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 성학대 문제에 결정적 대응 회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직에 오른 지 거의 5년이다. 그간에 그는 종교의 경계를 넘어, 그리고 아무 종교도 없는 사람들에게서도 큰 존경을 얻어, 역사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받고 존경받는 로마 주교가 되었다. 적어도 성 요한 23세(1958-63) 이후로는 그렇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그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영적 지도자이자, 심지어 가장 인기 있는 정치 지도자이기도 하다.

물론,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전통주의자들과 정치적으로 보수적 경향이 있는 이들은 그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포퓰리스트이며, 파괴 분자라고 보며, 심지어 공산주의자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금 무너져 내리고 있는 구세계 질서를 지켜야 하는 교황의 역할을 내팽겨쳤다고 믿고 있다. 로마 가톨릭은 그간 오랫동안 구세계 질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다. 우선, 계몽시대가 오면서 벌어진 일들(예를 들어 프랑스혁명)에 대해 그랬고, 좀 근래의 사례를 들자면, 1960년대 벌어진 사회-정치적 대변동으로 현대 사회의 유대-그리스도교적 기둥들이 약해지던 때 그랬다.

하지만 실제 증거들을 보면, 지금까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지자들이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이것이 바뀌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중순에 칠레와 페루를 방문했다. 그 와중에 칠레의 후안 바로스 주교를 강하게 옹호하기로 결정했다. 바로스 주교는 칠레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사제 성폭행자인 페르난도 카라디마의 행위를 덮으려고 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때문에 그간 프란치스코 교황을 가장 지지해 오던 이들 상당수가 교황의 입장에 당혹해 하고 화를 내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로스 주교를 강하게 옹호하고, 카라디마에게 피해당한 이들의 주장, 특히 바로스 주교가 피해자들에게 눈을 감았다는 것을 그냥 내친 것이 그의 교황직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편집자 주- 프란치스코 교황은 칠레에서 피해자들이 믿을 만한 “증명”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칠레와 페루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회견에서 그 표현은 자기가 피해자들의 “얼굴을 후려친 것”임을 깨달았다고 해명하고 사과했으나, 바로스 주교가 범죄를 덮으려 했다는 것은 부인했다.)

간단히 말해서, 바로스 사건에서 일어난 이 최근의 일 – 프란치스코 교황이 칠레와 페루 방문 중에 아주 잘못 처리했다고 대부분 사람들이 믿는데-이 그의 권위와 지도력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찻잔 속의 폭풍으로 끝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것은 그가 1월 21-22일에 남미에서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전했던 말과 감정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크게 달려 있다.

당시 세 명의 기자가 그에게 왜 바로스 주교를 믿고 피해자들을 믿지 않느냐고 각기 따로 물었다. 그중 한 명은 그가 “그 사람들이 내게 바로스 주교에 불리한 증명을 가져오면, 나도 말하겠다. (그런데) 그런 게 터럭 하나도 없다. 그저 다 중상일 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라고 말한 데 대해 (미국의) 숀 오맬리 추기경이 반박했는데, 이에 대해 교황은 어떤 입장이냐고 구체적으로 물었다.

교황은 피해자들이 중상(즉, 명예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은 사과했지만, 그들이 사실상 바로스 주교를 중상했다는 자신의 믿음을 되풀이했다. 그는 자기가 증명(proof)이라는 말을 썼는데, 증거(evidence)라고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이 두 단어가 실제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머리통 깨지게 고민하고, 그 단어를 바꾼다고 해서 교황이 하려던 말에 무슨 차이가 생기는지 궁금하게 된다.(편집자 주- proof도 “증거”로 쓰이며, 단지 일부에서는 proof는 수학의 “증명”처럼 아주 확실한 진실을 뜻하므로 evidence보다 더 엄격한 뜻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더 나아가 카라디마의 피해자들과 바로스를 비판하는 이들이 자기와 만나려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변호하려 노력했다. 우선, 이 피해자들과 만나려 해야 하는 것은 교황 쪽에서 해야 할 책임이었다. 그는 이들의 주장을 적어도 2015년부터는 알고 있었다. 당시 그는 군종교구장이던 바로스 주교를 오소르노 교구로 전임시켰다.

