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연중 기획 1] 인권 : 이성훈 경희대 공공대학원 특임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신년 기획으로 2019년, 한국사회가 직면한 주요 이슈를 어떻게 읽고 대응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했다. “노동, 평화, 인권, 농업” 등 네 가지 주제에 대한 교회 안팎의 전문가 또는 당사자로부터 그동안 우리가 각 이슈에서 놓친 것은 무엇이며, 새롭게 인식할 것들은 무엇인지 인터뷰를 통해 들었다.

기사 순서

1. 노동 : 김선기 서울일반노조 교육선전국장 / 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이영훈 신부

2. 평화 : 이대훈 성공회대 교수 /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강주석 신부

3. 인권 : 이성훈 경희대 공공대학원 특임교수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

4. 농업 : 가톨릭농민회 정한길 회장 /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백광진 신부 
        /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재욱 소장

 

북한 인권문제는 한반도 평화에 걸림돌인가? 인권을 말하면 다 진보인가? 누구의 인권이 먼저인가? 교회는 인권 문제의 성역인가? 혐오가 위험한 이유는?

지금 한국 사회에는 갖가지 인권 문제가 떠오르고 충돌하며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고 거기에 극단적 혐오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인권 문제의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충분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하지만, 각자의 주장 속에서 갈등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경희대 공공대학원 이성훈 특임교수는 이런 상황을 “인권의 혼돈기”라 진단하고 우리 사회의 인권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 짚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평화적, 민주적 논의 구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진보적 가치로 당시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던 초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역할을 떠올리며 지금의 인권 논의에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제안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이성훈 경희대 공공대학원 특임교수. (사진 제공 = 이성훈)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 인권 문제 어떻게 봐야 할까?

<이성훈> : 북한 인권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 인권문제는 남한의 과거 독재 정권에서 그랬듯이 정치 체제와 연관돼 있다. 그러다 보니 인권 문제를 얘기하는 순간 정치화돼 반정부, 반체제 논의가 돼 버린다. 지금 한국은 그런 상태는 이미 벗어났다.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된 우리는 인권 문제 발생이 일상화됐고 국가와 시민사회가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남한과 북한의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격차를 줄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 평화 프로세스에서 두 세력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북한 인권문제를 얘기하는 평화 프로세스는 다 거짓이고 위장전술이라고 보는 입장이 있고, 또 하나는 북한 인권 문제가 있는 것은 알지만 평화 프로세스에서 신뢰가 쌓이면 그 문제는 해결될 것이란 입장인데 둘 다 틀렸다고 본다.

평화, 비핵화가 된다고 해서 인권문제가 바로 해결되진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신뢰를 쌓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전쟁 위협이 없는 구조와 인권을 제대로 제기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게 진정한 평화 프로세스라고 생각한다. 평화 프로세스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적절한 시기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인권문제와 평화를 연계해서 서로 선순환하도록 해야 한다. “인권이 빠진 평화는 공허하다”는 구호가 있다. 전쟁만 없으면 뭐하나? 사람들이 굶어 죽고 핍박받고 감옥에 간다면. 뒤집어 말하면 평화가 없는 인권은 맹목적이 돼 버린다. 반대로, 인권만 이야기하고 평화를 무시해 버리면 위험해지고 이용당할 수 있다.

<지금여기> : 현재 한국 사회에 인권의 가치가 어떻게 자리 잡았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이성훈> : 한국 사회의 인권은 극심한 과도기, 혼돈기인 것 같다. 인권을 크게 보면 정치적 민주화가 되기 전의 인권과 민주화 과정에서의 인권, 민주화 이후의 인권의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그전에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같은 말이었다. 군부독재나 북한체제에서는 인권이 곧 민주화다.

정치적 민주화라는 것은 선거 등을 통해 국민 스스로 정치권을 바꾸는 경험이다. 그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진 다음에는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소수자 인권이 중요해진다. 민주주의라는 다수의 이름으로 인권 침해가 발생한다. 그전에는 소수냐 다수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탄압당했기 때문이다. 

소수자 인권이 중요해지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자기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인권 문제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부터 맥락이 달라진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이 단계에 진입했고, 북한은 전 단계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의 인권은 한 번도 우리 스스로 쟁취해서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민주화 과정을 통해 우리가 획득한 부분도 있다. 반면 국제인권의 원조라고 하는 프랑스인권선언의 경우 상당히 많은 피를 흘리고 쟁취한 것이다. 우리는 해방 후 미군정 하에서 인권을 반영한 헌법과 제도가 도입됐다.

