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향하며

독일 평신도 공동체인 말씀의 선교수도회에서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을 주제로 제대 아래를 꾸몄다. (사진 제공 = 박유미)

전례력 한 해의 마지막 주를 앞두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서'를 돌아보며 나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마음으로 몇 번이나 담아 두었던 내용들을 지나쳐 보내며 남은 아쉬움들도 채우고, 아무리 이유가 많다고 해도 마음 빚을 갚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스스로도 다시금 집중하고 새로이 출발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뜻이기도 하다.

마침, 무엇을 향해 새로이 나아가야 하는가? 방향을 잘 제시해 주는 날이 전례력에 들어왔다.  

작년부터 제정된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

‘자비의 희년’을 마치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표지석으로 생각하신 날, 인간으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 수난을 거쳐 모든 창조물의 구원을 열어 주시고, 구원을 향하는 길을 보여 주신 주님, 온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께서 당신 다시 오실 때까지 따르도록 보여 주신 삶의 모범을 구체적으로 행하도록 새로운 복음화의 표지석으로 세우신 날이다. 제1차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 담화문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로운 복음화의 특별한 기회로서 가난한 이들을 만나며 살도록 초대하신다.

“‘사회적으로 배척된 이들을 위한 희년’에 비추어 저는 이 특별 성년의 또 다른 가시적 표징으로 교회 전체가 해마다 연중 제33주일에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거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거행을 준비하는 가장 의미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작고 가난한 이들과 같은 존재로 여기시며 우리의 자비의 활동에 따라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5,31-46 참조) 이날은 공동체와 모든 세례받은 이가 복음의 핵심이 가난인 이유를 생각하고, 라자로가 여전히 우리들의 집 문 앞에 누워 있다면(루카 16,19-21 참조) 정의나 사회적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날은 새로운 복음화의 참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마태 11,5 참조)”, “전 세계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가장 작은 이들과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더없이 훌륭한 구체적 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지냄으로써 비길 데 없는 복음적 충만, 곧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우선적 사랑이 보태지기를 바랍니다.”(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문 6항) “이를 통하여 교회는 자비의 증인이 되고자 교회의 지속적인 사목적 회개에서 그 모습을 쇄신합니다.”(21항)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 담화문에서 이 새로운 복음화의 길에 대한 생각을 펼쳐 가기 위한 주제로 택하신 말씀은 “여기 가련한 이가 부르짖자 주님께서 들으셨다”(시편 34[33],7)이다.

이 시편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돌아보아야 할 진정한 가난한 이들이 누구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보시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우리가 보통 가난하다고 말하는 그런 고통과 제약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어느덧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교황은 하느님은 이 세상 삶에서 발로 채이고 박해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돌보신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런 점에서 시편의 세 단어가 하느님과 가난한 이들의 관계를 특징적으로 나타낸다. "외치다“, "응답하다“ 그리고 "해방하다“.

“외치다”: "이와 같은 날 우리는 우리가 정말 가난한 이들의 소리를 잘 듣고 따를 수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절망과 고독 속에 하늘에 외치는 그의 외침을 하느님은 들어 주셨다. 그런데 하느님께 이르는 그 외침을 우리는 왜 듣지 못하는가? => 경청할 수 있는 침묵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이 너무 말을 많이 하면 그들이 말하는 것을 잘 들을 수 없다.

“응답하다”: 하느님은 충만한 사랑으로 함께하시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언제나 구원하도록 개입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이 따라야 할 응답.

“해방하다” : 세상을 뚜렷하게 보아야 한다. 가난은 이기심과 교만, 탐욕과 불의에서 비롯된 오랜 악이며 무죄한 이들까지 고통을 겪게 하는 사회적 결과를 낳는 죄다. 가난의 굴레는 하느님의 권능, 구원을 위해 관여하시는 하느님의 힘으로 부서져 풀린다. … 하느님의 구원은 가난한 이를 향해 내미는 손의 모습을 띤다. 가난한 이들을 환대하고 보호하는 손, 그들이 필요로 하는 우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손의 모양을.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진보를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복음의 기쁨', 187항)

오늘날 얼마나 많은 가난한 이들이 바르티매오처럼 길가에 앉아 자기 존재의 이유를 찾고 있는가!

2017년 라틴아메리카 후원재단인 'Adveniat'에서 예술가 프로젝트로 준비한 세계 가난한 이의 날’ 현수막. (사진 제공 = 박유미)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 58,6-7)

이번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우리는 “가난한 이들은 배불리 먹으리라.”(시편 22[21],27) 하신 시편 말씀을 실천하도록 초대받는다.… 올해 그리고 또 앞으로도 이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한 공동체로 모여 기도하고 한 끼의 식사를 함께 나누며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되새겨 볼 수 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사도 2,42.44-45)

이러한 그리스도 공동체의 노력은 인간 연대의식으로 추진하는 많은 사업에 협력하며 더 큰 효과를 이룰 수 있다. 서로 다른 신앙, 다른 문화에 있는 이들과 서로의 경험들을 나누며 우리를 내세우지 않고 기꺼이 겸손하게 협력하는 것이 올바르고 온전히 복음적인 응답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언가 인정받고 보상을 받으려는 욕구에 따르는 태도가 아니라 사랑이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몸에서 가장 약한 지체들을 더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은사에 대한 기본자세라고 전하신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이들이 우리 가운데 참으로 현존하시는 예수님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의 방식과 달리 가장 힘없고 부족한 지체들과 연대하는 데서 복음적 충만함을 채우게 된다. 희망은 믿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은 해방되리라는 확신을 나타내는 희망의 부르짖음, 당신을 믿는 이들을 저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바탕을 둔 희망의 부르짖음이다.(로마 8,31-39 참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의 모든 지체들, 주교, 사제, 부제 그리고 수도자와 평신도 모두가 이번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특별한 기회로 지낼 것을 당부한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가 날마다 복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복음화하는 은총의 중재자다. 이 은총의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말자.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다시 오실 주님을 향한 여정에서 굳건한 믿음과 실천하는 사랑과 확신에 찬 희망을 주는 구원의 만남을 실현하도록 하자고 강조하신다. 이것이 바로 한 해를 마감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억하고 향하는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전 주일에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을 정하신 뜻이다. 이렇게 주님 오실 때까지 걸어가야 하는 복음의 길을 따라가도록.

이것이 바로 주님 말씀하시는 진정한 평화를 이루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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