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회, 여성과 평화 주제로 두 번째 토론회

4.3에 대한 여성의 기억과 경험이 전시공간에 그대로 드러나야 온전한 역사기록과 치유가 가능하다는 지적, 북한 이탈 여성에 대한 타자화, 성적 대상화를 경계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6일 메리놀 외방선교회에서 “가톨릭 여성이 여성을 바라보다, 마주하다, 생각하다”는 주제로 열린 샬롬회 제2회 심포지엄에서다.

‘샬롬회’는 의정부교구 ‘가톨릭 동북아평화연구소’가 2017년부터 운영해 온 만 40살 이하 청년 연구모임으로, 이들은 일년 동안 다룬 주제에 대해 매년 “동북아에서 새로운 평화를 꿈꾸다”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연다.

6일 메리놀 외방선교회에서 가톨릭 동북아평화연구소 샬롬회가 제2회 심포지엄 "동북아에서 새로운 평화를 꿈꾸다"를 열었다. ⓒ김수나 기자

이날 첫 번째 발표에서는 제주 4.3평화공원과 기념관에 여성의 역사적 경험이 빠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역사적 평가나 국가의 의도에 따라 역사적 기억을 재현하는 방식과 내용이 축소, 간과, 날조됐다는 것이다. 

첫 발제자인 장은희 씨(아녜스, 종교학 석사)는 평화공원과 기념관은 역사를 전수하는 사회적 기억공간이지만, 역사현장의 특별한 기억을 온전하게 보여 주지 못한다며, "이를테면 4.3 당시 희생당한 노인과 어린이의 경험, 여성 무장대의 이야기, 다양한 성적 폭력과 살아남아 가정의 생계를 책임진 여성의 고통 등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4.3평화공원과 기념관이 2003년 나온 “진상조사보고서”에 기초한 것으로, 보고서는 4.3의 원인, 과정, 피해사실 등 측정할 수 있는 경험과 수치에 한정됐고, 젠더적 관점이 빠졌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4.3에 대한 여성의 기억을 담지 못했고, 그나마 여성에 대한 전시는 ‘변병생 모녀상’과 ‘여성들의 이중수난’이라는 부조물처럼 모성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전시물에 재현되지 않는 기억은 관람객이 알기 어렵다”면서 “진상보고서에 치우친 전시, 젠더적 감수성 부족으로 아직 기록되지 못한 기억과 고통은 의미가 되지 못한 채 흩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 기억공간의 구성자나 방문자 모두에게 젠더적 시각이 필요하며, 기록되지 못한 자료를 수집하고 치우치지 않은 전시로 4.3에 대한 여성의 경험과 기억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교회가 4.3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4.3의 기억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일”이라면서 “교회는 어떠한 기억도 배제되지 않고 나눌 수 있는 치유의 작업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논평한 정다빈 연구원(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은 “4.3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에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주변화된 사례가 많아 그 결과 역사에 대한 화해와 상생을 말하는 과정에서도 여성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운 것이 또 다른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해자나 희생자로서의 기억을 넘어선 여성의 역사를 사회적 기억 공간에 기록함과 동시에 항쟁의 서사에 드러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이것이 공적 담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여성의 역사를 배제한 제주4.3의 사회적 기억공간'과 '화장품을 중심으로 한 북한 여성의 삶'을 주제로 발표하고 토론했다. ⓒ김수나 기자

두 번째 발표는 1990년대 북한의 식량난을 피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온 북한 여성의 삶을 소개하고, 남한의 미디어가 그들의 여성성을 편협하게 다룸으로써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발제자인 김혜인(사삐엔시아, 동국대 북한학 박사수료) 씨는 북한에서 여성들이 화장품을 소비하는 경향과 그 변화상을 중심으로 1990년대 북한 식량난이 여성들의 생활에 미친 영향을 먼저 소개했다. 