교황은 칠레 방문 중에 사제들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일부를 만나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였는지는 공표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카라디마에 의한 피해자들이 아니었다는 것만 알려졌다. 그 사적 만남을 준비하는 데 책임이 있는 이들은 그 나라에서 가장 악명 높고 가장 고위직 사제 범인의 피해자들을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대실책을 저질렀다. 특히 바로스 주교가 카라디마를 덮어 줬다고 공개적으로 나서 고발한 세 남성도 포함되지 않았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고발에 나선 피해자들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을까? 그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그냥 전화 걸어서 만나는 사람이다.

그는 그들을 만나려고 하지도 않은 채, 그들이 중상하는 사람들이라고 내쳤다.

“왜 교황은 그 세 사람을 믿지 않았을까? 그들은 몇 년에 걸쳐 자신들이 말하는 것에 일관성이 있었다.”라고 마리 콜린스는 말했다. 그녀는 (성직자 성학대문제를 다루기 위해 2014년에 만들어진) 교황청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이었으며, 위원 가운데 가장 신망이 높았다.

콜린스는 트위터에 “그가 왜 동료 성직자를 믿고 피해자들을 믿지 않느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무런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라고 썼다.

교황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여러 필자가 나섰다. 이들 일부는 교황이 그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인기가 떨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거짓 고발당한 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이 아르헨티나에서 예수회 관구장으로, 그리고 주교로서 중상을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며, 그래서 그는 명확하고 확실한 증명/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주장을 믿기를 주저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또는, 이 칼럼난에서 지난주에 살펴봤듯이, 어쩌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학대 사건에 대해 제대로 행동을 취하지 않는 주교들을 징계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런 주교들과 비슷하게, 그는 자신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로 있을 때와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으로 있을 때 성학대 문제에 단호한 조치를 내린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 때문에 자기는 조금이라도 신뢰성이나 정직성을 지니고 동료들을 징계할 위치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바로스 주교가 계속 주교직을 유지해야 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고집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다른 설명을 할 수 있다. 그는 바로스 주교가 두 번이나 사임을 청했으나 자기가 거부했다고 말한 바 있다.

아마도, 그의 전임 교황들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어떤 주교를 내치면 나쁜 전례가 되어 다른 지역의 가톨릭 신자들도 자기들이 좋아하지 않는 지도자를 내보내 달라고 요구하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고 걱정하는 듯하다.

바로스 주교가 2015년에 오소르노 주교로 임명될 때부터 오소르노 교구의 신자와 사제들은 크게 분열됐다. 실은 칠레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분열돼 있다. 그는 교구장으로 착좌하던 날부터도 말로, 그리고 물리적으로도 공격당했고, 지금까지도 공개적으로 규탄받고 있다.

바로스 주교 건에는 무언가 분명히 아주 다른 것이 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에는 성학대 사건들을 잘못 다룬 주교들을 비록 아무런 이유를 대거나 투명한 절차 없이 그러기는 했지만 어쨌든 해임시켰던 것을 고려해 보면 그렇다.

미국의 두 건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에 겨우 몇 달 새에 두 명의 주교가 75살의 은퇴연령이 상당히 멀었음에도 강제로 사퇴시켰다. 캔자스시티-세인트조셉 교구의 로버트 핀 주교는 겨우 62살이었고, 세인트폴-미니애폴리스 교구의 존 니언스테트 주교는 68살이었다.

대개는 이들이 성학대 사건들을 덮어서 쫒겨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명확히 (문서나 말로) 선언되지 않았다. 니언스테트는 자기는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굳건히 부인해 왔다.

교황 프란치스코 (사진 출처 = LA CROIX)

후안 바로스를 보호하는 추기경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이토록 바로스를 지키려 하고 있는가? 혹시 그를 보호하고 있는 힘센 가톨릭 고위인사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추기경 2명이 걸린다. 우선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다. (전 교황청 국무원 총리인) 그는 이탈리아인으로, 교황청 안의 권력 거래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계속해서 갖고 있다. 그리고 호르히 메디나 에스테베스 추기경이다. 그는 칠레인으로 교황청 경신성사성 장관을 지냈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선출될 때 수석 부제급 추기경으로서 선출 사실을 발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소다노 추기경의 지지가 필요하며, 그를 적으로 만들 위험을 안으려 하지 않는다.