그래서 법적 장치들은 있는데 실제로 실현이 안 됐다. 나중에 민주화운동을 통해 인권을 실체화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문화의 맥락에 맞는 인권과 규범이 만들어지지 못한 채 이념적인 요소가 들어왔다. 인권을 말하면 '진보'라고 인식한다. 미국에서도 물론 진보, 보수로 나눠지는 영역도 있지만 진영을 넘어 서로 공감하는 영역들도 있다. 유럽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공유하는 영역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그러다 보니 마치 인권은 자신이 원하는 것, 인권이 아닌 이해관계 문제인데도 다 자기 얘기를 인권문제라고 해 버린다. 인권이란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언어인데, 자신의 이해관계를 포장하는 것으로 쓰이고 정당화하는 데 쓰는 도구가 돼 버렸다.

내 인권이 중요하면 상대방 인권도 중요하다고 해야 되는데 그것이 아닌 자기 문제만 말하는 문화가 있어서 인권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갈등이 돼 버린다. 그래서 평화가 중요하다. 평화와 인권이 같이 이야기돼야 한다. 여기서 평화는 '갈등의 예방과 해소'를 말한다.

이러한 큰 혼돈과 과도기는 어떻든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것을 다수의 힘으로 막는 것은 또 다른 인권침해다. 예를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의 핵심이 소수자의 인권인데 이를 다수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인권의 기본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

<지금여기> :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인권 문제가 서로 충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성훈> : 인권의 프레임 자체에 많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전통적 인권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말한다. 국민이 국가에게 권한을 줬고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관계를 설정한다. 지금은 그 관계를 설정했던 맥락이 전혀 달라졌다.

지금은 국가가 모든 것을 보장해 줄 수 없다. 기업이 있고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것은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장애인의 주장, 여성의 주장, 아동을 위한 주장 등이 모두 국회에 가면 인권의 충돌로 비췬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이야기만 하니까 그렇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나?

민주주의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최소한으로 지켜져야 할 기본이 무엇인지 사회적으로 합의한 다음에 나머지 부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최소한의 기본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주장만 하니까 인권을 말하면 갈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밥그릇 싸움처럼 말이다. 본래는 그렇지 않다.

인권은 근본적으로 최소한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최저임금을 말하듯, 최소한의 합의 없이 각자의 주장과 목소리만 있으면 쟁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각 당사자들한테는 절박한 문제지만 전체로 보면 충돌과 갈등으로 나타난다.

<지금여기> : 인권 문제에 대한 논의가 갈등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성훈> : 인권과 갈등 해결을 위해 평화교육이 같이 가야 될 때가 왔다. 예전에는 억눌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펼치는 게 인권이었다. 이것을 인권 용어로 ‘피해자 중심’이라고 한다. 피해자가 그동안 말을 못했으니 발언 기회를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이 문제 해결이다. 피해자는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이고 누군가는 해결해야 하는데 그건 국가가 해야 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의 역량을 어떻게 강화할까 고민해야 한다. 국가 입장에서는 피해자 그룹이 여럿이다. 어떤 틀을 가지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바로 민주주의의 조정 능력이다. 이 역할은 국회의 몫이다. 국회가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그것이 정책이 돼야 하는데, 국회가 그 역할을 못하니까 관료들이 한다. 지금은 관료 민주주의 상태다. 인권 문제가 거리에서 정부와 바로 붙어 버리고 조정 역할을 하는 국회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매번 정부한테만 말하고 정부는 능력이 안 되고 이렇게 계속 겉돈다.

<지금여기> : 지난해 난민 혐오 여론이 거셌는데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성훈> : 사회문제를 분석할 때, 잠재적으로 깔린 구조적 요인이 있고, 사건과 관련된 맥락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 양극화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여유가 없다. 밑에 있더라도 내가 조금만 열심히 하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의욕이 생긴다. 사촌이 땅 사는 것을 배 아파하지 않는다. 중산층이 튼튼하면 안정되고 사람들이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다 막혀 버리고 밑으로 내려갈 일만 남으니까 누가 와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가져가려 한다고 보고 거칠어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 사람이 가진 이중성이다. 요새 텔레비전에 외국 사람이 많이 나온다. 이를테면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한국 사람의 이중성을 알 수 있다. 외국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매우 강하면서도 예멘 난민 문제에는 굉장히 배타적이다. 왜 그럴까? 또 왕실 모독죄 기소를 피해 한국에 온 타이 대학생 차노크난 씨가 지난해 11월 타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난민 인정을 받았다. 이런 사례를 가만히 보면 개신교 근본주의, 반이슬람주의가 한국 사회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 극우의 핵심에 해당되는 개신교 반공주의는 반이슬람, 반동성애, 반북한 인식이 중심이다.

