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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잃고 산불을 부르는 숲[시사비평 - 박병상]

4월은 잔인하다더니, 기상청은 동해안에 태풍에 버금가는 강풍을 다시금 예고했다. 이번에도 ‘양간지풍’을 수반할 것인가? 지난 4월 4일 속초와 고성에서 번진 산불은 양양에서 간성 사이에서 발생한 강풍을 타고 525헥타르의 산림을 태웠다. 신속한 대응으로 하루 만에 불을 껐지만 과거 이맘때 화마를 부른 양간지풍은 막대한 손실과 인명피해까지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 안겼다. 겨울이면 산불에 시달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양간지풍 비슷한 바람이 분다고 한다. 이상한 노릇이다. 산불이 해마다 반복되는 지역이라면 숲이 넓게 형성될 리 없는데.

‘소나무 에이즈’라 칭하는 재선충병이 제주도를 휩쓸더니 남도 일원으로 확산된다고 한다. 사람의 에이즈와 달리 바이러스가 아니라 1밀리미터 크기의 선충에 감염돼 발생하는데, 매개곤충인 솔수염하늘소가 퍼트리는 모양이다. 작은 선충이 수관을 막아 소나무가 말라 죽는다는데, 죽은 나무가 아까워 땔감으로 가져가는 사람 때문에 전파가 촉진될 수 있으니 산림청은 주의를 당부한다. 한데 어떤 학자는 색다르게 지적한다. 동일한 품종의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어 전파가 빠르다는 게 아닌가. 그 학자는 낙엽활엽수를 섞어 심었다면 재선충뿐 아니라 화재도 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은 임학으로 명성을 쌓았다. 슈바르츠발트, 번역하면 ‘검은 숲’이 인근에 펼쳐 있다. 가문비나무가 빼곡한 그 숲에서 목재의 생산과 가공을 담당할 인재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키웠다. 맑은 날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나무가 가득한 슈바르츠발트 한가운데 특별한 교육장소가 있다. 1999년 폭풍 로타로 20여만 그루의 가문비나무가 쓰러진 현장이다. 지속적으로 가문비나무만 심자 토양이 산성화되었고 뿌리가 건강하지 않자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이었다는 사실을 알리려 넘어진 나무 사이에 산책로를 만들었다. 경제성만 생각한 단순한 산림정책이 화근이었다는 걸 인식한 독일 당국은 너도밤나무 같은 낙엽활엽수를 섞어 심는다고 한다.

2000년 4월에도 강원도 고성군 동해안에 산불이 났다. (사진 출처 = ko.wikipedia.org)

빙하가 밀어낸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 숲은 다채로운 나무들이 공존한다. 몬순기후인 까닭에 갈수기인 봄이면 쌓인 낙엽이 바싹 마르지만 화재가 빈발하지 않았다. 산불이 일어나도 넓게 퍼지지 않았다. 다양한 나무가 뒤섞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요즘 인공림은 소나무 일색이다. 특히 동해안을 바라보는 강원도가 그렇다. 바람에 불길을 멀리 퍼트리는 소나무가 빼곡하다면 작은 불도 커진다. 소나무보다 낙엽활엽수가 많았다면? 지엽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이므로 작은 수의 소방대원으로 진정시켰을지 모른다.

산림의 불쏘시개가 되기 일쑤인 소나무를 빼곡하게 심는 이유가 궁금하다. 소나무를 좋아하는 정서 때문일까? 소나무 목재 욕심 때문일까? 목재를 생각한다면 산불관리가 철저해야 할 텐데, 양간지풍으로 산불이 잦은 지역의 소나무는 목재용이 아니다. 경북 울진과 청송 지역에 자라는 춘양목처럼 곧게 자라지 않는다. 송이버섯을 채취하려는 의도와 무관할까? 양간지풍으로 산불이 확대되는 지역은 우리나라 송이버섯 주산지다. 거듭된 산불에도 소나무만 고집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흔해 빠진 바나나가 멸종위기다. 어느 농장이나 캐번디시 품종만 심기에 곰팡이에 속수무책이라는데, 다양성을 잃은 농산물을 광범위하게 파종하면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다. 유전다양성을 잃은 꿀벌도 같은 이유로 멸종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재선충에 노출되면 속절없이 죽어가는 우리나라 소나무도 마찬가지다. 이번 산불로 경제적 손실이 큰 속초와 고성 일원이라도 다양한 나무를 고루 섞어 심었으면 좋겠다. 송이버섯에서 얻는 수입보다 훨씬 큰 손실이 반복되지 않도록. 산불 발생이 드문 인근의 자연림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겠지.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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