그는 배급이 중단되고 굶주림이 심해지면서 여성들은 북한을 떠나 생계를 위해 중국이나 남한으로 이주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이 인신매매나 강제결혼 등 성적 유린, 이산의 고통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남한에 정착한 북한 여성의 70퍼센트는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

그는 남한 사회가 남한에 정착한 북한 여성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감각적 대상으로 소비하거나 이질적 주체로 구성하는 오류”를 보인다며, 특히 북한 여성이 출연하는 일부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에서 “화려하게 화장하고, 짧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북한 출신 여성을 계단식 스튜디오에 앉히고 패널은 모두 남성인 구성, 북한 제복을 입고 패션쇼를 하는 장면, 남남북녀의 가상결혼 프로그램에서 남한 남성은 경제력이 있고, 북한 여성은 위로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어린 존재로 부각”하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이에 대해 “미디어가 만들어 낸 특정한 시선은 그들을 깊이 이해할 수 없게 하고, 시청자들을 편협한 시각에 머무르게 한다. 이런 엄중함을 알고 건강하게 역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평자 강석주 씨(카타리나,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 수료)는 “현재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북한 여성의 미모와 신체적 매력을 강조하면서도 수수함을 잃지 않길 바라는 이중적 요구가 있다”며, “(이는) 탈북 여성들이 가부장적 체제에 순응하는 존재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북 여성에 대해 이질적 존재라는 타자화에 더해 성적 대상화까지 이중 억압과 소외가 작동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에도 여성들이 정치적, 사회문화적 발언을 해내는 역할을 실제 하고 있는지도 분석이 필요하다”며 탈북 여성의 주체성도 고려하자고 제안했다.

발제자와 논평자. (왼쪽부터) 정다빈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장은희 가톨릭대 종교학 전공, 김혜인 동국대 북한학 전공, 강석주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김수나 기자

질의응답과 종합토론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4.3에 대한 발제자와 논평자에게 만일 큐레이터라면 4.3 전시공간에 여성의 어떤 기억을 담아내고 싶은지 물었다.

정다빈 씨는 “기억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의미의 왜곡이다. 여성의 목소리가 더 풍부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교회나 센터 등 새로운 공간도 상상한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 이탈 여성의 자녀를 돌본다는 한 수녀는 “중국보다 남한에서 더 잔인하고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는 여성들을 누가 토닥여 줄 수 있나. 돌만 던지지 그들의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 없다. 또래이기도 한 그들의 힘든 삶을 위해 무언가 실천하기를 바란다”고 제안했다.

다른 수녀는 이들에게 ‘가톨릭 여성’의 의미와 여성으로서 주체적으로 활동하기에 가톨릭은 어떤 공간인지를 물었다.

강석주 씨는 “서로 많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매체나 모임이 교회 안에 모두 함께 존재한다”며 “실천적 연대를 위해 교회가 발판과 토대가 될 수 있다면 가톨릭 여성으로서 교회 안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다빈 씨는 “가톨릭의 수직적 구조로 인해 젊은 여성으로서 주체적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도 하지만, 샬롬회처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나 문화가 있어 많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장은희 씨는 “젊은 여성 평신도로서 2년 전 안보를 주제로 석사를 마쳤는데, 그때 구조적 논제인 안보를 여성이 다룬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에 억울함도 느꼈다. 여성과 평화, 여성과 감성을 결부시키는 것도 한계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샬롬회 주원준 박사는 “오늘 20-30대 여성 평신도에게 사제나 수도자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의견을 묻는 모습이 펼쳐졌다. 교회는 이러한 청년들이 사제, 수도자와 동반하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적극 힘을 실어 달라”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샬롬회 회원과 사제, 수도자, 신자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열린 제1회 심포지엄은 평화로서의 안보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주제로 열린 바 있다. 샬롬회는 내년 7월쯤 제3회 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이날 발제와 논평 뒤에는 참가자들의 질문과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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