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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고통에 귀 기울이라”"묵주반지를 낀 페미니스트", 이동옥, 현암사, 2018

-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종교 안 성차별 더 위험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여성은 없었다. 21세기에도 여성은 사제가 될 수 없다. 미사보를 쓰지 않은 여성 신자는 예의 없다는 비난도 받는다. 여성 신자가 성체분배를 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성탄전야와 부활전야 때 촛불을 앞세워 입장하는 남성 사제와 신학생.... 낙태한 여성은 죄인....”

가톨릭 신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이동옥 홍익대 교수가 쓴 책 “묵주반지를 낀 페미니스트”에 나오는 가톨릭교회의 모습이다.

이는 단지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이 제대 차림, 음식 봉사, 청소 등에만 머무르고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과 성직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문제만은 아니다. 과연 교회는 여성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가란 근본적 물음에 관한 문제다.

그간 교회는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나 돌봄 노동을 전담해야 하는 존재로만 규정한 것은 아닐까? 여성은 과연 인격적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았는가? 남성중심주의 역사에서 여성의 상처와 고통에 대해 교회는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을 하나씩 풀어 나간다.

"묵주반지를 낀 페미니스트", 이동옥, 현암사, 2018. (표지 제공 = 현암사)

남성중심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종교는 없다

그는 가톨릭만 유난히 여성을 억압하는가, 좀 더 여성 친화적인 종교는 따로 있는가를 물으며, 가톨릭을 비롯한 종교가 원래부터 성 차별적 제도인가를 살폈다.

저자는 이 물음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 문화권의 역사 어디에서도 성 평등이 실현된 적은 없다고 단언한다. 종교는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남성중심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종교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종교가 더 성차별적인가를 논하기보다 모든 종교 안의 성차별을 인식하고 바꿔 나가야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가톨릭교회의 성적 보수성으로 인해 그는 페미니스트로서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했고, 진보적이지 못한 사람이란 평가도 받았다며, 신앙을 가진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페미니스트 공동체에서 종교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혼란 속에서도 “종교가 여성 억압에서 눈을 흐리는 ‘아편’이 될 수도 있지만 진정한 자유와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세상이 제시하지 않는 통찰력을 부여한다”는 것을 믿는다.

여성,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일 뿐인가

여성 신자들은 여름에 미사에 참례할 때 짧은 치마나 소매 없는 옷을 입지 못하도록 여러모로 제재를 받는다. 또 사제와 각별하게 친밀하게 지내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이 나면 여성 신자는 남성 성직자를 유혹한 ‘꽃뱀’으로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가톨릭교회에서 남성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영적 수련을 위해 금욕과 독신을 선택했고 이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극복해야 할 존재로 폄하됐다고 설명했다. 금욕과 독신으로 남성 성직자는 더 큰 권위를 얻었고, 여성은 단지 물리쳐야 할 유혹의 존재가 돼 버렸다.

교회가 성직자의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태도에도 남성 중심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교회는 성적 스캔들을 조용히 넘기고 싶어 하고 사건 당자사를 솜방망이 처벌하고 만다. 심지어 피해 여성은 남성 성직자와 수도자를 유혹한 나쁜 여성으로 매도돼 또 다시 고통당한다.

돌봄 노동과 착한 여자라는 굴레

저자는 영적 수련이나 종교생활에서도 남성은 자율성을 갖고 철저히 혼자가 되어 몰두할 수 있었지만, 여성은 관계 속에서 보살핌 노동을 도맡았기 때문에 영적 수련에 정진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성당에서 제대 차림, 꽃꽂이, 음식, 청소 등은 주로 여성 신자들이 맡는다. 저자는 이러한 역할은 전례와 친교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님에도 여성의 성역할로 평가 절하됐으며, 이 역할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다 보면 정작 기도생활에는 소홀해진다고 말한다.

여성은 주님의 집인 성당에 와서도 기도와 전례를 통해 안식을 얻기 힘들고, 청소나 음식 만들기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와 가정의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성역할이 교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애초 저자의 지적과 통한다.

또한 가톨릭교회는 모범적인 아버지 상보다는 어머니의 상을 더 많이 강조한다. 저자는 가톨릭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높기 때문에 여성 신자들은 마리아를 모성의 전형이자 본받아야 할 역할모델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녀를 위해 인내하고 희생해야 아름다운 어머니가 된다는 신념이 생겨난다.

특히 가부장제 사회의 전통에서 여성은 경제력을 갖춘 남성에게 의존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순종하는 착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받았는데 이는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교회에서 착한 여자라는 환상은 신심 깊은 여성신자들의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이들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기도하며 며느리, 어머니, 아내, 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고 지적한다.

구원과 해방은 여성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

저자는 현실에서 성별 권력이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면, 여성이 겪을 수밖에 없는 억압과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기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해결책을 고민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성별 권력의 밑바탕이 된 가부장제는 결국 여성을 인격적, 주체적 존재가 아닌, 남성 나아가 종교와 국가를 위한 수단으로 만들었다.

이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로 저자는 낙태 문제를 들었다. 저자는 가톨릭교회가 생명 존중이라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덕목 뒤에 가려진 여성의 고통을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한편에서 “여성에게 낙태는 쉬운 결정일 것이란 통념, 여성이 생명을 소홀히 다룬다는 의심, 무분별한 성적 욕망에 따라 행동한 탓”이라는 비판이 아무렇지 않게 쏟아지는 상황에서 교회는 여성이 피임, 임신, 출산, 육아 문제에서 얼마나 취약한 구조에 놓여 있고, 남성은 이 책임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톨릭교회가 진행하는 낙태된 영혼을 위한 미사나, 낙태여성 치유 프로그램 또한 다시 한번 낙태가 중죄임을 확인시키는 과정으로, 이는 낙태가 자신의 미래와 자녀의 양육 환경을 위해 주체적으로 선택한 결정이 아닌 인생의 오점이고 수치심이라는 해석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종교가 내세우는 이상은 세상의 법을 넘어서는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지만, 때때로 종교는 눈물을 닦아 주는 척하면서 구조적 폭력, 가부장제를 은폐하고 여성에게 참고 순종하라고 강요하며 희생을 요구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종교의 성차별이 더 위험한 이유는 신의 이름으로 그것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회는 성 평등을 지향하는데도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문을 열지 못하고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 함께 어울렸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저자는 진정한 해방을 맞기 위해서 여성들은 교회 안팎에서 억압적인 규범에 도전하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신들의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고 제안한다. 더불어 사회와 종교가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밝힌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여성의 고통, 말할 수 없는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나 자신을 찾는 길이고 구원과 해방의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안의 마리아 막달레나와 하와를 발견하기 바라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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