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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평화의 왕, 예수성심께 세상을 의탁하며[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평화와 치유의 마음으로 평화 손잡기가 이어지기를
착한목자수녀회 거룩하신 성심의 마리아 수녀(세속명: 마리아 드로스테 추 피셔링 Maria Droste zu Fischering)의 비전.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의 사랑이 온 세상을 밝히고 있다. (1899)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주님,
거룩한 교회를 평화의 깃발로 세우시고,
모든 나라에 참된 평화를 주시어
온 세상 어디서나 입을 모아
저희를 구원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원히 찬미와 영광과 흠숭을 드리게 하소서. 아멘.

예수 성심.
이 세상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 예수성심께 천하만민을 바치는 기도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이어 오늘은 성모 성심 기념일. 

시간이 지나며 신앙의 흐름 안에서는 그 의미가 점점 더 흐려지는 것 같은데, 나의 신앙 안에서는 점점 더 깊은 뿌리로 인식하게 되는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이다. 여기에 대해선 이전에 이미 글을 올린 바가 있지만(10회), 전례력에 따라서, 교회 안의 다양한 신앙 전통들을 찾고 묵상하면서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새로이 더 깊이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 전례력 안에 담아 왔던 교회의 평화를 향한 기원과 움직임!

한반도의 평화, 형태가 잡힐 듯 그려질 듯하다가도, 인내하며 또 새롭게 방법을 찾고 길을 찾고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들, 그리고 내전에서 테러로 폭력이 더더욱 확산되는 세계를 보며 평화에 대한 관심이 커 가는 만큼 더더욱 간절하게 평화를 희망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전례력에 그렇게 담아 왔던 교회 선조들의 간절함처럼.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예수 성심 성월엔 미사 후에 “예수성심께 천하만민을 봉헌하는 기도”를 드린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자신들로부터 시작해서 냉담자들, 그리고 갈라져 나간 그리스도교인들, 그리고 다른 종교인이거나 믿지 않는 모든 이들을 예수성심께 봉헌하며 청한다. “주님, 거룩한 교회를 평화의 깃발로 세우시고, 모든 나라에 참된 평화를 주시어 온 세상 어디서나 입을 모아 저희를 구원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원히 찬미와 영광과 흠숭을 드리게 하소서. 아멘. 예수 성심. 이 세상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이렇게 마무리되는 기도. 이 구절에 머물며 오랫동안 바쳐 온 이 기도가 궁금해졌다. 언제부터 이 기도를 드리게 되었을까?

오늘날 전례력에 정해진 위치처럼 거룩하신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은 삼위일체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체성사, 성체 성혈 대축일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내게는 성령강림 후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는 특별한 형태이며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어 가려 하는 특별한 신앙고백의 형태로 다가온다.

티롤 지역의 예수 성심 축일. 나폴레옹의 공격에  맞서 승리하게 했던 도움의 힘을 기억하며. ⓒ박유미

격변기였던 중세 중기, 삼위일체 사랑의 신비 안에서 성자의 수난에 담긴 사랑의 의미가 더더욱 강조되었던 시기, 그래서 그분의 사랑에 더욱 집중하면서 성체성사의 의미도 확산되던 시기에 예수성심에 대한 신앙도 널리 퍼졌다.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고, 죽음을 넘어 생명의 물줄기가 되신 예수님 사랑의 모습. 그와 함께 언제나 그 사랑에 함께하며 그 사랑의 마음으로 인도하는 성모성심에 대한 신앙도 퍼져 갔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특히 17세기 이후 점차 수도원들을 통해 확산된 이 신심에 바탕을 두고 전쟁과 죽음의 두려움에 맞서 예수성심의 사랑에 의지하고 따르며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1791년,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침략 위협을 받던 티롤에서, 예수성심께 나라를 봉헌하였다. 태양왕 루이 14세에게도 예수성심께 나라를 봉헌하도록 하는 요청이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면서 평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전쟁과 폭력이 일어났다는 성찰도 있었다.                        

'예수성심께 천하만민을 바치는 기도'는 1899년, 1900년대를 시작하며 1900년 한 해를 성년으로 선포하고 예수성심께 봉헌하도록 한 레오 13세의 회칙 'Annum Sacrum'에서 비롯한다. 1891년 첫 번째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로 시대의 징표가 되는 세상의 문제, 사회문제를 신앙의 눈으로 보고 판단(식별)하여 제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이며 신앙인의 사명이라는 것을 제시했던 교황. 산업혁명과 함께 근대로 나아가는 급격한 사회변화와 사회운동의 흐름 안에서, 당시 사회문제가 되고 있던 이슈들에 대해 전통교리의 틀 안에서 다양하게 논의를 수렴하고 길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교황 레오 13세.