14일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팍스 크리스티 인터내셔널 관계자와 한국 준비모임 구성원이 만났다. 팍스 크리스티는 국제 가톨릭 평화운동 단체로 이성훈 교수(왼쪽 첫 번째)가 현재 한국 지부 설립을 위한 준비모임을 진행 중이다. (사진 제공 = 이성훈)

<지금여기> : 자신이 속한 조직, 가정 등 일상에서 인권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성훈> : 학교에서는 딱딱한 인권교육이 아니라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실 문화적 접근이 쉽진 않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를 말할 때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표현도 하는데, 다른 말로 하면 한국 사회가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동시에 진행된다.

전근대적 현상, 봉건적인 것들이 근대로 가면서 정리되고 근대에서 후기 근대로 나가는 것이인권 담론과 제도를 주도해 온 유럽 모델인데 한국은 이것을 짧은 시간에 하다 보니 여러 종류의 문제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갑질 기업 문제는 기업 이전에 봉건적 잔재다. 그것은 현대적 인권이라기보다는 과거 신분제 사회의 산물이다. 인권 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인륜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갑질문제가 터진다. 또 산재로 사람 죽는 것은 인권 문제이지만 동시에 노동권 문제다. 역사적으로 봉건적 신분제에서 시민혁명을 통한 시민권, 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노동권 그리고 오늘날 보편적 인권으로 발전해 왔다. 옛날에 정리됐어야 할 문제가 튀어나와 한국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이다. 이런 혼란은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유럽도 문화혁명과 세대 간의 폭발을 겪으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가치가 자리 잡았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지만 무조건 기다릴 수는 없으므로 가장 기초적인 인권 교육, 교회에서 말하는 생명존중이 전면 도입돼야 한다. 인권 교육에서는 가정과 학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지식 중심 인권 교육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인권, 자기 경험을 통한 교육 방식이 중요하다.

가정과 학교에서 인권을 존중받은 경험이 사회까지 이어지는데 현재 그 두 가지가 제일 취약하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인권을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 어떻게 하는가. 거기에 군대에서 부정적 경험까지 추가된다. 이런 과정이 다 뒤섞이고 누적돼 현재 다양한 인권문제가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여기> 교회 내의 인권 문제로는 무엇이 있다고 보는가?

<이성훈> : 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일단 제도교회로 한정해서 보면 성직자, 수도자로 구성되는 구조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당연히 있을 것이다. 기업처럼 왜 갑질이 없겠는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교회에도 있다. 그렇지만 교회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는 덜 일어나는 차이다. 교회도 사람이 만들고 운영하는 조직이기에 노동법 위반, 남녀차별, 성 관련 인권침해 문제 등 여러 문제가 다 있다고 본다.

그런데 바깥 사회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잘못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구조적 제도를 만드는데, 교회는 믿음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다. 사회의 인권의식은 점점 올라가는데 교회는 뒤처지거나 때로 위선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 탓이라기보다 교회 시스템이 따라가질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국가인권위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만들어 투명해지고 권력 감시를 강화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교회는 성역이다. 교회에 감시체계가 없으니까 대형사고가 터지기도 하고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위험하다. 혹 드러나도 잘 인정하지도 않는다.

인권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누가 선하다 악하다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른 이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지 않다. ‘선하다’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그게 위선이 된다. ‘너 왜 나를 못 믿어?’ 이렇게 나오지 않나. 못 믿어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하거나 잘못할 수 있기 때문에 시스템을 만드는 것인데 교회는 그렇지 못하니 위험하고 뒤처진다.

시대적으로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에서 교회가 사회를 도덕적, 문화적으로 끌어가는 때가 있고, 교회가 뒤처지는 때가 있다. 현재 인권 분야에서 교회는 뒤처지고 있다. 과거에 사회가 제대로 꼴을 갖추지 않았던 때는 교회가 굉장히 앞서갔다. 과거 군사 독재정권 때 교회는 적극적 사회적 발언과 실천을 통해 사회를 이끌어 나갔다.

