잡혔을 뿐더러 이랑도 꽤 잘 만들지 뭔가?

ⓒ정청라

“다울아, 너 실력이 많이 늘었다. 예전엔....”

“예전엔 철부지였지. 아빠한테 혼나면서 많이 배웠어.”

진짜로 철든 것 같은 대답과 함께 괭이질을 척척 해 나가던 다울이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괭이로 개구리를 찍은 모양이었다.

“어떡하지? 개구리가 죽은 것 같아.” (다울)

“우리가 사랑하는 개구리인데.... 불쌍하다.” (다나)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잘 묻어 주고 잘 보내 주자.”

나 혼자였다면 아마도 에라 모르겠다 쓱 지나치고 말았을지도 모르는데 슬퍼하고 걱정하는 아이들이 곁에 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맨손으로 개구리를 살포시 들어 사마귀 무덤 옆에 옮긴 다음 땅을 파고 개구리를 묻었다. 동지 노래를 불러 주며 짧게나마 장례식도 거행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렇게 소박한 장례식 의례라도 하고 나면 께름칙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덜어지고, 목숨을 잃은 무고한 생명에 대해 조금이라도 마음의 빚을 갚는 느낌이 드니까.

ⓒ정청라

문득 이 밭에 참 많은 생명을 묻어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잘 돌보지 못해 일찍 세상을 뜬 고양이, 엄마 품에서 쫓겨나와 결국 죽음을 맞은 병아리들, 보들이가 낳았던 새끼들, 짓밟힌 달팽이, 호미에 찍힌 지렁이.... 새싹이 쑥쑥 올라오고 새 잎이 뾰족뾰족 솟아나는 밭이 그렇게 수많은 죽음을 묻고 있다는 게 새삼스러운 감흥을 일으켰다. 생명의 어우러짐과 삶과 죽음의 순환.... 그 생생한 현실을 실감하며 삶을 다시 보는 느낌이랄까? 밭이 이런 것까지 가르쳐 주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아마 나처럼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배우는 게 많을 것이다.

코로나에도 지지 않고 날마다 쑥쑥 올라오는 새싹들 앞에서 감격에 겨워 봄을 만난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아이들과 나는 다시 ‘멋진 텃밭’을 노래한다. 작아져도 행복한, 아니 작아져서 다행인 세상을 만끽하며....

덧. 지난 봄에 내가 혼자 부른 노래를 올해는 아이들과 함께 부른다. 밭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작은 삶을 만들어 가는 모든 분께 이 노래를 바치고 싶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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