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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을 부추기는 사회[시사비평 - 박병상]

20년 가까이 살던 아파트단지를 떠나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로 얼마 전에 이사했다. 아파트라 그런가? 전 아파트단지의 익숙한 길을 들어설 때마다 낯설다. 사는 동안 아파트단지를 마을로 생각하기 어려웠는데, 지금 아파트단지도 다르지 않다. 아파트, 뿌리내리는 삶을 기대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흙에서 꽤 떨어진 철근시멘트 바닥에 발을 딛고 살기 때문일까?

신축이라 그런지 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새시만 닫으면 조용해진다. 큰 도로 곁의 전 아파트는 베란다를 열 수 없었다. 먼지가 말도 못했지만 자동차 소음은 끔찍했다. 도로 사이의 둔덕에 심은 나무들이 가로막아 베란다 앞은 거의 내다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공원에서 재잘거리는 아이가 가까이 보인다. 송도 신도시의 초고층빌딩도 멀리 보이는데, 가끔 선명하지 않다. 미세먼지 때문이다.

지하철역에서 떨어져 30분 정도 더 걸어야 했지만 조용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끌렸다. 바깥의 미세먼지가 나빠도 거실의 공기정화기는 전처럼 가쁘게 돌지 않는다. 새집 천장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작년 여름, 선풍기로 폭염을 견뎌야 했는데, 올여름은 드디어 집에서 에어컨 냉기를 만나게 되는 건가? 조용하고 창문을 활짝 열면 맞바람 치니 되도록 참을까? 설치돼 있으니 장담할 수 없다. 전기료를 깎아 준다지 않던가. 7, 8월 월평균 1만 정도라지만, 에어컨 켜는 심리적 부담은 그만큼 줄겠지.

1600만 가구에서 들어오는 전기료가 두 달 1만 원 정도 줄어드는 만큼 한국전력의 적자는 늘어날 텐데, 볼멘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부의 요구에 반기를 들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일지 모르는데, 우리 전기요금 체계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전기 사용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산업용은 가정용보다 훨씬 싸지 않던가. 전기요금이 낮으니 기업은 전력 소비를 줄이거나 효율화하려는 노력을 등한시한다. 도심의 상가마다 거리로 에어컨 냉기를 내보내는 행태는 낮은 요금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누진되는 전기료 무서워 에어컨 자제하던 가정도 올여름 과감해도 좋을까?

송도 신도시 건물과 공원 모습. (이미지 출처 = Pixabay)

1600만 가구마다 에어컨이 있을까? 에어컨이 신접살림 목록에 오른 마당이니 그럴지 모르는데, 요즘 학교 교실마다 에어컨은 빵빵하다. 에어컨만이 아니다. 공기정화기도 곧 완비된다고 한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설치하면 사립대학도 설치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노인시설도 설치하겠지? 하지만 그만큼 전기소비는 늘어날 것이다. 화력발전 설비의 가동도 늘어날 테고, 미세먼지의 발생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더욱 무덥고 더러운 공기에 노출되어야 한다. 지하철역까지 30분 이상 걸으며 마스크는 꼭 착용하고 답답해 해야 한다.

도시에 아스팔트와 철근시멘트의 면적이 녹지보다 작았던 시절, 한여름의 더위는 소나기를 불러왔다. 도시의 절반 가까이 녹지가 확보된 도시는 그리 무덥지 않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전보다 더워졌더라도 철근시멘트로 점철된 도시보다 한결 시원하다. 녹지 주위에 습지가 넉넉히 조성돼 있다면 전기 소비를 그만큼 줄일 수 있다. 지구온난화 진행도 그만큼 누그러뜨릴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에어컨과 공기정화기를 준비하는 데 그친다. 각자도생이다.

에어컨과 공기정화기를 복지 차원에서 가동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에어컨 이야기로 각자도생 운운할 시기는 아니다. 한데, 에어컨을 켜기 전에 전기료보다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을 먼저 생각하는 이, 얼마나 될까? 본격 더위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싶은 처지이므로 에어컨에 문제를 제기할 의지가 없다. 다만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이 몰고 온 폭염의 대책을 가정용 전기료 인하로 때우려는 정부 정책이 아쉬울 따름이다. 더 큰 걱정이 있다. 정부의 각자도생 정책이 전기료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 정부는 누구의 제안에 귀를 기울였는지, 느닷없이 바이오헬스케어를 들고 나왔다. 바이오헬스케어? 국민보건 정책을 넘어서나 본데, 시민사회에 그 내용과 성격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은 바이오헬스케어가 어떤 시민을 먼저 건강하게 할까? 지구온난화 시대에 후손의 생명을 생각한다면 개인의 지갑에 혜택이 비례할 것으로 의심케 하는 바이오헬스케어보다 공중보건, 무엇보다 환경과 생태계를 먼저 회복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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