올해 90살로 추기경단장인 소다노 추기경은 칠레 주재 교황대사(1977-88)로 있다가 로마로 가서 교황청의 2인자인 국무원 총리(1990-2006)를 맡았다. 그는 그 어떤 교황청 인사보다도 현재의 칠레 주교들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메디나 추기경(91)은 소다노가 칠레 주재 교황청대사를 마치고 돌아가기 직전에 보좌주교에서 교구장주교로 올린 인물이다.

소다노는 국무원 총리로서, 그리고 주교성 위원(-2007)으로서 여전히 칠레(그리고 다른 곳)의 주교 임명에 영향력을 끼쳤다.

메디나는 1993년에 칠레에서 2번째로 큰 교구인 발파라이소 교구장이 됐다. 2년이 채 되지 않아, 당시 산티아고 대교구의 후안 프란시스코 프레스노 라라인 추기경의 개인비서였던 후안 바로스가 메디나의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그리고 메디나 주교는 바로스의 주교 서품식에서 주서품자였고, 프레스노 추기경은 공동서품자 가운데 하나였다. 1년 뒤, 메디나는 경신성사성 장관이 됐고 1998년에는 추기경이 됐다. 당시 그는 주교성 위원도 됐다.(-2006)

그와 소다노 추기경은 바로스가 2000년에 이키케 주교가 되는 데, 그리고 2004년에 칠레 군종교구장으로 전임되는 데 결정적인 투표권을 행사했다. 이 임명은 바로스의 또 다른 추기경 보호자인 후안 프란시스코 추기경이 죽기 5일 전에 이뤄졌다.

메디나 에스테베스 추기경과 소다노 추기경은 아직도 살아 있다. 이들은 바로스 주교가 교계제도의 사다리를 한 칸 올라갈 때마다 크게 도왔다. 사실상 바로스 주교는 이 두 사람이 키운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개입하여 바로스의 지위와 그의 평판- 그리고 그들 자신의 평판-을 보호하도록 한 것일까?

우리는 아마도 결코 모르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스 주교가 카라디마의 성학대를 그의 장상들이 알지 못하게 막으려 했는지 여부를 알 수 있을지 어떨지도 알기 어렵다. 그것은 현재 (교회 안에는) 이러한 논란이 벌어지는 사안에 주교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명확하고 투명한 메커니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자,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바로스 사건은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을 둘러싸고 험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는데, 이 사건은 그의 교황직에 치명타인 것으로 드러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폭풍우에 그치고 말 것인가?

언론이 요즘 이 사건을 보도하는 방식을 보면, 이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다.

영어권 세계의 진보 성향인, 이른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신자들- 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이었는데- 이 사건을 둘러싼 최근의 사태 진전에 흔들리고 있다. 이들 상당수- 아마도 다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직자 성학대 위기가 결정적 분기점에 이르면 “답을 내지 않는다”고 갈수록 더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영어권이 아닌 곳, 즉 성학대 문제를 자체 안에서 열심히 다루도록 아직 강요받지 않고 있는 곳의 교회에서는, 근래의 사건들은 금세 어제의 뉴스가 되고 있다. 이런 곳의 언론들은 가톨릭이든 일반 언론이든, 교황이 낱말을 잘못 골랐다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이들 언론의 기자들과 현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더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칠레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징표가 아니다. 이는 바로스 주교, 특히 교황이 가장 최근에 이 사건을 다룬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오직 더 심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일을 아마 이겨낼 것은 분명하다. 이 최근 사건에 대한 초점은 이미 다른 데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관심 범위가 좁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저명 인사들을 계속 압박해 제대로 일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인 언론인들의 관심 범위가 좁은 것도 한 몫 한다.

이탈리아 격언에 “오직 시간이 지나면 안다.”는 말이 있다.

기사 원문: https://international.la-croix.com/news/pope-francis-and-the-barros-affair/6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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