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제가 열린 시청앞에서 슬퍼하는 시민들.(사진: 고동주)

 

그냥 나 좀 슬퍼하게 해줘. 그냥 울고 싶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 나를 애타게 찾는 아이가 있었다. 이전에 하자센터에서 인문학을 같이 공부한 아이였는데 노무현이 죽고 나서 계속 눈물바다란다. 주변사람들이 딱해서 못보겠다고 나보고 연락 좀 하라고 성화였다. 아이에게 간단한 문자 하나를 보냈다. '너 지금 만나면, 내가 나를 주체 못할 것 같다. 좀 지나고 보자.' 난 이 아이가 서럽게 우는 그 이유를 듣는 것이 두렵다.

후배 중에 덕수궁에 가서 절대 조문 같은 걸 안 할 것 같은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조문을 갔다 왔다고 한다.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자기만큼이나 그런 곳을 안 갈 것 같은 '탈정치화'된 자기 친구가 가자고 해서 갔단다. 가서 그 친구가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왜 우냐고 물으니 후배 입을 틀어막으면서 '묻지마. 그냥 슬퍼. 그냥 나 좀 슬퍼하게 해줘. 그냥 울고 싶어.'라고 하더란다. 그 친구 우는 걸 보다 자기도 슬퍼져서 울었다고 한다.

나 노사모였나봐

친한 교수 중에 한 사람이 대학원 수업시간에 한 시간이나 넋두리를 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이 자기가 그렇게 슬퍼하는 걸 보면서 스스로 놀래서 '어머나 어떻게 해. 나도 몰랐는데 나 노사모였나봐.'라고 한 말이다. 물론 이 교수는 노사모가 아니다. 교수는 넋두리 하는 내내 노무현이 자기에게 이렇게 가까이 있고 자기가 그렇게 노무현에 밀착되어 있는지를 몰랐다며 스스로도 헷갈려하였다. 수업 내내 다른 대학원생들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고 한다.

슬퍼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는 기자가 문자를 보냈다. ‘아...이 긴 행렬은 무엇일까요. 별로 슬프지 않은 나는 진정 사이코패스인가요?’ 슬프면 슬픈대로, 슬퍼하지 않으면 슬퍼하지 않는대로 우리 모두가 어떤 것에 감염이라도 된 듯하다.

우린 무엇을 슬퍼하는 걸까.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사회주의자’에서부터 ‘자유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이토록 절절하게 애도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 많은 해석들이 나왔다. 공모를 한 것 같은 죄책감부터 정부에 대한 분노까지. 잠시 질문을 바꾸어보자. 우리가 ‘왜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이 슬픔으로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로.

 

▲ 장례식 전날 자정이 넘도록 사람들은 대한문 분향소 앞을 떠나지 못했다. 덕수궁 돌담 옆에서 어떤 이들은 종이학을 접어 나무에 걸었다. (사진: 한상봉)

 

질문을 바꿔야.. '이 슬픔으로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로

그의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친구와 선후배들, 그리고 학생들의 하소연을 듣다 나는 문득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노무현의 죽음에서 이들이 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꼬라지’이다. 지금 여기서 사는 모습의 궁상맞음과 망가짐과 팍팍함과 초라함과 강퍅함을 슬퍼하고 있는게다.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의 비극을 보았다.

권력의 정점까지 올랐던 대통령마저도 알고 보니 ‘텅 빈 생명’, ‘벌거벗은 삶’이었다. 그의 삶 전체가 조롱당하였지만 그는 무력하였다.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다 한 외신의 표현대로 하면 들들 볶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유서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남은 여생, 주변사람들에게 짐만 될 수 밖에 없는 슬픈 운명이었다.

그의 죽음뿐만이 아니다. 최진실의 죽음에서 사람들이 본 것도 참 가진 것 많고 남 부러울 것 없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알고 보니 텅 빈 삶을 살았다는 것에서 오는 동정과 연민이었다. 산다는 것이 위대하기는커녕 바람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고 보잘 것 없으며 헛헛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우리는 최진실의 죽음에서 보았다.

구차한 내 삶을 슬퍼하고 있어..

노무현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최진실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정서와 그리 멀지 않다. 그가 가고 난 다음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정점에 올랐던 최진실의 죽음에서 많은 여성들이 그들과 다르지 않은 '같은 여성'의 삶의 강퍅함에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말이다.

몰락이, 죽음이, 나락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 저런 사람들마저도 삼키는 그런 나락이 우리 삶에 아가리를 떡 벌리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 그 나락을 보며, 우리는 나락에 떨어져 죽은 자를 보며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락옆 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애도하고 있다. 우린 정말이지 산다는 것이 품위 없고 보잘 것없으며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죽음이 아닌 산다는 것에 대한 애도가 있다.

