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사를 하는 한, 이 싸움은 계속될 것이므로"

강정 해군기지 반대 싸움이 10월 1일로 4520일이 됐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가 2015년 말 완공된 지도 벌써 만 4년. 강정마을의 지도는 해군기지와 기지를 중심으로 난 도로와 각종 시설 등으로 확연히 달라졌고, 바뀐 마을의 풍경만큼이나 주민들의 삶과 마음도 달라졌다. 마을 사랑방 같던 몇몇 상점은 주인을 잃었고, 높고 반짝이는 건물이 들어섰지만 마을도 이전의 생기를 잃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강정 마을을, 강정으로부터의 평화를 지키려는 이들의 조용하고도 끈질긴 싸움이다.

강정을 지키는 이들의 하루는 오전 7시 해군기지 앞의 ‘백배’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11시 미사와 해군기지 앞 생명평화 인간띠잇기도 한결같다.

생명평화미사에도 미사 참례자가 끊이지 않는다. 강정 주민이 아닌데도, 제주 곳곳에서 와 늘 미사에 참여하는 이, 인근 수도회 피정 참여자들, 제주 본당 신자들, 육지에서 휴가 온 이들은 의례 이곳에 미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일부러 천막 미사를 찾는다.

구럼비 바위에 펜스가 둘러 쳐진 지 꼭 8년째 되던 지난 9월 2일, 강정 천막 미사를 함께 봉헌한 황정연 신부(예수회)는 강론에서 제주 강정의 투쟁은 영적 투쟁이라고 말했다.

황 신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군기지를 막으려는 이들은 가장 작은 고을 강정에서 참으로 많은 박해를 받았으면서도 정의의 길을 걸어왔다면서,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강정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근본적으로 영적 투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영적 투쟁은 또한 악과 맞서 싸우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이어 온,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적 투쟁’이기도 하다면서, “극심한 심리적 어려움, 정신적 고통 등의 내적 어려움을 대면하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영적 투쟁이며, 주님의 영을 꽉 붙잡지 않으면 몰려드는 불안과 무기력감을 이겨내기가 너무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은 이제 강정만의 바람이 아니다. (사진 제공 = 방은미)

해군기지가 완공된 뒤, 마을에는 언제든 군인들이 무기를 들고 들어올 수 있게 됐고, 기지 안에는 민군복합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민간 크루즈 선은 항의 비좁은 구조 덕에 들어오지도 못할 뿐더러, 해군 측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한 미국의 핵항공모함이 드나들었다.

더 큰 문제는 마을의 분위기다. 해군기지 찬성 측 주민과 반대 측 주민이 서로 반목하면서, 주민 총회와 잔치, 논의의 장이었던 마을회관(의례회관)의 문도 굳게 닫혀, 마을의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곳이 됐다. 매일 미사가 봉헌되는 천막도 누군가가 훼손하기 시작해 매일 아침 미사를 준비하는 이들은 일부러 버린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일상이 됐다. 취재를 한 날은 제대 위까지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해군기지가 완공된 뒤, 단 한 명이 오더라도 멈추지 않는 미사는 어떤 의미일까.

서귀복자 성당 신자인 김성한 씨(아타나시오)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날 외에는 꼬박꼬박 미사에 참례한다. 미사에 참례한 6명 가운데 1명이었던 그는 미사에 빠질 수 없는 이유, 미사를 멈출 수 없는 이유를 묻자, “우리가 하지 않으면 이 싸움에서 지게 되기 때문이고, 우리가 계속 이 미사를 하는 이상, 싸움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아픔을 가톨릭 신자로서 같이하자는 마음이며, 6월 항쟁을 잊지 않은 시민으로서, 그리고 교회가 아니면 이제 대안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미사에 올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니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면 싸움은 계속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음으로, 사람들은 심지어 휴가를 와서도 미사를 찾는다”며, “이것은 미약하고 작지만 오랫동안 뿌려온 씨앗이다. 하나씩 지켜 가다 보면 엄청난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마을 천막미사.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정현진 기자

강정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장 김성환 신부(예수회) 역시 강정마을 천막 미사는 거짓을 거짓으로 드러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아직 강정 해군기지에 대한 완전한 진상규명은 갈 길이 멀지만, 처음부터 강정 해군기지를 두고 정부와 해군이 말했던 거짓이 정말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다면서, “밝혀진 사실들을 그대로 지나칠 것인가. 신앙인 입장에서는 그대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 거짓이라고 말해야 하고 바로잡기 위해 행동하는 것, 거짓을 거짓으로 나쁜 것을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신앙의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제 드러나는 사실들을 보면서, 초기에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 아쉽다면서, “제대로 보도만 했어도 해군기지가 완성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협약서를 보면 해군기지를 넘어 강정 일대를 해군기지화 하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은 제대로 알려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신부는 해군기지가 언제까지 이곳에서 유지될지 모르겠지만 공사 과정을 지켜본 이들에 따르면 부실공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해군기지가 이곳에서 나갈 때, 그 이후를 책임질 이들이 필요하다. 다시 마을을 재건하고 강정을 계속 지킬 이들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주민 스스로 재건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희망을 내비췄다.

마지막으로 강정의 싸움이 끝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김 신부는 공군기지와 연관되는 제2공항과, 제2공항의 물밑 사업인 비자림 벌목과 도로확장 역시 강정과 똑같이 닮은 일이고, 이것을 막는 것 역시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사 뒤, 이어진 해군기지 앞 인간띠 잇기.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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