18-19세기에 한국 가톨릭교회가 시작됐을 때, 남녀평등, 인간존중을 말하는 가톨릭 사상은 당시 사회에서 상당히 진보적이었다. 당시 일부 실학자들은 망해 가는 조선을 살리는 것이 가톨릭 정신이라고 봤다. 그러나 과연 지금 가톨릭교회가 한국 사회에 신선한 긍정적 충격으로서 역할을 하는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오히려 기득권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국 교회가 보수화로 이익집단처럼 되고 있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교세의 양적 증가보다 교회 역할의 질적인 면이 더 중요하다. 소금을 많이 먹으면 병에 걸리듯 소금은 적당할 때 의미가 있다. 교회가 양적 성장으로 가 버리면 관리에만 치중하게 된다.

<지금여기> :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시행과 관련해 군 인권 문제에서 중요한 지점은?

<이성훈> : 군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완전히 바뀔 필요가 있다.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한 나라뿐만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가톨릭교회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국가와 자본에 대한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해야 하다.

군대는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옛날에는 가톨릭이 국가 위에 있었고 국교가 됐었고 다음에 중세 때도 교황권과 왕권의 대립이 있었다. 국가가 존재하려면 내부적으로 치안, 바깥으론 군대가 필요한데 이것에 대해 교회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가 문제다.

군대문제에 대해 냉전시대를 넘어섰으면 좋겠다.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하는 데 교회가 기여해야 한다, 장병을 돌봐야 한다’라는 인식이 냉전시대의 대표적 인식이다. 이는 전쟁을 전제로 한다. 교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전쟁 없는, 다시 말해 군대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까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 사례가 양심적 병역 거부다. 국가 안보는 상대가 있는 국제적 문제이기에 세계적으로 풀어야 한다. 교회야말로 전 세계에 있기 때문에 교회가 나서서 이를 공론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이용당할 수 있다. 군축도 마찬가지로 국제 차원에서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앞장서서 대체복무제가 형벌로 가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이것은 인권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미 오래전 유엔 인권기구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보편적 권리로 인정했다. 교회가 군대 내 문제뿐 아니라 구조적 인권문제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군대에서의 개별적 인권침해에는 당연히 대응해야 하는 것이고, 전체 군대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가톨릭이 보편 교회라는 것을 충분히 활용하면 좋겠다. 전 세계를 통하게 하는 종교가 가톨릭이다. 동시다발적으로 군축과 군대 인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예외 없이 역대 모든 교황님이 군축을 통한 평화 증진을 강조해 왔다. 교회가 군대문제를 크고 깊게 봐야 한다.

<지금여기> : 2019년에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인권문제는 무엇인가?

<이성훈> :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문제가 혐오문제다. 다음으로 경제적 인권에서는 양극화 문제가 있다.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양극화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모든 갈등의 뿌리이고, 혐오도 이와 연관된다. 교회가 좀 더 깊은 성찰을 통해 이렇게 현상으로 드러나는 인권 침해의 뿌리에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것은 영적 문제이기도 하다. 가장 밑에 영성이 있고 다음으로 감정, 이성, 물질로 나오는데 영적인 힘으로 문제의 본질을 보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교회가 길러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혐오라는 현상 밑에 있는 영적인 부분, 그 이면에 있는 심층적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현상적으로는 혐오문제이지만, 사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존엄이란 말 자체가 조롱거리가 됐다. 무척 심각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가톨릭교회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단순히 인권 위기가 아닌 영적 위기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출발점인 인간의 존엄성 자체가 조롱받는 데 대해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다음으로 모든 사회적인 것은 경제적 문제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양극화, 소득 문제가 깔려있다. 어떻게 하면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교회가 집중해야 한다.

또 하나는 성소수자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서 소수자가 아니라 성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잘 봐야 한다. 이것은 종교와 과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 과학에서 성이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볼 때 확률 문제다. 예를 들어 겉으론 남성이지만 유전적으로 여성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고, 다양한 성 정체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인데, 남성과 여성으로만 고정하는 것은 과학을 모르는 태도다.

교회가 과학적 인식을 도입해 그 문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세 때부터 내려온 교리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통용되는데 여기서 벗어나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모든 이가 하느님 모상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모상에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섞여 있다. 남성과 여성이란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선다. 남성과 여성을 절대적으로 구분하는 데 집착하지 말고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조작하는 문제 등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