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지난 화요일, 2월 14일은 연인들의 날이라는 '발렌타인 데이'였다.
270년경 박해시대에 순교한 교회 초기 성인에 대한 이야기이고 당시의 기록이 아니라 후대에 전해진 기록들만 있어서 발렌타인의 성담에는 같은 시기의 기록이 남아 있는 두 발렌타인 성인의 이야기가 섞여 전해 오고 있다. 가난한 이들과,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을 방문하고 주검을 돌보았던 로마의 사제 순교자 발렌타인과 테르니의 주교였던 순교자 발렌타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발렌타인 성인에 대한 공경이 4세기 로마에서 시작해 중세 독일,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에 크게 퍼져 있었다는 점이다. 발렌타인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과 유적, 연결된 풍습과 순례 전통, 문학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다.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지는 성인에 대한 공경에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건, 후세에 붙여져서 전해 오는 이야기이건 교회가 공경받는 성인을 통해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삶의 바탕에 맞추어 신앙을 전하고자 하는 토착화의 노력과, 신앙의 모범으로 보여 주고자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무엇일까?
사랑하는 이들끼리도 마음대로 혼인할 수 없는 때가 있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지배자가 모든 것을 관장하던 시대에는 더 심했던 듯하다.
발렌타인이 사목하던 시대에 로마 황제 클로디우스는 남자가 결혼을 하면 전쟁에 나가기 싫어하므로 형편없는 군인이 된다고 해서 금혼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박해 시기인 이때에 발렌타인은 젊은 연인들을 몰래 혼인시켜 주고, 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 극복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위로를 찾는 이들에겐 마당에 키우던 꽃 한 송이를, 연인들에게는 꽃다발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이 황제에게 전해져서 노한 황제는 발렌타인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명령으로 사랑을 금할 수 없다!'는 발렌타인의 확신과 위엄에 감명을 받아 그를 개종시켜 구해 주려 하지만 발렌타인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로마 신들을 버리고 진정한 신에게로 개종하도록 권유하여 결국 참수되었다. 사실 발렌타인의 말은 황제의 가슴에 깊이 감동을 주었는데, 로마 신들을 버리면 원로들이 봉기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박해자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269년(268-270) 2월 14일 참수되었다. 처형되기 전 재판관은 그를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갔는데, "주 예수 그리스도, 진정한 빛이여. 당신께 청하오니 이 집을 밝혀 주시어 여기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당신을 진정한 신으로 인식하게 하소서." 라는 그의 기도에 눈먼 딸을 보여 주며 그 빛으로 딸이 눈을 뜨게 된다면 말씀대로 믿겠다고 한다. 발렌타인이 소녀의 눈을 뜨게 하자 온 가족이 신상을 부수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도 순교한다.
더욱 감동을 주는 다른 버전도 있다. (13세기 Legenda Aurea에 기록) 여기에 따르면 형장을 향하며 발렌타인이 소녀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소녀가 그의 편지를 받아 열자 크로커스 꽃이 나왔다. 소녀의 눈이 열리어 꽃의 색을 알아보면서 바로 치유되었다. 그가 순교한 뒤 소녀의 가족들이 모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었다.
사실 로마 시대 2월은 주피터(그리스 신화에선 제우스)의 아내이자 부부와 가정의 신인 주노(그리이스의 헤라)를 기리는 달이었다. 주노에게 꽃다발을 바치고 혼인을 위해, 그리고 가정을 위해 여성들에게도 꽃다발을 주었다. 주노의 달 중앙에 루페르칼리아란 축제가 있었는데, 젊은 청년들이 소녀들의 이름이 쓰여진 제비를 뽑아 짝을 지어 시간을 보내는 우리나라 탑돌이와 같은 풍습이 있었다. 이날 아침 사랑하는 소녀의 집에 가장 먼저 달려온 청년이 그 소녀와 결혼하는 풍습도 있었다. 자연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 새들이 짝짓기를 시작하고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는 시기의 축제였다.
로마를 그리스도교화하면서 당시의 교황과 교부들은 이 축제의 풍습들을 연인들을 위해 치명한 발렌타인 성인의 축일 풍습으로, 그리스도의 빛으로 눈을 뜨게 한 신앙을 기억하는 풍습으로 바꾸면서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담고자 했다. 이런 사랑과 친교의 풍습은 지역별로 색채를 더해 가며 전 유럽으로 퍼졌다. 꽃을 선물하고 사랑을 담은 편지를 전하는 풍습들은 이후 영국의 귀족사회를 중심으로 더욱 널리 행해졌다. 그리고 16세기 이후 유럽으로 초콜릿이 들어오면서 부드러운 맛만이 아니라 사랑의 분자가 담겨 있다는 초콜릿이 연인에게 보내는 선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삶의 많은 순간들에 정말 달콤한 기쁨과 위로와 편안함이 필요하지만, 발렌타인을 통해 교회 선조들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녹아드는 짧은 순간의 환희가 아니라, 녹아들어 힘들 때에 기쁨의 힘을 주는 사랑의 나눔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명령으로 금할 수 없다."
목숨을 걸고 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노력했던 발렌타인의 삶!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존중된다는 오늘날에도, 명령이나 관습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오늘날에도,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 키워 주는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가가고 함께하며 그 삶을 성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로운 권고 "사랑의 기쁨"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행복이다, 사랑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하다."
- 헤르만 헤세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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