왜 그를 미워할 수 없었던가. 그는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분열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권력의 정점에서도 보여주었다. 분열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전교조의 교사가 자기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공교육이 싫어서 대안학교를 보낸 학부모가 방학이면 선행학습과 과외를 시킨다. 직장을 때려 치고 나와 카페를 차리고 공동체 운동을 하는 후배는 주식투자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많은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친구는 들어가 살만하면서 투자 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보러 다닌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분열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분열의 빈틈에서 적당한 합리화와 죄의식이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는채 우리는 살아간다.

 

▲ 장례 전날 명동성당 추도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사진: 고동주)

 

살기 위해 분열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슬퍼해

노무현은 권력의 정점에서 이런 분열적인 삶을 보여주었다. 진보신당의 당게시판에서 한 당원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날 노무현이 멍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지금 국민들이 저를 보고 계십니까?'하는 말한 장면을 보고 그의 고독을 느꼈다고 하였다. 바로 그것이 노무현의 분열이었다. 그는 집권 기간 내내 그의 영혼과 그의 통치가 분열되어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가인권위가 파병을 반대했을 때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런 것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을 했을 때,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말을 했을 때, 봉하로 내려가서 한 첫 번째 말이었던 '죄송하지만 참 좋다' 등. 그는 집권 내내 항상 자신의 영혼은 자신의 통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있는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노무현의 고뇌, 비록 지금 당신들이 반대하는 것을 하지만 나의 영혼은 당신들과 함께

'나는 비록 지금 당신들이 반대하는 것을 하지만 나의 영혼은 당신들과 함께 있습니다.' 이 것이 집권해 있을 때는 그를 변명으로 일관하는 비겁한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막상 그가 가고 나자 우리들에게 ‘분열적일 수 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우리 모두의 초라하고 팍팍한 삶을 그를 통해서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그의 통치에서 그가 자신의 영혼과 통치를 분열시키지 않았던 몇 개 안되는 정책 중의 하나가 한미FTA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라크파병과는 달리 정말로 한미FTA를 누구로부터 등 떠밀려서 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살릴 길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퇴임 이후 봉하로 내려갔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의 성공을 빌었다. 사람들은 그가 죽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니 참 좋다'고 활짝 웃었던 것처럼 봉화에서 영혼과 삶이 일치하여 살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시골로 내려가더라도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죽음은 그런 통합적이고 ‘참 좋은 삶’이라는 것이 이 땅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절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젠장. 조선 천지에, 어디에도, 율도국 따위는 없다.

영혼과 삶이 일치하는.."돌아오니 참 좋다"

집권 기간 내내 그가 보여준 분열과 봉하에서의 짧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 그래서 그를 단지 신자유주의자라고 말을 하는 것은 부족하다. 적어도 하나 확실한 것은 그는 신자유주의자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이나 다른 신자유주의자와는 결정적인 점에서 하나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통치자로서 정책적으로는 신자유주의자였지만 그의 인간관은 신자유주의가 아니었다. 인간에 대한 관점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통치의 이데올로기와 달랐던 것. 이것이 그의 분열의 근본이며, 죽음 전과 후에 사람들이 그에 대해 느끼는 정서의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가 그냥 신자유주의자였다면 그는 봉화로 내려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의 비애를 그렇게 표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인간관은 참 뜨거웠다.

그래서 그의 삶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은 정치를 하는 동안에도 늘 실패하는 정치인으로 비극적이었고, 대통령이 되어 통치를 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영혼과 대통령으로서의 자기의 역할이 분열되었던 비극적인 사람이었고(으로 이제는 기억되고 있으며), 그 좋다던 봉하로 내려와서도 결국은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충분히 슬퍼하자.. 죽음에 가까와진 우리들의 운명

우린 그의 삶에서 비극을 본다. 그리고 그 비극은 남의 비극이 아니라 죽음에 가까워져 있는 우리들의 삶이다. 우리는 그의 비극에서 우리의 삶과 운명을 보았으며 그 비극에 감응되어 우리의 삶을 슬퍼하고 애도한다.

그런데 우리가 애도하는 것이 우리 삶의 비극이라면 나쁘지 않다. 충분히 울고 난 다음, 비로소 우리는 힘을 얻고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시작을 시작해볼 수 있는 용을 써볼 수 있을테니깐 말이다. 충분히 슬퍼하자. 그의 죽음뿐만이 아니라 죽음에 가까워진 우리들의 운명과 삶을. 충분히 울고 난 후에야 우리는 사람 하나 짜르고 책임을 묻는 것으로는 끝낼 수 없는 노무현을 넘어 이 삶의 분열과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테니.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엄기호/국제연대 코디네이터·<닥쳐라,세계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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