그는 ‘묵주기도의 교황’이라 불릴 만큼 성모신심에도 성 요셉 공경과 성 미카엘 공경에도 열심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이 깊었다.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진 가장 탁월한 신심”이며 십자가의 승리처럼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예수 성심은 (세상의 악에 대한) 교회 승리의 보증”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1899년 5월 25일, 새로운 세기 20세기 시작에 “성년"(聖年)을 선포하고 그리스도 신자들만이 아니라 전 인류를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내용을 담은 회칙을 반포하였다. 그리고 1899년 7월 11일, 온 세상을 예수성심께 봉헌하였다. 이때 모두가 함께 바칠 “예수성심께 천하만민을 바치는 기도문”을 이 회칙에 첨부해 두었다. 세상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지배에 만족하고 받아들이며 그분께 기꺼이 순명할 때, 그리고 모든 이가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 안에 계신다고 고백할 때(필리 2,11), 칼이 내려지고 무기가 손에서 떨어질 것입니다.(성년, Annum Sacrum, 11)라는 내용을 담아 세상의 평화, 그리고 신자들이 그렇게 평화를 이루어 가도록 실천하게 해 주실 것을 청하는 기도다.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의 예수성심에 대한 설명 형상. (이미지 출처 = Kathpedia)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에게 보여 주신 비전을 통해서 여러 가지 세상의 어두움 속에서, 특히 신앙을 위협하는 세상의 유혹들 안에서 우리의 모든 어려움에 늘 함께하시는 예수성심의 사랑을 새기며 개개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그 사랑을 향하도록 일깨우는 예수성심에 대한 공경이 퍼져 갔다면, 점차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활의 변화, 제국주의적 흐름 안에서의 전쟁 위협에 대응해서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예수성심의 뜻을 이루고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가르침과 기원으로 나타난다. 예수성심께 천하만민을 봉헌하며 모든 이들 안에서, 모든 것들 안에서 그분 사랑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교황 레오 13세가 새로운 세기를 맞으며 '모든 이들을 예수성심께 봉헌'하기까지는 17세기부터 성 요한 에우데스가 예수성심, 성모성심에 대한 깊은 공경으로 세운 수도회들, 예수 마리아 수도회와 착한목자수녀회의 소명과 선포, 예수회와 여러 수도회들의 활동이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예수성심, 당신께 온 세상을 봉헌하라고 하신 착한목자수녀회 소속 마리아 드로스테 추 피셔링 수녀의 비전이 직접적 바탕이 되었다.      

1939년 6월 비오 12세가 부부들과의 만남에서 마리아 알라코크의 비전을 바탕으로 제시한 예수성심의 12가지 약속. 예수성심 신심 확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이미 18세기 티롤에 이어 19세기, 계몽주의 흐름을 등에 업고 암묵적으로 가톨릭에 제재를 가하던 독일 문화혁명 때에도 교황 비오 9세가 뮌스터 교구를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께 봉헌한 바 있지만 레오 13세의 봉헌 이후 각국에서 교구와 나라를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움직임이 있고, 이를 자리 잡게 하려는 교황님들의 노력도 이어졌다. 비오 10세 교황은 온 인류를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것을 매년 갱신하고자 했고, 베네딕토 15세와 비오 12세도 전쟁의 위기 속에서, 공산주의 위협 속에서 예수성심께 그 나라를 봉헌하며 평화를 기원했다.

1999년 예수성심께 모든 이를 봉헌하는 100주년을 기념하고, 2011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청소년들을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께 봉헌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가장 필요한 곳에 예수성심의 사랑과 이끄심이 작용하길 바라며 그렇게 평화가 이루어지길 바랬던 교회의 평화 움직임. 오랜 분단의 역사에 담긴 상처와 왜곡된 의식, 그리고 전쟁에 대한 깊은 불안과 불신을 회복하려는 우리의 움직임과 깊은 바람을 파고든다. 

'예수 성심'.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지난 4월 27일, 한국 임시정부 100주년과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하며 한국 종교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실행했던 ‘DMZ 500Km 평화인간띠 잇기”에 20만 이상이 모였다. 평화 실현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격려와 축복처럼 종교를 넘어 형제적 연대에 기초해서 인내하며 끈기 있게 노력하면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어난 움직임이다. 힘들수록 어려움을 극복하고 변화를 이루는 것은 시민들의 힘이므로 “평화를 바라는 울림이 모이면 세상이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흔들림 없는 희망으로 “평화와 치유의 마음으로 함께하자”는 표어를 내결고 가톨릭에서도 적극 참여하였다. 모든 이와 함께 하는 평화의 연대!!

그리고 G20 정상들의 만남에 이어져서 한반도 평화에 또 한 번 희망의 토대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오늘, 요즈음이다.

예수 성심 성월의 끝자락에 예수성심과 예수성심으로 이끄시는 성모성심을 기념하며, 마음을 다해 십자가 죽음을 넘어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지니고 생명과 평화의 힘을 전하고 펼치시는 예수성심께 온 세상을 바치며 의탁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전하시는 그 힘으로 흔들림 없이 모든 이와 함께 연대하며 나아갈 것을 새기고 또 새긴다.

예수성심에 대해 상세하게 정리한 고 구자윤 신부의 글을 추천한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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